그때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가 세존과 함께 … 한쪽에 앉았느니라.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께 말했느니라. “고따마 존자여, 제사나 조상 공양이나 솥에 지은 우유죽이나 보시물이 있는 이는 세 베다에 통달한 바라문들에게 보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라문이여, 바라문들은 세 가지 앎을 갖춘 바라문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Atha kho jāṇussoṇi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pe… ekamantaṁ nisinno kho jāṇussoṇi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yassassu, bho gotama, yañño vā saddhaṁ vā thālipāko vā deyyadhammaṁ vā, tevijjesu brāhmaṇesu dānaṁ dadeyyā”ti. “Yathā kathaṁ pana, brāhmaṇa, brāhmaṇā tevijjaṁ paññapen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9 자눗소니경 (Jāṇussoṇisutta)배경
경은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을 찾아온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원문은 인사 일부를 ‘…pe…’로 줄이고, 자눗소니는 제사·조상 공양·솥에 지은 우유죽·보시물이라는 네 경우의 보시를 세 베다에 통달한 바라문에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존은 곧바로 동의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바라문들이 ‘세 가지 앎을 갖춘 이’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되묻습니다. 이 질문이 세습과 학문으로 세는 앎과 성자의 훈련에서 직접 얻는 세 밝은 앎을 대조하는 경 전체의 문을 엽니다. 수행의 의미는 익숙한 권위의 이름보다 그 기준이 실제로 무엇인지 먼저 분명히 묻는 데 있습니다.
묵상
누구에게 무엇을 맡기거나 나눌 때 이름·혈통·학력 같은 표지를 먼저 보나요?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함께 묻는다면 판단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지금 답이 분명하지 않다면 내가 기대는 기준부터 살펴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