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따마 존자여, 바라문은 모계와 부계로 잘 태어나 일곱 대까지 혈통이 깨끗해 출생으로 흠잡히거나 비난받지 않습니다. 성전을 암송해 간직하고, 어휘·의례·음운·낱말 분류와 다섯째 역사 전승을 갖춘 세 베다에 통달하며, 낱말·문법·세상 이론·위대한 사람의 특징에도 정통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들은 이렇게 규정합니다.” “바라문이여, 바라문들은 한 방식으로 규정하지만 성자의 훈련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세 가지 밝은 앎을 갖추느니라.”
“Idha kho, bho gotama, brāhmaṇo ubhato sujāto hoti mātito ca pitito ca saṁsuddhagahaṇiko yāva sattamā pitāmahayugā akkhitto anupakkuṭṭho jātivādena, ajjhāyako mantadharo, tiṇṇaṁ vedānaṁ pāragū sanighaṇḍukeṭubhānaṁ sākkharappabhedānaṁ itihāsapañcamānaṁ, padako, veyyākaraṇo, lokāyatamahāpurisalakkhaṇesu anavayoti. Evaṁ kho, bho gotama, brāhmaṇā tevijjaṁ paññapentī”ti. “Aññathā kho, brāhmaṇa, brāhmaṇā brāhmaṇaṁ tevijjaṁ paññapenti, aññathā ca pana ariyassa vinaye tevijjo ho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9 자눗소니경 (Jāṇussoṇisutta)배경
자눗소니의 정의는 두 묶음입니다. 첫째는 모계와 부계 양쪽에서 일곱 대까지 흠잡히지 않는 출생이고, 둘째는 성전 암송과 세 베다의 여러 보조 학문에 대한 통달입니다. 어휘·의례·음운·어원·역사 전승과 낱말·문법·세상 이론·위대한 사람의 특징이 빠짐없이 이어집니다. 세존은 그 목록을 논박하기보다, 같은 ‘세 가지 앎’이라는 말이 성자의 훈련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립한다고 선을 긋습니다. 수행의 뜻은 사회가 인정한 자격과 마음을 밝히는 직접 앎을 같은 것으로 섞지 않고 각각의 기준을 분명히 보는 데 있습니다.
묵상
내가 신뢰하는 자격은 태어난 조건과 배운 지식에 얼마나 기대고 있나요? 실제 경험에서 무지와 어둠을 줄이는 앎은 그 자격과 어디에서 같고 어디에서 다른가요? 어느 쪽을 낮추지 않고 차이를 살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