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알고 보자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마음이 풀려나고, 존재의 번뇌에서 마음이 풀려나며,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풀려나느니라. 풀려나면 ‘풀려났다’는 앎이 생기고, 아느니라.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존재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얻은 세 번째 밝은 앎이니, 무명은 무너지고 앎이 일어나며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일어나느니라.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물 때 그러하듯이.”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Ayamassa tatiyā vijjā adhigatā hoti;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9 자눗소니경 (Jāṇussoṇisutta)배경
마음이 세 번뇌에서 풀려난 뒤에는 ‘풀려났다’는 앎이 생깁니다. 이어 태어남은 다함·청정한 삶은 완성됨·해야 할 일은 마침·다시 이런 존재로 돌아오지 않음이라는 네 완료를 같은 순서로 확인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vijjā입니다. 경은 다시 무명/앎과 어둠/빛의 두 대칭, 방일하지 않음·열심·굳은 뜻의 세 조건을 반복해 세 밝은 앎의 공통 결론을 완성합니다. 수행의 뜻은 잠시 편안한 느낌을 해탈로 이름 붙이는 데 있지 않고, 번뇌에서 실제로 풀려난 결과와 남은 일이 없다는 앎이 함께 성립하는지를 분명히 보는 데 있습니다.
묵상
잠깐 홀가분한 느낌과 마음을 묶던 원인이 끝나 풀려났다는 앎은 어떻게 다를까요? 해야 할 일이 남았는지 정직하게 살피면서도 지금 줄어든 속박을 알아볼 수 있나요? 완성을 서둘러 선언할 필요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