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이여, 바라문들이 세 베다에 정통한 이를 정하는 방식과 성자의 훈련에서 세 밝은 앎을 갖춘 이는 서로 다르느니라.” “고따마 존자여, 성자의 훈련에서는 어떻게 세 밝은 앎을 갖춘 이가 됩니까? 고따마 존자께서 그 가르침을 설해 주십시오.” “그러면 바라문이여, 듣고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말하겠느니라.” 띠깐나 바라문은 “예, 존자여.”라고 응답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ññathā kho, brāhmaṇa, brāhmaṇā brāhmaṇaṁ tevijjaṁ paññāpenti, aññathā ca pana ariyassa vinaye tevijjo hotī”ti. “Yathā kathaṁ pana, bho gotama, ariyassa vinaye tevijjo hoti? Sādhu me bhavaṁ gotamo tathā dhammaṁ desetu yathā ariyassa vinaye tevijjo hotī”ti. “Tena hi, brāhmaṇa, suṇāhi, sādhukaṁ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Evaṁ, bho”ti kho tikaṇṇo brāhmaṇo bhagavato paccassosi. Bhagavā etadavoca: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경 (Tikaṇṇasutta)배경
띠깐나의 정의 뒤 세존은 aññathā를 되풀이해 두 tevijja가 서로 다르다고 선을 긋습니다. 한국어는 바라문 전통의 것을 “세 베다에 정통한 이”, 이어질 세 수행 지식을 “세 밝은 앎을 갖춘 이”로 구별했습니다. 띠깐나는 고따마 존자를 두 번 부르며 방법을 묻고 설법을 청합니다. 세존의 “듣고 잘 마음에 새기라”는 지시, 띠깐나의 응답, “세존께서 말씀하셨다”는 화자 도입도 소유한 여섯 키에 있으므로 모두 보존했습니다.
묵상
같은 말이 서로 다른 전통에서 다른 기준을 가리킬 수 있다는 대조를 읽을 때, 내가 이미 안다고 여긴 말 가운데 다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지금 질문이 생기지 않는다면, 어느 대목에서 뜻이 갈라지는지만 살펴보고 넘어가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