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과 바른 견해가 좋은 곳으로 이끄는 것을 보다

몸·말·마음의 선행과 바른 견해의 결과를 밝히고 두 번째 밝은 앎의 후렴으로 맺습니다.

‘그러나 이 존재들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선행을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으며, 바른 견해와 그 견해에 따른 행위를 받아들였습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이처럼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며, 낮고 높고, 아름답고 추하고,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 가는 것을 보고 업에 따라 감을 압니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nnā’ti.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경 (Tikaṇṇasutta)

배경

앞 카드의 악행 결과에 맞서는 긍정 대칭과 관찰의 반복을 소유합니다. 몸·말·마음의 선행은 이번에는 세 갈래가 모두 root에 명시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음, 바른 견해와 그 견해에 따른 행위,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과 천상 세계에 태어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어 신성한 눈의 맑음과 인간을 뛰어넘음, 죽음/태어남·낮음/높음·아름다움/추함·좋은 곳/나쁜 곳의 네 쌍, 업에 따라 감을 처음과 같은 순서로 전부 반복합니다. 악행과 선행의 부정·긍정 구조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묵상

몸·말·마음의 선행과 바른 견해가 함께 놓인 대목에서, 오늘 세 갈래 가운데 조금 더 돌보고 싶은 하나가 있나요? 구체적인 행동이 떠오르지 않거나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느껴지면, 고르지 않고 지나가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