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 가지 밝은 앎으로 바라문은 세 밝은 앎을 갖춘 이가 된다. 나는 그를 세 밝은 앎을 갖춘 이라 부르며, 들은 말을 되뇌는 다른 이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Etāhi tīhi vijjāhi, tevijjo hoti brāhmaṇo; Tamahaṁ vadāmi tevijjaṁ, nāññaṁ lapitalāpan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경 (Tikaṇṇasutta)배경
다섯 연 게송의 마지막 연이 앞의 비교를 판정합니다. etāhi tīhi vijjāhi는 바로 앞에서 요약한 지난 삶의 기억,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 태어남의 소멸이라는 이 세 밝은 앎을 가리킵니다. 그 앎으로 바라문은 tevijja가 되며, 세존도 그런 이를 세 밝은 앎을 갖춘 이라고 부릅니다. 마지막 nāññaṁ은 “다른 이는 아니다”라는 명시적 부정이고, lapitalāpana는 들은 말을 되뇌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혈통과 문헌을 말로 반복하는 데서 직접 닦고 아는 것으로 기준이 바뀝니다.
묵상
들은 말을 정확히 되풀이하는 것과 삶에서 직접 알아 확인하는 것의 차이는 내 경험에서 어떻게 드러나나요? 직접 확인한 것이 떠오르지 않아도 부족함으로 판단하지 말고, 아직 남의 말로만 알고 있는 한 가지를 알아차려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