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이여, 성자의 훈련에서는 이와 같이 세 밝은 앎을 갖춘 이가 되느니라.”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들의 세 베다에 정통한 이와 성자의 훈련에서 세 밝은 앎을 갖춘 이는 서로 다릅니다.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들의 세 베다에 정통한 이는 성자의 훈련에서 세 밝은 앎을 갖춘 이의 열여섯째 몫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훌륭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재가 신자로 고따마 존자께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Evaṁ kho, brāhmaṇa, ariyassa vinaye tevijjo hotī”ti. “Aññathā, bho gotama, brāhmaṇānaṁ tevijjo, aññathā ca pana ariyassa vinaye tevijjo hoti. Imassa ca pana, bho gotama, ariyassa vinaye tevijjassa brāhmaṇānaṁ tevijjo kalaṁ nāgghati soḷasiṁ. Abhikkantaṁ, bho gotama …pe… upāsakaṁ maṁ bhavaṁ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ṁ saraṇaṁ gat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경 (Tikaṇṇasutta)배경
세존은 바라문 호격과 함께 성자의 훈련에서 tevijja가 되는 설명을 닫습니다. 띠깐나는 고따마 존자를 두 번 부르며 두 정의가 다르다고 되받고, 세 베다에 정통한 이는 세 밝은 앎을 갖춘 이의 열여섯째 몫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수량으로 평가합니다. 이어 고따마 호격 뒤 root의 `…pe…`를 그대로 두어 정형 찬탄과 귀의 문구를 임의로 확장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라는 시작·기간과 귀의한 재가 신자라는 지위를 청하며, 고따마 호칭은 전체 카드에서 네 번입니다.
묵상
띠깐나가 자신이 칭송하던 기준을 다시 평가하고 귀의를 선택하는 흐름에서, 새로 이해한 뒤 기꺼이 고쳐 본 판단이 있나요? 그런 경험이 없거나 귀의라는 선택이 낯설다면, 처음 칭송과 마지막 인정의 차이만 살펴봐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