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답바·야차·사람인가를 묻다

도나가 신·간답바·야차·사람이 될 것인지 차례로 묻고, 세존께서 각 물음에 모두 같은 부정으로 답합니다.

“‘존자께서는 신이 되실 것입니까?’ ‘바라문이여, 나는 신이 되지 않을 것이오.’ ‘존자께서는 간답바가 되실 것입니까?’ ‘바라문이여, 나는 간답바가 되지 않을 것이오.’ ‘존자께서는 야차가 되실 것입니까?’ ‘바라문이여, 나는 야차가 되지 않을 것이오.’ ‘존자께서는 사람이 되실 것입니까?’ ‘바라문이여, 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오.’”

“Devo no bhavaṁ bhavissatī”ti? “Na kho ahaṁ, brāhmaṇa, devo bhavissāmī”ti. “Gandhabbo no bhavaṁ bhavissatī”ti? “Na kho ahaṁ, brāhmaṇa, gandhabbo bhavissāmī”ti. “Yakkho no bhavaṁ bhavissatī”ti? “Na kho ahaṁ, brāhmaṇa, yakkho bhavissāmī”ti. “Manusso no bhavaṁ bhavissatī”ti? “Na kho ahaṁ, brāhmaṇa, manusso bhavissām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36 도나경 (Doṇasutta)

배경

도나와 세존의 첫 직접 문답 전체입니다. 도나는 deva·gandhabba·yakkha·manussa를 신·간답바·야차·사람의 순서로 한 번씩 묻고, 세존은 같은 순서로 네 번 부정합니다. 질문의 no는 문답을 여는 의문 불변사이지 부정어가 아니므로 질문을 부정문으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bhavissati·bhavissāmi의 미래형은 각각 ‘되실 것입니까’와 ‘되지 않을 것이오’로 맞췄습니다. 각 답의 brāhmaṇa를 영어 보조 번역은 첫 답에만 드러내지만 정본에는 네 번 있으므로 ‘바라문이여’도 네 번입니다. 이 부정은 세존의 육체가 사람이 아니라는 선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도나가 곧 네 답을 되묻고, 뒤의 세존 설명은 그 존재가 되게 할 번뇌가 미래에 다시 생기지 않음을 이유로 밝힙니다.

묵상

신·간답바·야차·사람이라는 네 이름이 같은 질문과 부정 안에 놓인 배열은 어떻게 들리나요? 낯선 존재를 믿는지나 자신이 무엇인지 답할 필요는 없어요. 네 답이 모두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미래형으로 같다는 점만 살펴보거나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