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차와 사람도 아니라면 무엇인가

도나가 야차와 사람에 대한 나머지 문답을 되풀이한 뒤, 그렇다면 존자는 무엇이 될 것인지 묻습니다.

“‘존자께서는 야차가 되실 것입니까?’라고 여쭈었을 때, ‘바라문이여, 나는 야차가 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씀하셨느니라. ‘존자께서는 사람이 되실 것입니까?’라고 여쭈었을 때, ‘바라문이여, 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씀하셨느니라. 그러면 존자께서는 무엇이 되실 것인가?”

‘Yakkho no bhavaṁ bhavissatī’ti, iti puṭṭho samāno: ‘na kho ahaṁ, brāhmaṇa, yakkho bhavissāmī’ti vadesi. ‘Manusso no bhavaṁ bhavissatī’ti, iti puṭṭho samāno: ‘na kho ahaṁ, brāhmaṇa, manusso bhavissāmī’ti vadesi. Atha ko carahi bhavaṁ bhavissa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36 도나경 (Doṇasutta)

배경

앞 카드의 신·간답바에 이어 도나는 야차와 사람에 관한 두 문답도 같은 형식으로 되풀이합니다. iti puṭṭho samāno와 vadesi가 다시 두 번씩 나오므로 한국어의 ‘여쭈었을 때’와 ‘말씀하셨습니다’도 각각 두 번이며, 두 답의 brāhmaṇa 역시 ‘바라문이여’ 두 번으로 맞췄습니다. 마지막 3.9의 atha ko carahi는 네 가능성이 모두 부정된 뒤 “그러면 무엇인가”로 나아가는 별도의 질문입니다. bhavaṁ과 bhavissati를 살려 존자께 무엇이 되실 것인지 묻는 미래형을 유지했습니다. 이 카드 전체의 화자는 도나이고, 다음 카드에서야 세존의 설명이 시작됩니다. 수행적으로 마지막 질문은 정해 둔 네 범주 가운데 하나를 억지로 고르지 않고, 그 부정이 가리키는 원인을 새로 묻게 합니다.

묵상

네 가능성을 모두 되물은 뒤 “그러면 무엇입니까?”라고 이어지는 전환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정답이나 새로운 이름을 곧바로 찾을 필요는 없어요. 도나가 앞의 부정을 지우지 않은 채 질문의 틀을 넓힌다는 점만 살펴보거나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