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이여, 내가 어떤 번뇌를 버리지 않아 신이 될 수 있다면, 그 번뇌는 버려지고 뿌리가 잘려, 밑동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어 없어졌고,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되었소. 바라문이여, 내가 어떤 번뇌를 버리지 않아 간답바가 될 수 있다면 … 야차가 될 수 있다면 …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번뇌는 버려지고 뿌리가 잘려, 밑동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어 없어졌고,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되었소.”
“Yesaṁ kho ahaṁ, brāhmaṇa, āsavānaṁ appahīnattā devo bhaveyyaṁ, te me āsavā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ṅkatā āyatiṁ anuppādadhammā. Yesaṁ kho ahaṁ, brāhmaṇa, āsavānaṁ appahīnattā gandhabbo bhaveyyaṁ … yakkho bhaveyyaṁ … manusso bhaveyyaṁ, te me āsavā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ṅkatā āyatiṁ anuppādadhammā.
앙굿따라 니까야 AN 4.36 도나경 (Doṇasutta)배경
도나의 “무엇이 되실 것입니까?”에 대한 세존의 첫 설명입니다. appahīnattā는 번뇌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신·간답바·야차·사람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부정 조건을 세우고, te me āsavā는 그 번뇌가 세존에게서 어떻게 되었는지 답합니다. pahīna·ucchinnamūla·tālāvatthukata·anabhāvaṅkata·āyatiṁ anuppādadhammā의 다섯 결과를 버려짐·뿌리 잘림·밑동만 남은 야자수처럼 됨·존재하지 않게 됨·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음으로 두 번 모두 보존했습니다. 4.2의 정본은 간답바와 야차, 야차와 사람 사이에 일반 생략표 ‘…’를 두므로 한국어도 같은 두 위치에 ‘…’를 두었습니다. 이는 현재의 몸을 인간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설명이 아니라, 그 네 존재가 되게 할 번뇌가 미래에 생길 성질을 잃었다는 인과입니다.
묵상
“버려짐·뿌리 잘림·다시 일어나지 않음”이라는 결과의 흐름에서 지금 비교적 읽히는 한 표현이 있나요? 자신의 번뇌가 얼마나 사라졌는지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야자수 그루터기 비유가 강하게 느껴지면, 이 답이 앞의 네 부정을 이유와 연결한다는 점만 보거나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