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닦고 거듭 익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은 무엇입니까? 수행자들이여, 여기 한 수행자는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머무는 것을 알며, 사라지는 것을 압니다. 인식을 알고 …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머무는 것을 알며, 사라지는 것을 압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닦고 거듭 익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입니다.
Katamā ca,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satisampajaññāya saṁvattati? Idha, bhikkhave, bhikkhuno viditā vedan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ṁ gacchanti; viditā saññā …pe… viditā vitakk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ṁ gacchanti. Ayaṁ,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satisampajaññāya saṁvatt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41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힘을 기르는 경 (Samādhibhāvanāsutta)배경
셋째 결과의 질문 뒤, 아는 대상과 시점이 정밀하게 나뉩니다. 느낌은 일어남·머묾·사라짐의 세 시점에서 알려지고, root는 viditā saññā, 곧 “인식을 알고” 뒤에 …pe…를 두며, 생각은 다시 같은 세 시점을 온전히 밝힙니다. 영역이 인식의 세 시점을 풀어 썼더라도 root가 줄인 범위는 한국어도 …pe… 한 개로 남겼습니다. viditā의 반복은 현상을 억누르거나 붙드는 명령이 아니라 각 변화가 알려진다는 구조입니다. 이 답을 통해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은 느낌·인식·생각의 변화 시점을 놓치지 않는 닦음으로 구체화됩니다.
묵상
느낌·인식·생각 가운데 하나가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흐름을 지금 부담 없이 알아볼 수 있나요? 세 시점을 모두 붙잡으려 애쓸 필요는 없어요. 변화가 분명하지 않거나 안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면, 지금은 모른다고 두거나 질문을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