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은 이러하고, 이렇게 생겨나며, 이렇게 사라집니다. 느낌은 이러하고, 이렇게 생겨나며, 이렇게 사라집니다. 인식은 이러하고, 이렇게 생겨나며, 이렇게 사라집니다. 의지적 형성은 이러하고, 이렇게 생겨나며, 이렇게 사라집니다. 의식은 이러하고, 이렇게 생겨나며, 이렇게 사라집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닦고 거듭 익혀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집중의 닦음입니다.
‘iti rūpaṁ, iti rūpassa samudayo, iti rūpassa atthaṅgamo; iti vedanā, iti vedanāya samudayo, iti vedanāya atthaṅgamo; iti saññā, iti saññāya samudayo, iti saññāya atthaṅgamo; iti saṅkhārā, iti saṅkhārānaṁ samudayo, iti saṅkhārānaṁ atthaṅgamo; iti viññāṇaṁ, iti viññāṇassa samudayo, iti viññāṇassa atthaṅgamo’ti. Ayaṁ, bhikkhave,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āsavānaṁ khayāya saṁvatt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41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힘을 기르는 경 (Samādhibhāvanāsutta)배경
앞 카드가 제시한 다섯 집착의 다발 관찰을 빠짐없이 펼칩니다. 물질·느낌·인식·의지 작용·의식의 순서를 지키고, 각 항목마다 iti로 대상을 “이러하다”고 확인한 뒤 samudaya인 생겨남과 atthaṅgama인 사라짐을 밝힙니다. 따라서 다섯 대상과 세 판정은 5×3으로 모두 한국어에 드러나며 압축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전수 관찰을 닦고 거듭 익혀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넷째 삼매의 닦음이라고 결론짓습니다. 다음 카드는 네 갈래를 요약하고 다른 경의 게송으로 전체를 닫습니다.
묵상
물질·느낌·인식·의지 작용·의식 가운데 하나를 “이러하다, 생겨난다, 사라진다”는 세 관점으로 가볍게 볼 수 있나요? 어느 항목도 고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분석이 버겁다면 다섯 이름의 순서만 읽거나 지금은 살피지 않고 넘어가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