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꿀라마따도 같은 바람을 직접 말하다

나꿀라마따가 남편의 말을 대신 받지 않고, 자신의 젊은 시절과 충실함 및 현세와 다음 생에서 만나려는 바람을 직접 밝힙니다.

나꿀라마따 장자 부인도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아직 젊었을 때 젊은 나이로 나꿀라삐따 장자에게 왔습니다. 나는 나꿀라삐따 장자를 마음으로조차 저버린 적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몸으로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현세에서도 서로 만나고 다음 생에서도 서로 만나고 싶습니다.”

Nakulamātāpi kho gahapatānī bhagavantaṁ etadavoca: “yatohaṁ, bhante, nakulapituno gahapatissa daharasseva daharā ānītā, nābhijānāmi nakulapitaraṁ gahapatiṁ manasāpi aticaritā, kuto pana kāyena. Iccheyyāma mayaṁ, bhante, diṭṭhe ceva dhamme aññamaññaṁ passituṁ abhisamparāyañca aññamaññaṁ passitu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55 첫 번째 동등한 삶경 (Paṭhamasamajīvīsutta)

배경

남편의 진술 다음에 2.3이 나꿀라마따의 새 발화를 분명히 열고, 2.4-2.5가 아내의 진술을 끝까지 전개합니다. 남편 쪽과 마찬가지로 bhante 두 번, 젊은 시절, manasāpi와 kuto pana kāyena의 마음·몸 순서, 현세와 다음 생의 두 때, 서로 만나려는 두 표현이 모두 반복됩니다. 차이는 나꿀라마따가 “내가 나꿀라삐따에게 왔다”고 자기 시점에서 말한다는 데 있으므로 화자를 바꾸거나 남편의 말로 합치지 않았습니다. 경은 같은 바람을 한 사람의 대표 발언으로 압축하지 않고 두 사람 각자의 말로 확인합니다. 수행적으로 이 대칭은 관계의 조건을 상대에게만 요구하기 전에 각자가 자신의 행동과 바람을 말하는 구조를 보여 줍니다.

묵상

같은 바람을 나꿀라마따가 자기 말로 다시 밝히는 반복은 앞의 진술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두 사람의 관계를 이상적인 모범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어요. 관계 이야기가 불편하면, 동일한 마음·몸·두 삶의 배열을 각자가 한 번씩 말한다는 대칭만 보거나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