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

앞의 네 현세 결실과 달리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에 태어나는 내세의 결실입니다.

또한 시하여, 보시하는 이, 보시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납니다. 시하여, 보시하는 이, 보시의 주인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나는 것, 이것은 내세에 이르는 보시의 결실입니다.”

Puna caparaṁ, sīha, dāyako dānap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Yampi, sīha, dāyako dānap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idaṁ samparāyikaṁ dānaphal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시하 장군 경 (Sīhasenāpatisutta)

배경

네 현세 결실 뒤에 다섯째 결실을 별도로 둡니다. 몸이 무너짐·죽은 뒤·좋은 곳·천상 세계라는 네 표현이 사실 진술과 결론에서 모두 반복됩니다. 앞의 네 항목을 sandiṭṭhika, 곧 현세에서 직접 드러나는 결실이라고 한 것과 달리, 여기서는 samparāyika라는 말을 써 내세에 이르는 결실이라고 구별합니다. 따라서 다섯 결실 전체를 모두 현세의 결과로 합치지 않아야 합니다. 수행의 뜻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현재의 변화와 아직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사후의 주장을 같은 방식으로 안다고 여기지 않고 다음 대화의 구분을 준비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현세에서 드러나는 네 결실과 내세에 이르는 한 결실을 경이 구분하는 방식은 어떻게 들리나요? 사후 세계에 대한 확신을 억지로 정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직접 아는 것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구별해 말할 수 있나요? 판단을 유보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