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아는 네 결실의 첫 확인

시하 장군이 네 현세 결실은 믿음에 기대지 않고 안다며 사랑과 참사람의 교류를 확인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시하 장군이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밝히신 현세의 네 보시 결실에 관해서 저는 세존에 대한 믿음에 기대지 않습니다. 저도 이것들을 압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시하는 이, 보시의 주인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호감을 받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시하는 이, 보시의 주인입니다. 참사람들이 저와 어울립니다.

Evaṁ vutte, sīho senāpati bhagavantaṁ etadavoca: “yānimāni, bhante, bhagavatā cattāri sandiṭṭhikāni dānaphalāni akkhātāni, nāhaṁ ettha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 ahaṁ petāni jānāmi. Ahaṁ, bhante, dāyako dānapati bahuno janassa piyo manāpo. Ahaṁ, bhante, dāyako dānapati; maṁ santo sappurisā bhaj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시하 장군 경 (Sīhasenāpatisutta)

배경

다섯 결실을 들은 시하 장군이 자신의 앎을 밝히는 답변의 전반입니다. 그는 먼저 현세에서 드러나는 것이 정확히 넷이라고 수량을 되짚고, 그 네 가지에는 세존에 대한 믿음에 기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신도 직접 안다는 이유로 첫째 사랑과 호감을 받는 일, 둘째 참사람들이 자신과 어울리는 일을 일인칭으로 확인합니다. 세 번의 ‘세존이시여’와 ‘저는’이라는 화자 전환을 남겨 세존의 일반 진술과 장군의 경험 보고를 구분했습니다. 수행의 뜻은 믿음을 깎아내리는 데 있지 않고, 현재 경험으로 확인한 것과 아직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정직하게 나누는 데 있습니다.

묵상

‘믿음에 기대지 않고 저도 압니다’라는 말과 함께 떠오르는 직접 경험이 있나요? 다른 사람의 확신을 따라야 하거나 내 경험만 옳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분명히 아는 한 가지와 아직 확인하지 못한 한 가지를 구별해 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