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결실과 믿음

시하 장군은 사후의 결실은 알지 못해 믿음에 의지한다고 말하고 세존께서는 이를 거듭 확인하십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세존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다릅니다. ‘시하여, 보시하는 이, 보시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저는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 점에서는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지합니다.” “그렇습니다, 시하여. 그렇습니다, 시하여. 보시하는 이, 보시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납니다.”

Yañca kho maṁ, bhante, bhagavā evamāha: ‘dāyako, sīha, dānap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ī’ti, etāhaṁ na jānāmi; ettha ca panāhaṁ bhagavato saddhāya gacchāmī”ti. “Evametaṁ, sīha, evametaṁ, sīha. Dāyako dānap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34 시하 장군 경 (Sīhasenāpatisutta)

배경

시하 장군의 답변이 현세의 직접 앎에서 사후 결실로 전환됩니다. 그는 세존의 다섯째 진술을 그대로 인용한 뒤, 이것은 알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이 점에서는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지한다고 밝힙니다. 세존께서는 ‘그렇습니다, 시하여’를 두 번 반복하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는 문장을 다시 온전히 확인하십니다. 알지 못함의 부정, 믿음의 범위, 두 차례의 확인을 줄이지 않았습니다. 수행의 뜻은 경험과 믿음의 경계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아직 직접 알지 못하는 가르침을 어떤 신뢰로 받아들이는지 살피는 데 있습니다.

묵상

‘저는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믿음의 범위를 밝히는 시하 장군의 태도는 어떻게 들리나요? 모르는 것을 성급히 믿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알지 못한다고 정직하게 둘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나요? 판단을 미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