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여기 한 수행자가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느니라. ‘나는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을 닦고 거듭 닦아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아 확립하고 익혀 잘 성취했습니다. 그런데도 표상을 따르는 의식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머뭅니다.’”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ṁ vadeyya: ‘animittā hi kho me cetovimutti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atha ca pana me nimittānusāri viññāṇaṁ ho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3 벗어남 경 (Nissāraṇīyasutta)배경
다섯째 사례는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에서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로 주제를 옮깁니다. 한 수행자는 그것을 닦고 거듭 닦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확립하고 익히고 잘 성취했다고 말합니다. 일곱 수행 표현은 앞과 동일합니다. 그런데도 자기 의식이 표상을 따른다고 덧붙입니다. nimitta는 의식이 붙잡아 따라가는 특징이나 표상을 가리키며, animitta는 그 표상이 없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모든 인식 활동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표상 없음의 해탈을 충분히 닦았다는 주장과 의식이 여전히 표상을 뒤따른다는 진술의 모순입니다.
묵상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한 가지 표상으로 규정한 뒤 의식이 계속 그 이미지와 해석을 따라간 적이 있나요? 생각을 억지로 비우거나 현실 판단을 포기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알아차리는 것과 거기에 붙인 표상이 어떻게 다른지 잠시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차이가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