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해로운 근원에서 같은 상태가 생기다

탐욕·성냄·어리석음에서는 그 반대가 아니라 각각 같은 상태가 생겨난다는 세 부정과 전환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탐욕에서 탐욕 없음이 생겨나지 않느니라.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탐욕에서 탐욕만 생겨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성냄에서 성냄 없음이 생겨나지 않느니라.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성냄에서 성냄만 생겨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어리석음에서 어리석음 없음이 생겨나지 않느니라.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어리석음에서 어리석음만 생겨나느니라.”

Na, bhikkhave, lobhā alobho samudeti; atha kho, bhikkhave, lobhā lobhova samudeti. Na, bhikkhave, dosā adoso samudeti; atha kho, bhikkhave, dosā dosova samudeti. Na, bhikkhave, mohā amoho samudeti; atha kho, bhikkhave, mohā mohova samude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39 근원경 (Nidānasutta)

배경

첫 세 근원의 이름을 밝힌 직후, 각 근원을 두 문장씩 풉니다. 첫 문장은 탐욕에서 탐욕 없음이, 성냄에서 성냄 없음이, 어리석음에서 어리석음 없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부정합니다. 둘째 문장은 atha kho, 곧 ‘오히려’로 전환하여 탐욕에서는 탐욕만, 성냄에서는 성냄만, 어리석음에서는 어리석음만 생긴다고 밝힙니다. eva의 한정을 ‘만’으로 보존했고, 여섯 문장마다 ‘수행자들이여’를 한 번씩 옮겼습니다. 수행의 뜻은 반대 결과를 바라기만 하는 것과 실제 근원이 이어 낳는 방향을 구별하고, 같은 반응이 스스로 강화되는 조건을 알아차리는 데 있습니다.

묵상

탐욕스럽거나 성난 반응 하나가 뒤이어 비슷한 생각이나 말을 불러온 적이 있나요? 그 흐름을 곧 자신의 본성이라고 단정하거나 즉시 끊어야 한다고 요구할 필요는 없어요. 처음과 다음 반응이 어떻게 닮았는지 한 가지만 살펴보고, 떠오르지 않으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