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업이 생겨나는 근원은 셋이니라. 어떤 셋인가? 탐욕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은 업이 생겨나는 근원이니라.”
Tīṇimāni, bhikkhave, nidānāni kammānaṁ samudayāya. Katamāni tīṇi? Alobho nidānaṁ kammānaṁ samudayāya, adoso nidānaṁ kammānaṁ samudayāya, amoho nidānaṁ kammānaṁ samuday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6.39 근원경 (Nidānasutta)배경
둘째 절은 첫 절과 똑같이 업이 생겨나는 근원이 셋이라고 선언하고 “어떤 셋인가?”라고 묻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답의 세 항목입니다. alobha·adosa·amoha는 각각 탐욕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이며, 앞의 lobha·dosa·moha에 부정 접두어가 붙은 정확한 대칭입니다. 경은 이 셋도 별도의 결과 목록이 아니라 업이 생겨나는 nidāna, 곧 근원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수행의 뜻은 해로운 행위를 억누르는 데만 머물지 않고,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없는 상태에서도 행위가 생겨난다는 다른 출발점을 알아보는 데 있습니다. 다음 말씀은 이 세 근원이 무엇을 다시 낳는지 같은 형식으로 풉니다.
묵상
어떤 행동이 더 얻으려는 마음이나 밀어내는 마음 없이 자연스럽게 나온 적이 있나요? 그것을 완전한 선함의 증거로 삼을 필요는 없어요. 그때 마음에 여유나 분명함이 있었는지 한 가지 감각만 떠올려 볼 수 있고,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