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에 매인 보시는 다시 돌아옴으로 끝나다

첫 동기로 보시한 이는 사대왕천에 태어나지만 업과 위력과 영광과 지배력이 다하면 이곳으로 돌아온다고 밝힙니다.

“사리뿟따여, 기대하며 마음을 거기에 매고 쌓아 둘 것을 바라며, ‘죽은 뒤 이것을 누리리라’고 생각하여 보시한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사대왕천 신들의 동료로 태어나느니라. 그 업과 위력과 영광과 지배력이 다하면 돌아오는 이가 되어 이곳으로 다시 오느니라.”

“Tatra, sāriputta, yvāyaṁ sāpekho dānaṁ deti, patibaddhacitto dānaṁ deti, sannidhipekho dānaṁ deti, ‘imaṁ pecca paribhuñjissāmī’ti dānaṁ deti. So taṁ dānaṁ datvā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cātumahārājikānaṁ devānaṁ sahabyataṁ upapajjati. So taṁ kammaṁ khepetvā taṁ iddhiṁ taṁ yasaṁ taṁ ādhipaccaṁ āgāmī hoti āgantā itthatt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7.52 큰 결실이 있는 보시경 (Dānamahapphalasutta)

배경

세존은 첫 동기를 줄이지 않고 다시 반복한 뒤 그 결과를 말합니다. 이 사람도 보시의 결실로 사대왕천 신들의 무리에 태어나므로, 기대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결과도 없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삶을 지탱하는 kamma와 iddhi, yasa, ādhipacca, 곧 업·위력·영광·지배력이 소진되면 āgāmī, ‘돌아오는 이’가 되어 이 존재 상태로 되돌아옵니다. 질문에 나온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없음’은 보시가 완전히 무익하다는 뜻보다, 그 결실이 소진되고 귀환으로 끝나는 한계를 가리킵니다.

묵상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것과 그 결과가 오래가지 않는 것은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얻는 결실만 보지 않고 그것이 다한 뒤의 방향까지 본다면, 보시의 동기를 살피는 기준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