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성현들의 큰 제사를 본떠 나누다

음식의 형평 때문이 아니라 열 명의 옛 성현이 행한 큰 제사를 본받아 자신의 보시와 나눔을 행한다는 다섯째 동기입니다.

“‘나는 요리하지만 이들은 요리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옛 성현들, 곧 앗타까·와마까·와마데와·웻사밋따·야마닷기·앙기라사·바라드와자·와셋타·깟사빠·바구가 큰 제사를 행했듯이, ‘나도 이와 같이 보시하고 나누리라’고 보시합니다. …”

Napi ‘ahaṁ pacāmi, ime na pacanti, nārahāmi pacanto apacantānaṁ dānaṁ adātun’ti dānaṁ deti; api ca kho ‘yathā tesaṁ pubbakānaṁ isīnaṁ tāni mahāyaññāni ahesuṁ, seyyathidaṁ— aṭṭhakassa vāmakassa vāmadevassa vessāmittassa yamadaggino aṅgīrasassa bhāradvājassa vāseṭṭhassa kassapassa bhaguno, evaṁ me ayaṁ dānasaṁvibhāgo bhavissatī’ti dānaṁ deti …pe….

앙굿따라 니까야 AN 7.52 큰 결실이 있는 보시경 (Dānamahapphalasutta)

배경

다섯째 사람은 자신과 받는 이의 음식 형편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라고 먼저 선을 긋습니다. 그 대신 열 명의 옛 성현을 한 사람도 줄이지 않고 열거하며, 그들이 행한 mahāyañña, ‘큰 제사’를 본보기로 삼습니다. dānasaṁvibhāga는 단순히 의식을 치른다는 말이 아니라 ‘보시하고 나눔’을 행한다는 뜻입니다. 동기의 초점이 현재의 형평에서 오래된 성현들의 모범으로 옮겨 갑니다. 끝의 …pe…는 앞선 형식의 보시물·문답과 결과 서술이 반복됨을 표시하며, 사람 이름이나 새 동기를 생략하는 표지가 아닙니다.

묵상

존경하는 옛사람의 행위를 본받아 무언가를 나눈 적이 있나요? 본보기가 행동을 시작하게 하는 힘과, 그 행동을 내 마음의 일로 소화하는 것은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본보기가 있다면 그 차이를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