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시를 하면 내 마음이 맑아지고 만족과 기쁨이 생긴다’고 생각해서 주는 것도 아니느니라. 다만 마음의 장식이요 마음의 자산으로서 보시하느니라. 그는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음식·마실 것·옷·탈것·화환·향·바르는 것·침구·거처·등불을 주느니라. 사리뿟따여, 어떤 사람이 이런 보시를 하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Napi ‘imaṁ me dānaṁ dadato cittaṁ pasīdati, attamanatā somanassaṁ upajāyatī’ti dānaṁ deti; api ca kho cittālaṅkāracittaparikkhāraṁ dānaṁ deti. So taṁ dānaṁ deti samaṇassa vā brāhmaṇassa vā annaṁ pānaṁ vatthaṁ yānaṁ mālāgandhavilepanaṁ seyyāvasathapadīpeyyaṁ. Taṁ kiṁ maññasi, sāriputta, dadeyya idhekacco evarūpaṁ dānan”ti? “Evaṁ, bhante”.
앙굿따라 니까야 AN 7.52 큰 결실이 있는 보시경 (Dānamahapphalasutta)배경
마지막 사람은 보시할 때 생기는 맑음·만족·기쁨조차 주는 이유로 삼지 않습니다. cittālaṅkāra는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장식’이고 cittaparikkhāra는 마음을 갖추고 받쳐 주는 ‘자산’ 또는 도구입니다. 보시가 다른 보상이나 기분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마음을 다듬고 갖추는 실천 자체가 됩니다. 이어 첫 동기 때와 똑같은 사문·바라문과 아홉 보시물이 다시 온전히 제시되고, 세존의 질문과 사리뿟따의 긍정도 반복됩니다. 물건과 받는 이는 같아도 보시를 놓는 마음의 자리가 달라졌음이 선명해집니다.
묵상
보답이나 좋은 기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마음을 다듬는 일이 된 경험이 있나요? “마음의 장식”과 “마음의 자산” 가운데 어느 표현이 더 와닿는지, 그 까닭을 천천히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