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오늘날에는 바로 이렇게 말해야 옳느니라. ‘사람의 목숨은 얼마 되지 않아 짧고 가벼우며 괴로움과 고뇌가 많다. 지혜로 깨달아 선한 일을 하고 청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 수행자들이여, 오늘날 오래 사는 사람도 백 년 또는 조금 더 사느니라.”
Etarahi taṁ, bhikkhave, sammā vadamāno vadeyya: ‘appakaṁ jīvitaṁ manussānaṁ parittaṁ lahukaṁ bahudukkhaṁ bahupāyāsaṁ mantāyaṁ boddhabbaṁ, kattabbaṁ kusalaṁ, caritabbaṁ brahmacariyaṁ, natthi jātassa amaraṇan’ti. Etarahi, bhikkhave, yo ciraṁ jīvati so vassasataṁ appaṁ vā bhiyyo.
앙굿따라 니까야 AN 7.74 아라까경 (Arakasutta)배경
아라까의 옛 가르침을 전한 뒤 세존은 “오늘날 올바르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라며 같은 기준 문장을 자신의 시대에 적용합니다. 여기서는 아라까가 제자에게 붙인 ‘바라문이여’라는 호격만 빠지고, 삶의 짧음과 괴로움, 지혜·선행·청정한 삶, 죽지 않음이 없다는 내용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수명 조건은 크게 달라져, 오래 사는 사람조차 100년 또는 조금 더 살 뿐입니다. 이어지는 계산은 이 백 년을 막연한 장수로 두지 않고 계절·달·반달·밤·끼니라는 실제 반복 횟수로 차례로 바꿉니다.
묵상
백 년 또는 조금 더가 장수라는 문장을 읽을 때 “많다”와 “짧다” 가운데 어느 느낌이 먼저 드나요? 남은 날을 계산해 불안해하기보다 오늘 한 단위를 어떻게 보낼지 천천히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