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하루를 더 살 수 있기를 바라다

첫 비구가 하루 밤낮을 더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답합니다.

한 수행자가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하루 밤낮을 더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이리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Evaṁ vutte, aññatar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ṁ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rattindiv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

배경

첫 수행자의 답은 죽음 자체를 상상하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더 살기를 바라는 시간의 길이를 밝힙니다. rattindiva는 밤과 낮을 합친 하루 전체입니다. 그 시간 동안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자신에게 많은 일이 이루어진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닦습니다”라는 선언, 세존의 “어떻게 닦는가?”라는 질문, 수행자의 생각과 마지막 확인이 한 문답 안에 모두 있습니다. 뒤의 일곱 수행자도 같은 틀을 반복하면서 오직 보장받고 싶은 삶의 단위를 점점 줄여, 죽음의 상념이 얼마나 현재에 가까워지는지를 비교하게 합니다.

묵상

하루 밤낮을 더 살 수 있다면 무엇에 마음을 기울이고 싶나요? 계획을 길게 세우기보다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는 말이 성취의 양보다 가르침을 기억하는 데 놓인 점을 오늘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