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을 더 살 수 있기를 바라다

셋째 비구는 시간을 다시 반으로 줄여 반나절만 살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수행자가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반나절을 더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이리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upaḍḍhadivas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

배경

셋째 답의 upaḍḍhadivasa는 낮 하루의 절반, 곧 반나절입니다. 문답의 다른 부분은 앞선 두 수행자와 같아서, 죽음의 상념을 닦는다고 밝히고 방법을 질문받은 뒤 남은 시간 동안 세존의 가르침을 기억한다면 많은 일을 한 셈이라고 답합니다. 경은 반복을 통해 차이를 한 곳에 집중시킵니다. 밤낮 하루에서 낮 하루, 다시 반나절로 줄어도 수행자는 아직 그 단위만큼의 삶을 먼저 확보하기를 바랍니다. 뒤의 판정은 이 답도 방일하며 더디게 닦는 부류에 넣습니다. 긴 시간과 짧은 시간을 일상적 감각으로만 비교하지 말고 죽음의 불확실성 앞에서 보는 구조입니다.

묵상

반나절은 일상 계획에서는 짧지만 생존이 보장된 시간으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오전이나 오후 하나를 당연히 내 몫으로 여기는 마음이 있는지 지금 스스로 책망하지 말고 차분히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