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를 먹는 동안 더 살기를 바라다

넷째 비구는 하루의 일부가 아니라 한 번의 탁발 음식을 먹는 동안만이라도 살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다른 수행자가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한 끼의 탁발 음식을 먹는 동안만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이리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ekapiṇḍapātaṁ bhuñj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

배경

넷째 수행자부터 시간의 기준은 시계가 아니라 몸의 일상 행위로 바뀝니다. ekapiṇḍapāta는 한 번 받은 탁발 음식, 곧 한 끼를 먹는 동안입니다. 하루나 반나절보다 짧지만 음식 한 그릇을 다 먹을 때까지는 살 수 있으리라는 전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 사이에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면 많은 일을 했다고 여기겠다는 방향은 앞과 같습니다. 경은 죽음의 상념을 삶을 부정하는 생각으로 만들지 않고, 살아 있는 짧은 동안 무엇에 마음을 둘 것인가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뒤에서 한 끼 전체도 아직 더딘 기준으로 판정되어 더 짧은 입과 호흡으로 나아갑니다.

묵상

한 끼를 시작하면 끝까지 먹을 수 있으리라고 자연스럽게 여기나요? 그 믿음을 불안으로 흔들기보다, 먹는 동안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는 말이 한 끼의 주의를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