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다섯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을 바라다

여섯째 비구는 네다섯 입을 씹어 삼키는 아주 짧은 동안만 살아도 가르침을 기억하겠다고 답합니다.

다른 수행자가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네다섯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만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이리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cattāro pañca ālope saṅkhāditvā ajjhohar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

배경

여섯째 수행자는 식사의 절반에서 cattāro pañca ālope, 음식 네다섯 입으로 단위를 줄입니다. saṅkhāditvā와 ajjhoharāmi는 단순히 입에 넣는 것이 아니라 씹은 뒤 삼키는 두 동작을 모두 나타냅니다. 이 짧은 동안 살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합니다. 일상 감각으로는 이미 매우 예리해 보이지만, 세존은 이 답까지 방일하며 죽음의 상념을 더디게 닦는 여섯 부류의 마지막에 둡니다. 여러 입을 한 묶음으로 예상하는 동안에도 죽음이 끼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답은 단 한 입의 씹고 삼킴만 남깁니다.

묵상

네다섯 입을 먹는 짧은 시간에도 시작과 끝을 당연히 이어 붙이고 있나요? 씹기와 삼키기를 따로 느껴 보면 한 입마다 삶이 새로 허락되는 듯한 미세한 차이가 있는지 차분히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