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만을 바라다

여덟째 비구는 한 번의 들숨 뒤 날숨 또는 날숨 뒤 들숨 사이만 살아도 가르침을 기억하겠다고 답합니다.

다른 수행자가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한 번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그 사이만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이리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assasitvā vā passasāmi, passasitvā vā assas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

배경

여덟째 수행자의 단위는 음식보다 짧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 호흡입니다. assasitvā vā passasāmi와 passasitvā vā assasāmi는 들이쉰 뒤 내쉬는 경우와 내쉰 뒤 들이쉬는 경우를 양방향으로 모두 말합니다. 다음 날숨이나 들숨이 올 때까지 살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합니다. 세존은 이 답을 한 입의 답과 함께 예리한 죽음의 상념으로 인정합니다. 문장의 방향은 “곧 죽을 것이다”라는 공포보다, 다음 반 호흡이 보장되지 않은 지금 가르침을 기억한다는 데 있습니다. 들숨과 날숨의 순서도 하나로 줄이지 않았습니다.

묵상

들이쉰 뒤 내쉬는 것과 내쉰 뒤 들이쉬는 것을 각각 하나의 다리로 보면 지금 호흡이 다르게 느껴지나요? 다음 호흡을 억지로 붙잡지 말고, 지금 이어지는 한 방향만 알아차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