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이들을 ‘방일하며 머물고, 번뇌의 소멸을 위해 죽음의 상념을 더디게 닦는 수행자들’이라고 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한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만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죽음의 상념을 닦는 수행자가 있느니라.”
ime vuccanti, bhikkhave, ‘bhikkhū pamattā viharanti, dandhaṁ maraṇassatiṁ bhāventi āsavānaṁ khayāya’. Yo ca khv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ekaṁ ālopaṁ saṅkhāditvā ajjhohar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배경
ime, ‘이들’은 방금 다시 열거한 하루 밤낮부터 네다섯 입까지의 여섯 수행자를 가리킵니다. 판정은 그들이 pamatta, 방일하게 머물며 번뇌의 소멸을 위해 죽음의 상념을 dandha, 더디게 닦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상념을 아예 닦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어지는 yo ca khvāyaṁ은 대조되는 다음 수행자를 들며, 단 한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만 살아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여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생각한 답을 되풀이합니다. 이 카드에는 느린 여섯의 판정과 예리한 두 답 가운데 첫 답이 맞닿아 있어 두 부류의 경계가 드러납니다.
묵상
네다섯 입까지는 더디고 한 입부터 다른 부류가 되는 경계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아예 닦지 않는다는 말과 닦지만 더디다는 말의 차이, 바로 단 한 입의 현재성을 함께 차분히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