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한 번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사이만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죽음의 상념을 닦는 수행자가 있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들을 ‘방일하지 않고 머물며, 번뇌의 소멸을 위해 죽음의 상념을 예리하게 닦는 수행자들’이라고 하느니라.”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assasitvā vā passasāmi, passasitvā vā assas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ime vuccanti, bhikkhave, ‘bhikkhū appamattā viharanti, tikkhaṁ maraṇassatiṁ bhāventi āsavānaṁ khay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배경
둘째 답은 한 번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그 사이만 살아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여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생각한 수행자입니다. 두 호흡 방향과 목적, 결과가 다시 모두 제시됩니다. 이어 ime, ‘이들’은 앞 카드의 한 입 수행자와 이 한 호흡 수행자를 함께 가리킵니다. 세존은 이들이 appamatta, 방일하지 않게 머물며, 번뇌의 소멸을 위해 tikkha, 예리하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다고 인정합니다. 두 부류의 목표는 번뇌의 소멸로 같고, 다음 작은 동작조차 보장하지 않는 현재의 예리함에서 판정이 갈립니다.
묵상
한 입과 한 호흡이 같은 예리한 부류에 놓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시간을 더 잘게 쪼개는 경쟁으로 만들지 말고, 다음 동작을 당연히 보장하지 않는 깨어 있음이 무엇인지 차분히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