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룻다여,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사유를 하고 현세 행복의 높은 네 선정을 마음껏 수월하게, 힘들지 않게 얻는다면, 장자나 그 아들의 높은 집이 안팎으로 바르고, 바람을 막으며 문빗장을 잘 걸고 창을 닫은 것처럼, 그러면 아누룻다여, 나무 아래 거처도 만족하여 머무는 그대에게 즐거움과 흔들림 없음, 편안한 머묾과 열반에 들어감을 위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Yato kho tvaṁ, anuruddha, ime ca aṭṭha mahāpurisavitakke vitakkessasi, imesañca catunnaṁ jhānānaṁ ābhicetasikānaṁ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naṁ nikāmalābhī bhavissasi akicchalābhī akasiralābhī, tato tuyhaṁ, anuruddha, seyyathāpi nāma gahapatissa vā gahapatiputtassa vā kūṭāgāraṁ ullittāvalittaṁ nivātaṁ phusitaggaḷaṁ pihitavātapānaṁ; evamevaṁ te rukkhamūlasenāsanaṁ khāyissati santuṭṭhassa viharato ratiyā aparitassāya phāsuvihārāya okkamanāya nibbānassa.
앙굿따라 니까야 AN 8.30 아누룻다의 큰 사유경 (Anuruddhamahāvitakkasutta)배경
셋째 비유는 거처를 다룹니다. 집주인이나 그 아들의 높은 집은 안팎을 바르고 바람이 들지 않으며, 문빗장이 잘 맞고 창이 닫혀 있습니다. 그와 달리 아누룻다의 거처는 나무 아래이지만, 앞과 같은 조건을 갖추고 만족하여 머물면 그 집처럼 여겨집니다. 옷과 음식에서 반복된 즐거움·흔들리지 않음·편안한 머묾·열반에 들어감의 네 결론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비유는 모든 거처의 물리적 차이가 사라진다고 하지 않으며, 소박한 거처가 수행의 방향 안에서 충분하게 경험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묵상
바람을 막고 문과 창을 닫은 집과 나무 아래 거처의 대비에서 안전함과 만족 중 어느 말이 먼저 떠오르나요? 불편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요구로 읽을 필요는 없어요. 지금의 거처를 평가하고 싶지 않다면 비유가 세 번째 필수품으로 옮겨왔다는 점만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