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해 세 흐름을 갖추다

둘째로 가르침에, 셋째로 승가에 귀의함을 들며 세 귀의를 각각 독립된 공덕의 흐름으로 셉니다.

“또한 수행자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가르침에 귀의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둘째 공덕의 흐름 … 이끄느니라. 또한 수행자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승가에 귀의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셋째 공덕의 흐름, 유익함의 흐름이니라. 행복의 양식이고 하늘에 속하며, 행복한 결실을 맺어 하늘로 이끌고, 바람직하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며 이롭고 행복한 것으로 이끄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ariyasāvako dhammaṁ saraṇaṁ gato hoti. Ayaṁ, bhikkhave, dutiyo puññābhisando …pe… saṁvattati. Puna caparaṁ, bhikkhave, ariyasāvako saṅghaṁ saraṇaṁ gato hoti. Ayaṁ, bhikkhave, tatiyo puññābhisando kusalābhisando sukhassāhāro sovaggiko sukhavipāko saggasaṁvattaniko, iṭṭhāya kantāya manāpāya hitāya sukhāya saṁvatt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39 넘쳐흐르는 공덕경 (Abhisandasutta)

배경

첫째 답에 이어 둘째와 셋째 답이 같은 구조로 놓입니다. 대상만 Buddha에서 dhamma와 saṅgha, 곧 부처님에서 가르침과 승가로 바뀌고, 귀의한다는 동사는 그대로입니다. 둘째 결구의 …pe…는 빠알리 경문 자체가 앞의 결실 정형구를 생략한 표지이므로 풀어 보태지 않았고, 셋째 결구에서는 유익함의 흐름부터 이롭고 행복한 것으로 이끎까지가 다시 온전히 나옵니다. 네 번의 bhikkhave도 한국어에 네 번 남겼습니다. 이 배열은 세 귀의를 서로 떼어 놓지 않으면서도 각각을 독립된 공덕의 흐름으로 셉니다. 수행의 뜻은 의지하는 방향을 부처님·가르침·승가라는 세 대상으로 분명히 알아보는 데 있습니다.

묵상

부처님·가르침·승가라는 세 귀의처를 차례로 읽을 때 서로 다르게 다가오는 말이 있나요? 세 대상을 모두 같은 정도로 이해해야 하는 질문은 아니에요. 지금 의미가 열리는 하나가 있는지, 없다면 셋 모두 아직 낯선지 그대로 두고 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