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없음은 그릇된 가르침과 참되지 않은 사람을 먹다

믿음 없음의 자양분을 그릇된 가르침 듣기에서 찾고, 다시 참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림으로 거슬러 갑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믿음 없음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하느니라.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그릇된 가르침 듣기’라고 답해야 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릇된 가르침 듣기에도 자양분이 있고 자양분이 없지 않다고 말하느니라. 그 자양분은 무엇인가? ‘참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림’이라고 답해야 하느니라.”

Assaddhiy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assaddhiyassa? ‘Asaddhammassavanan’tissa vacanīyaṁ. Asaddhammassavanampāhaṁ, bhikkhave, sāhāraṁ vadāmi, no anāhāraṁ. Ko cāhāro asaddhammassavanassa? ‘Asappurisasaṁsevo’tissa vacan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10.61 알지 못함에 관한 경 (Avijjāsutta)

배경

믿음 없음의 앞에는 asaddhammassavana, 그릇된 가르침을 듣는 일이 놓입니다. 무엇을 반복해서 듣는지가 신뢰의 방향을 채운다는 연결입니다. 다시 그 듣기의 자양분을 물으면 asappurisasaṁseva, 참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라고 답합니다. 이 대목은 사람에게 고정된 낙인을 붙이는 목록을 만들지 않고, 어떤 관계가 어떤 말을 듣게 하고 그 말이 믿음과 주의를 어떻게 채우는지 연쇄만 밝힙니다. 각 항목에도 자양분이 있고 없지 않다는 같은 문형이 붙어, 관계와 듣기 역시 더 앞선 조건 속에서 자란다는 점을 유지합니다.

묵상

자주 함께하는 사람과 자주 듣는 말이 무엇을 믿고 의심하게 하는지 느껴 본 적이 있나요? 누군가를 곧바로 참되지 않은 사람이라 규정하기보다, 그 관계에서 실제로 무엇을 되풀이해 듣는지부터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