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모이면 있는 그대로 알고 본다

삼매에 든 이는 있는 그대로 알고 보게 되며, 그 앎과 봄에서 싫증과 탐욕의 빛바램이 이어집니다.

수행자들이여, 삼매에 든 이는 ‘내가 있는 그대로 알고 보기를’ 하고 바랄 필요가 없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삼매에 든 이가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이는 ‘내게 싫증이 나고 탐욕이 빛바래기를’ 하고 바랄 필요가 없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이에게 싫증이 나고 탐욕이 빛바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니라.

Samāhitassa, bhikkhave, na cetanāya karaṇīyaṁ: ‘yathābhūtaṁ jānāmi passāmī’ti. Dhammatā esā, bhikkhave, yaṁ samāhito yathābhūtaṁ jānāti passati. Yathābhūtaṁ, bhikkhave, jānato passato na cetanāya karaṇīyaṁ: ‘nibbindāmi virajjāmī’ti. Dhammatā esā, bhikkhave, yaṁ yathābhūtaṁ jānaṁ passaṁ nibbindati virajj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10.2 바랄 필요 없음경 (Cetanākaraṇīyasutta)

배경

삼매는 연쇄의 도착점이 아니라 다음 두 변화의 조건으로 놓입니다. samāhita, 삼매에 든 이에게는 yathābhūtaṃ jānāti passati, 있는 그대로 아는 것과 보는 것이 이어집니다. 그 앎과 봄은 다시 nibbindati와 virajjati로 이어집니다. 앞의 말은 매혹에서 멀어지는 싫증을, 뒤의 말은 탐욕의 빛이 바래는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수행의 뜻은 고요한 느낌을 붙드는 데 머물지 않고, 그 고요에서 경험을 그대로 알고 보는 데 있습니다.

묵상

고요함을 마지막 목표로 붙드는 때와,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때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지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판단을 잠시 보류한다면 어떤 것이 더 분명해지나요? 아무것도 알아지지 않는다면 그 답도 그대로 둘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