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싫증과 탐욕의 빛바램은 해탈의 앎과 봄을 목적으로 하고 이익으로 하느니라. 있는 그대로의 앎과 봄은 싫증과 탐욕의 빛바램을 목적으로 하고 이익으로 하느니라. 집중은 있는 그대로의 앎과 봄을 목적으로 하고 이익으로 하느니라.
Iti kho, bhikkhave, nibbidāvirāgo vimuttiñāṇadassanattho vimuttiñāṇadassanānisaṁso; yathābhūtañāṇadassanaṁ nibbidāvirāgatthaṁ nibbidāvirāgānisaṁsaṁ; samādhi yathābhūtañāṇadassanattho yathābhūtañāṇadassanānisaṁso;
앙굿따라 니까야 AN 10.2 바랄 필요 없음경 (Cetanākaraṇīyasutta)배경
앞에서 계행으로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전개한 뒤, 결론은 마지막 쪽에서 거꾸로 연결을 짚습니다. 첫 세 쌍은 싫증과 탐욕의 빛바램에서 해탈의 앎과 봄으로, 있는 그대로의 앎과 봄에서 싫증과 탐욕의 빛바램으로, 삼매에서 있는 그대로의 앎과 봄으로 이어집니다. 각 쌍에서 attha는 목적, ānisaṃsa는 이익으로 되풀이됩니다. 결과를 앞 조건의 목적이자 이익으로 두어, 연쇄의 각 고리가 어디를 향하는지 밝힙니다.
묵상
연쇄를 끝에서 거꾸로 읽으니 앞의 어느 조건도 혼자 떨어진 성취가 아니라는 점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목적’과 ‘이익’이 같은 결과를 두 번 가리킬 때, 나중 결과만 서두르기보다 지금 조건을 살피는 뜻으로 읽힐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