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죽음의 상념을 닦고 거듭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으며,
불사에 잠기고 불사로 끝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죽음의 상념을 닦고 있는가?”
“maraṇassati, bhikkhave,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amatogadhā amatapariyosānā. Bhāvetha no tumhe, bhikkhave,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 배경
세존의 첫 선언과 질문입니다. maraṇassati는 ‘죽음의 상념’, bhāvitā bahulīkatā는 한 번 떠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닦고 거듭 익힘’을 뜻합니다. 그 결과는 큰 결실·큰 이익이라는 두 표현에 이어 amatogadhā와 amatapariyosānā, 곧 불사에 잠기고 불사로 끝난다는 두 방향으로 제시됩니다. 이어 같은 호격으로 실제로 닦는지를 묻기 때문에 결과와 질문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수행의 초점은 죽음을 공포의 결론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유한함을 잊지 않는 관찰이 불사를 향하도록 거듭 기르는 데 있습니다.
묵상
“죽음의 상념”과 “불사”가 한 문단에 함께 놓인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이 질문 앞에서 특별한 감정이나 답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어요. 두 말 사이의 긴장만 살펴보거나, 죽음이라는 주제가 무겁다면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바라문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은
늙고 노쇠하고 연로하여,
긴 세월 끝 말년에 이른 백스무 살이다.
선도 유익도 행하지 못했고
두려움을 막을 피난처도 만들지 못했다.
바라문들이여, 이 세상은
늙음과 질병과 죽음에 이끌려 간다.
바라문들이여, 세상이 이렇게
늙음과 질병과 죽음에 이끌려 갈 때,
여기에서 몸으로 절제하고 말로 절제하고
마음으로 절제하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피난처요 은신처요 섬이요 귀의처요 의지처이다.”
“Taggha tumhe, brāhmaṇā, jiṇṇā vuddhā mahallakā addhagatā vayoanuppattā vīsavassasatikā jātiyā; te cattha akatakalyāṇā akatakusalā akatabhīruttāṇā. Upanīyati kho ayaṁ, brāhmaṇā, loko jarāya byādhinā maraṇena. Evaṁ upanīyamāne kho, brāhmaṇā, loke jarāya byādhinā maraṇena, yo idha kāyena saṁyamo vācāya saṁyamo manasā saṁyamo, taṁ tassa petassa tāṇañca leṇañca dīpañca saraṇañca parāyaṇañc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1 제사를 맡는 계층의 두 사람에 관한 첫 번째 경 (Paṭhamadvebrāhmaṇasutta) 배경
세존의 답은 taggha, 곧 ‘참으로’로 두 바라문의 나이와 세 가지 하지 못함을 그대로 되받은 뒤, 그 고백을 세계의 조건과 실천으로 넓힙니다. 늙음·질병·죽음이 세계를 이끈다는 세 항목이 2.3과 2.4에서 반복되고, 몸·말·마음의 saṁyama도 세 번 나옵니다. 여기서 절제한 바로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그 절제가 그 사람의 피난처·은신처·섬·귀의처·의지처가 됩니다. 피할 수 없는 흐름을 부정하기보다 현재의 행위를 피난처로 삼는 것이 답의 수행 방향입니다.
묵상
몸·말·마음의 절제라는 세 갈래를 읽을 때, 오늘 한 말이나 행동 가운데 조금 덜 해치도록 멈출 수 있는 한 가지가 보이나요? 지금은 떠오르지 않거나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힘들다면, 아무것도 고르지 않고 넘어가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