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던 어린 가족을 잃었어요. 어디서든 눈물이 나요.
조카처럼 손주처럼 예뻐하던 아이가 세상을 떠났어요. 장례가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도 아이의 물건만 보면 눈물이 나요. 주변에서는 힘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더 아프게 들려요. 이렇게까지 아끼지 말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먼저
아끼던 아이를 먼저 보내고 어디서든 눈물이 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울고 싶은 만큼 울어도 되고, 그 시간에 기한은 없어요.
부처님 때, 비슷한 자리
사왓티 근처 동쪽 절(뿝바라마)에 머물던 부처님께 한낮에 미가라의 어머니라 불리는 위사카가 찾아왔습니다. 그날 위사카는 사랑하고 아끼던 손녀를 막 떠나보낸 참이었고, 옷과 머리가 젖은 채였습니다. 부처님은 위로의 말보다 어디서 오는 길인지를 먼저 물었고, 위사카는 손녀가 세상을 떠났다고 답했습니다. 부처님이 사왓티 사람 수만큼 자녀와 손주를 두고 싶으냐고 묻자 위사카는 그러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사왓티에서 하루에 몇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지 묻자 적어도 한 사람은 매일 떠난다고 답했고, 그렇다면 옷과 머리가 마를 날이 있겠느냐는 물음에는 없겠다고, 그렇게 많은 자녀와 손주는 바라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부처님은 그때 사랑하는 이의 수와 괴로움의 수를 나란히 세어 주었습니다.
“자, 위사카여, 한낮에 젖은 옷과 젖은 머리로 어디서 이렇게 찾아왔습니까?” “스승님, 사랑하고 아끼던 제 손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한낮에 젖은 옷과 젖은 머리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빠알리 원문
“Handa kuto nu tvaṁ, visākhe, āgacchasi allavatthā allakesā idhūpasaṅkantā divā divassā”ti? “Nattā me, bhante, piyā manāpā kālaṅkatā. Tenāhaṁ allavatthā allakesā idhūpasaṅkantā divā divassā”ti.
“위사카여, 사랑하는 이가 백이면 괴로움도 백이다. 사랑하는 이가 아흔이면 괴로움도 아흔이다. 사랑하는 이가 여든이면 괴로움도 여든이다. 사랑하는 이가 일흔이면 괴로움도 일흔이다. 사랑하는 이가 예순이면 괴로움도 예순이다. 사랑하는 이가 쉰이면 괴로움도 쉰이다. 사랑하는 이가 마흔이면 괴로움도 마흔이다. 사랑하는 이가 서른이면 괴로움도 서른이다. 사랑하는 이가 스물이면 괴로움도 스물이다. 사랑하는 이가 열이면 괴로움도 열이다. 사랑하는 이가 아홉이면 괴로움도 아홉이다. 사랑하는 이가 여덟이면 괴로움도 여덟이다. 사랑하는 이가 일곱이면 괴로움도 일곱이다. 사랑하는 이가 여섯이면 괴로움도 여섯이다. 사랑하는 이가 다섯이면 괴로움도 다섯이다. 사랑하는 이가 넷이면 괴로움도 넷이다. 사랑하는 이가 셋이면 괴로움도 셋이다. 사랑하는 이가 둘이면 괴로움도 둘이다. 사랑하는 이가 하나이면 괴로움도 하나다. 사랑하는 이가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 그런 이는 슬픔이 없고 티끌이 없고 애태움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
빠알리 원문
“Yesaṁ kho, visākhe, sataṁ piyāni, sataṁ tesaṁ dukkhāni; yesaṁ navuti piyāni, navuti tesaṁ dukkhāni; yesaṁ asīti piyāni, asīti tesaṁ dukkhāni; yesaṁ sattati piyāni, sattati tesaṁ dukkhāni; yesaṁ saṭṭhi piyāni, saṭṭhi tesaṁ dukkhāni; yesaṁ paññāsaṁ piyāni, paññāsaṁ tesaṁ dukkhāni; yesaṁ cattārīsaṁ piyāni, cattārīsaṁ tesaṁ dukkhāni, yesaṁ tiṁsaṁ piyāni, tiṁsaṁ tesaṁ dukkhāni; yesaṁ vīsati piyāni, vīsati tesaṁ dukkhāni, yesaṁ dasa piyāni, dasa tesaṁ dukkhāni; yesaṁ nava piyāni, nava tesaṁ dukkhāni; yesaṁ aṭṭha piyāni, aṭṭha tesaṁ dukkhāni; yesaṁ satta piyāni, satta tesaṁ dukkhāni; yesaṁ cha piyāni, cha tesaṁ dukkhāni; yesaṁ pañca piyāni, pañca tesaṁ dukkhāni; yesaṁ cattāri piyāni, cattāri tesaṁ dukkhāni; yesaṁ tīṇi piyāni, tīṇi tesaṁ dukkhāni; yesaṁ dve piyāni, dve tesaṁ dukkhāni; yesaṁ ekaṁ piyaṁ, ekaṁ tesaṁ dukkhaṁ; yesaṁ natthi piyaṁ, natthi tesaṁ dukkhaṁ, asokā te virajā anupāyāsāti vadāmī”ti.
부처님이 오늘 답한다면
따옴표 안의 말과 상자 안의 글만 경전의 말씀입니다. 나머지는 경에서 부처님이 답한 방식을 따라 편집자가 쓴 글입니다.
위사카는 젖은 옷과 젖은 머리 그대로 부처님을 찾아왔어요. 부처님은 그 모습을 고치라고 하지 않고 어디서 오는 길인지 먼저 물었어요. 손녀를 보내고 어디서든 눈물이 나는 사람이 이 경의 첫 장면에 앉아 있어요.
이어진 말은 차갑게 들릴 수 있어요. “사랑하는 이가 백이면 괴로움도 백이다”라는 말이에요. 부처님은 이 말로 위사카의 젖은 옷을 흠이라 부르지 않고, 사랑한 사람의 수와 이어서 셈해 보였어요. 사랑한 이가 있으면 그만큼 괴로움도 따라온다고 경은 셈해요. 이 장면에 사랑한 일을 나무라는 말은 없어요.
같은 날 부처님은 게송도 읊었어요. 슬픔과 탄식이 어디에서 생기는지 말하는 대목이에요.
세상의 온갖 슬픔과 탄식, 갖가지 모습의 괴로움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겨난다. 사랑하는 이가 없으면 그것들은 생기지 않는다.
빠알리 원문
“Ye keci sokā paridevitā vā, Dukkhā va lokasmimanekarūpā; Piyaṁ paṭiccappabhavanti ete, Piye asante na bhavanti ete.
슬픔과 탄식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긴다고 해요. 오늘의 눈물은 그 아이를 사랑한 자국이에요. 눈물의 크기를 경이 재지는 않아요. 이 눈물에는 줄여야 할 분량도, 끝내야 할 날도 정해져 있지 않아요.
경을 끝맺는 게송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 어디에도 사랑하는 것을 두지 말라고까지 말해요. 이 줄을 숨기지 않고 적어 둘게요. 다만 오늘 읽지 않아도 돼요. 손녀를 사랑한 위사카를 나무라는 말은 경 어디에도 없어요.
“그러므로 세상 어디에도 사랑하는 이가 없는 이들은 행복하고 슬픔이 없다. 그러므로 슬픔 없고 티끌 없는 곳을 바라는 이는 세상 어디에도 사랑하는 이를 두지 말라.”
빠알리 원문
Tasmā hi te sukhino vītasokā, Yesaṁ piyaṁ natthi kuhiñci loke; Tasmā asokaṁ virajaṁ patthayāno, Piyaṁ na kayirātha kuhiñci loke”ti.
곁에서 건네는 힘내라는 말이 아프게 들린다면, 부처님이 위사카에게 한 첫마디가 어디서 오는 길이냐는 물음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세요. 조언을 건네기 전에 먼저 들어 줄 사람 한 명을 곁에 부르는 일이 이 장면과 닮았어요.
오늘 해 볼 것
- 눈물이 날 때 막지 말고, 아이 이름을 한 번 소리 내어 불러 보세요. 목이 메어 중간에 멈춰도 괜찮아요.
- 아이가 좋아했던 것을 하나 적어 두세요. 음식이든 노래든 장난감이든 하나면 돼요.
- 곁의 한 사람에게 ‘지금은 조언 말고 그냥 들어 줘’라고 말해 보세요.
이렇게 읽기 쉬워요
- 사랑하는 이가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고 했으니, 아이를 그렇게 아낀 것이 잘못이었다.
- 부처님은 젖은 옷과 머리로 찾아온 위사카에게 어디서 오는 길인지 먼저 물었고, 이 장면에는 사랑한 일을 나무라는 말이 없다. ud8.8:2.1–2.3
- 사랑이 클수록 괴로움이 크니 사랑을 줄이라는 처방이다.
- 이 대목은 사랑하는 이의 수와 괴로움의 수를 백에서 하나까지 나란히 셀 뿐이다. 경을 맺는 게송은 사랑하는 것을 두지 말라고 하지만, 손녀를 사랑한 위사카를 나무라는 말은 없다 ud8.8:5.1–8.4
- 하루에도 여러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고 물은 것은 이 슬픔이 별것 아니라는 말이다.
- 위사카는 그 물음에 하루에 적어도 한 사람은 떠난다고 답했고, 그렇다면 옷과 머리가 마를 날이 없겠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슬픔을 작게 보라는 말은 없다. ud8.8:3.1–4.3
경전 밖의 도움
부처님 말씀이 아닌 현실 안내입니다. 확인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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