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띳찬나 숫따(가려진 것)

Paṭicchanna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3.131

가려진 채로만 오가는 셋(여성·브라흐마나의 신성한 구절·그릇된 견해)과 드러나서 빛나는 셋(달·해·깨달음에 이른 이가 알린 가르침과 규율)을 맞세운다.

인용된 가르침 2구절

이 경을 2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가려진 채로만 오가는 셋 1구절

여성, 브라흐마나의 신성한 구절, 그릇된 견해는 가려진 채로 오가고 드러난 채로는 오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수행자들이여, 가려진 채로 오가고 드러난 채로는 오가지 않는 것이 셋 있다. 무엇이 셋인가? 수행자들이여, 여성은 가려진 채로 오가고 드러난 채로는 오가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들의 신성한 구절(만따)은 가려진 채로 오가고 드러난 채로는 오가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그릇된 견해는 가려진 채로 오가고 드러난 채로는 오가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이 셋은 가려진 채로 오가고 드러난 채로는 오가지 않는다.

“Tīṇimāni, bhikkhave, paṭicchannāni āvahanti, no vivaṭāni. Katamāni tīṇi? Mātugāmo, bhikkhave, paṭicchanno āvahati, no vivaṭo; brāhmaṇānaṁ, bhikkhave, mantā paṭicchannā āvahanti, no vivaṭā; micchādiṭṭhi, bhikkhave, paṭicchannā āvahati, no vivaṭā. Imāni kho, bhikkhave, tīṇi paṭicchannāni āvahanti, no vivaṭāni.

앙굿따라 니까야 AN 3.131 빠띳찬나 숫따 (가려진 것)

배경

짧은 경의 앞 절반입니다. 가려진 채로만 오가는 것 셋을 들고, 뒤 절반에서 드러나야 빛나는 것 셋을 같은 틀로 맞세웁니다. 셋은 여성, 브라흐마나의 신성한 구절, 그릇된 견해(밋차딧티)입니다. 원문은 세 항목 모두에 같은 동사(아와하띠, 실려 오가다)를 쓰고, 왜 가려지는지는 풀어 말하지 않습니다. 앞의 둘은 그 시대 사람들이 늘 보던 모습입니다. 셋째인 그릇된 견해는 드러내 놓고 따져 보지 않은 채 오가는 생각으로 읽을 수 있고, 이 대비가 뒤 절반의 가르침과 맞물립니다. 경은 여성의 값어치를 따지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묵상

‘가려진 채로 오간다’는 말에서 시작해 봐요. 남 앞에 꺼내 놓고 따져 본 적 없이 혼자 오래 믿어 온 생각이 하나 떠오르나요? 떠오르지 않으면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요. 떠오른다면 그 생각을 믿을 만한 사람 앞에서 소리 내어 한 번 말해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2 드러나서 빛나는 셋 - 달, 해, 가르침 1구절

둥근 달, 둥근 해, 깨달음에 이른 이가 알린 가르침과 규율은 드러나서 빛나고 가려져서는 빛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드러나서 빛나고 가려져서는 빛나지 않는 것이 셋 있다. 무엇이 셋인가? 수행자들이여, 둥근 달은 드러나서 빛나고 가려져서는 빛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둥근 해는 드러나서 빛나고 가려져서는 빛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가 알린 가르침과 규율은 드러나서 빛나고 가려져서는 빛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이 셋은 드러나서 빛나고 가려져서는 빛나지 않는다.”

Tīṇimāni, bhikkhave, vivaṭāni virocanti, no paṭicchannāni. Katamāni tīṇi? Candamaṇḍalaṁ, bhikkhave, vivaṭaṁ virocati, no paṭicchannaṁ; sūriyamaṇḍalaṁ, bhikkhave, vivaṭaṁ virocati, no paṭicchannaṁ; tathāgatappavedito dhammavinayo, bhikkhave, vivaṭo virocati, no paṭicchanno. Imāni kho, bhikkhave, tīṇi vivaṭāni virocanti, no paṭicchannān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131 빠띳찬나 숫따 (가려진 것)

배경

앞 절반과 같은 부름말, 같은 물음으로 시작하되 동사가 ‘오가다’에서 ‘빛나다(위로짜띠)’로, 조건이 ‘가려진 채로’에서 ‘드러나서’로 바뀝니다. 셋은 둥근 달, 둥근 해, 깨달음에 이른 이가 알린 가르침과 규율(담마위나야)입니다. 달과 해는 구름에 가리면 빛을 잃고 드러날 때 빛납니다. 가르침도 그 곁에 놓여, 몇 사람에게만 몰래 전하는 비밀 구절과 반대쪽 자리에 섭니다. 앞에서 그릇된 견해가 가려진 채로만 오갔다면, 가르침은 누구 앞에 내놓고 살펴보게 할수록 제 빛을 낸다는 대비입니다. 인터넷에 도는 ‘해와 달과 진실은 오래 숨길 수 없다’는 말의 원형이 이 대목입니다.

묵상

달이나 해를 마지막으로 올려다본 때를 떠올릴 수 있나요? 요즘 내가 기대는 말이나 가르침 가운데, 누구 앞에서든 꺼내 놓고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 골라 볼 수 있을까요? 아직 고르기 어렵다면 고르지 않은 채로 두는 것도 지금의 답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