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 못한 여느 사람은 스스로도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벗어나지 못했으면서, 남이 늙은 것을 보면 언짢아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하며, 자기 자신은 잊고 그렇게 한다. ‘나 또한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벗어나지 못한 채 남이 늙은 것을 보고 언짢아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마땅치 않을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내가 이렇게 살펴본 뒤로 젊음에 대한 취함은 남김없이 사라졌다.
‘Assutavā kho puthujjano attanā jarādhammo samāno jaraṁ anatīto paraṁ jiṇṇaṁ disvā aṭṭīyati harāyati jigucchati attānaṁyeva atisitvā, ahampi khomhi jarādhammo jaraṁ anatīto. Ahañceva kho pana jarādhammo samāno jaraṁ anatīto paraṁ jiṇṇaṁ disvā aṭṭīyeyyaṁ harāyeyyaṁ jiguccheyyaṁ na metaṁ assa patirūpan’ti. Tassa mayhaṁ, bhikkhave, iti paṭisañcikkhato yo yobbane yobbanamado so sabbaso pahīyi.
배경
이 이야기는 부처님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취해 있었다’는 말은 술에 취한다고 할 때의 그 말과 같습니다. 왕자 싯다르타도 젊음에, 건강에, 살아 있음에 취해 있었습니다. 세 개의 궁전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에 둘러싸여, 늙은이와 병든 사람을 보지 못하도록 아버지가 차단한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현대인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안티에이징 산업, 건강 보조제, 피트니스 문화는 모두 늙음과 쇠퇴를 ‘차단’하려는 시도입니다. 부처님은 이 차단 자체가 문제라고 하십니다. 외면해도 늙음은 찾아오며, 준비 없이 맞이하게 될 뿐입니다.
묵상
당신은 지금 무엇에 취해 있나요? 젊음일까요? 건강일까요? 살아 있음 그 자체일까요? 이 세 가지가 영원할 것이라는 무의식적 전제 위에 삶을 세우고 있지는 않나요? 거울을 보고 처음 주름을 발견했을 때, 무릎이 처음 아팠을 때, 그때의 충격이 취함에서 깨어나는 첫 순간이었는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