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타마식카 숫따(배움, 첫째)

Paṭhamasikkhā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3.86

계·삼매·지혜 세 가지 공부를 얼마나 채우느냐에 따라 수행의 자리가 나뉜다고 말한다.

인용된 가르침 3구절

이 경을 2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깨달음의 네 단계: 흐름에 든 이에서 완전히 깨달은 이까지 2구절

흐름에 든 이에서 완전히 깨달은 이까지 - 네 단계의 깨달음

그는 세 가지 족쇄가 다하고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만 돌아오는 이가 되며, 이 세상에 단 한 번만 돌아와 괴로움의 끝을 짓는다. … 그는 다섯 가지 낮은 족쇄가 다하여 모태를 거치지 않고 태어나는 이가 되며, 그곳에서 완전히 고요히 꺼져 그 세계로부터 돌아오지 않는다. …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부분적으로 닦는 자는 부분적으로 성취하고, 원만히 닦는 자는 원만히 성취한다. 그러나 이 배움의 조항들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나는 말한다.

So tiṇṇ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ṁ tanuttā sakadāgāmī hoti, sakideva imaṁ lokaṁ āgantvā dukkhassantaṁ karoti. … So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o hoti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 Iti kho, bhikkhave, padesaṁ padesakārī ārādheti paripūraṁ paripūrakārī. Avañjhāni tvevāhaṁ, bhikkhave, sikkhāpadāni vadām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86 빠타마식카 숫따 (배움, 첫째)

배경

AN 3.86은 계·마음이 한곳에 모임(사마디)·지혜라는 세 가지 공부를 어디까지 채웠는가에 따라 깨달음이 네 단계로 갈린다고 말합니다. 계만 원만히 갖춘 이는 세 가지 족쇄가 풀려 흐름에 든 이가 되고, 같은 자리에서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까지 엷어지면 “이 세상에 단 한 번만 돌아와 괴로움의 끝을 짓는” 한 번만 돌아오는 이가 됩니다. 계와 마음이 한곳에 모임을 함께 원만히 갖추면 다섯 가지 낮은 족쇄가 풀려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가 되고, 지혜까지 원만히 갖추면 흘러드는 것이 다한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가 됩니다. 이 경은 네 단계를 나열하고 끝나지 않습니다. 결론이 따로 붙습니다. “부분적으로 닦는 자는 부분적으로 성취하고, 원만히 닦는 자는 원만히 성취한다.” 깨달음은 채운 만큼 정확히 돌아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마지막에 못을 박으십니다. “이 배움의 조항들은 결코 헛되지 않다.” 아직 어느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더라도, 오늘 지킨 계와 앉은 자리는 그대로 남습니다.

묵상

네 단계 중 지금 어디쯤인지 재보고 싶어지나요? 이 경은 계·마음이 한곳에 모임·지혜 가운데 어디가 비어 있는지 살펴보라고 해요. 셋 중 가장 약한 하나를 골라 이번 주에는 그것만 채워 보세요. “부분적으로 닦는 자는 부분적으로 성취한다”는 말은, 조금 닦은 것도 반드시 남는다는 약속이기도 해요.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계를 원만히 갖추고 마음이 한곳에 모임(사마디)을 원만히 갖추고 지혜를 원만히 갖추며, 그는 흘러드는 것이 다하여 흘러드는 것 없는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의 풀려남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뛰어난 지혜로 실현하고 두루 갖추어 머문다.

So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86 빠타마식카 숫따 (배움, 첫째)

배경

흐름에 든 이의 세 가지 족쇄에 더해 탐냄과 성냄이 옅어진 이가 한 번만 돌아오는 이입니다. 이 세상에 한 번만 더 돌아옵니다. 돌아오지 않는 이는 감각적 욕망과 악의를 포함한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끊어, 더 이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 네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가 여기 인용된 대목입니다. ‘흘러드는 것이 다한’ 상태입니다. 여기서 ‘마음의 풀려남’은 흘러드는 것으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워진 것을, ‘지혜의 풀려남’은 그 자유를 통찰로 확인한 것을 가리킵니다. 둘은 같은 자유를 두 각도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딧테와 담메)’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의 일입니다. ‘스스로(사얌)’도 그렇습니다. 남이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도 먹고, 자고, 아프고, 늙고, 죽습니다. 다만 거기에 집착과 미움과 미혹이 없습니다.

묵상

완전히 깨달은 이는 먼 이야기가 아니에요. 흐름에 든 이가 첫걸음이고, 완전히 깨달은 이가 마지막 걸음이에요. 중요한 건 첫걸음을 떼는 것이에요.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이해하고, 늘 그대로 있지 않음을 알아보고, 마음을 다스리고, 자비를 펼치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 이 모든 날들이 바로 그 첫걸음이에요. 지금 당신은 어디쯤 와 있나요?

2 깨달음의 흐름에 처음 들어서기 1구절

흐름에 든 자, 깨달음의 문턱을 넘은 최초의 순간

그는 세 가지 족쇄가 다하여 흐름에 든 이가 되며,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확정된 이다.

So tiṇṇ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sotāpanno hot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

앙굿따라 니까야 AN 3.86 빠타마식카 숫따 (배움, 첫째)

배경

흐름에 든 이(소따빤나)는 문자 그대로 흐름에 들어선 사람을 뜻합니다. 강에 들어선 사람처럼, 물살이 저절로 바다, 곧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데려갑니다. 아직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방향은 돌이킬 수 없이 정해졌습니다. 흐름에 든 이가 되면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최대 일곱 번의 생 안에 반드시 완전한 깨달음에 이릅니다. 물살이 데려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수행에서 가장 현실적인 첫 번째 목표입니다. 완전히 깨달은 이는 먼 이야기일 수 있지만, 흐름에 든 이는 이 생에서 가능한 목표입니다.

묵상

완전한 깨달음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나요? 흐름에 든 이는 그 여정의 첫 문턱이에요. 세 가지 족쇄만 약해지면 돼요. 지금 내 삶에서 조금씩 풀려 가는 매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