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와두따 숫따(신들의 전령)

Devadūt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130

인용된 가르침 32구절

이 경을 3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천사를 알아보지 못한 이 - 야마왕의 심문 13구절

태어남·늙음·병듦·벌·죽음이라는 다섯 천사를 보고도 알아채지 못한 이에게 야마왕이 캐묻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을 부르셨다. ‘수행자들이여.’ ‘부처님.’ 수행자들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경의 첫 장면입니다. 부처님이 수행자들을 불러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도입부는 여러 경에 공통으로 쓰입니다. ‘천사(데와두따)’라는 이 경의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신이 보낸 사자가 아니라, 뒤이어 나오듯 늙음·병듦·죽음처럼 누구나 마주치는 삶의 신호들을 뜻합니다. 이 경은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을 때 겪는 일을 아주 길게 다루며, 지금 그 신호를 알아챌 기회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지금까지 살면서 스스로에게 온 어떤 ‘신호’를 뒤늦게 알아챈 적이 있나요? 그 신호가 무엇이었는지 지금 떠올려 보세요. 이 경은 앞으로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힘들면 언제든 잠시 쉬어 가도 괜찮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마치 두 집 사이에 선 눈 밝은 사람이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보듯, 나는 하늘눈으로 살아 있는 것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아, 지은 행위를 따라 나아가는 이들을 꿰뚫어 안다. ‘몸과 말과 뜻으로 선행을 하고 바른 견해를 지닌 이들은, 죽은 뒤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 ‘인간들 가운데 태어났다. 악행을 하고 삿된 견해를 지닌 이들은, 죽은 뒤 아귀의 경계에 태어났다’… ‘축생의 모태에’…‘지옥에 태어났다’’

“Seyyathāpi, bhikkhave, dve agārā sadvārā, tattha cakkhumā puriso majjhe ṭhito passeyya manusse gehaṁ pavisantepi nikkhamantepi anucaṅkamantepi anuvicarantepi; evameva kho ahaṁ, bhikkhave,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 ‘ime vat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nnā.… manussesu upapannā.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pettivisayaṁ upapannā.… tiracchānayoniṁ upapann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nn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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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부처님께서 천사경의 핵심 틀을 여는 대목입니다. 문이 있는 두 집 사이에 선 눈 밝은 사람이 사람들의 드나듦을 보는 것과 같이, 부처님은 하늘눈으로 살아 있는 것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낱낱이 본다고 말합니다. 이어 그 죽고 태어남이 지은 행위와 견해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좋은 행위를 하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좋은 곳에 태어나고, 나쁜 행위를 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면 나쁜 곳에 태어납니다. 이 원리, 곧 지금의 행위가 다음의 삶을 정한다는 것이 뒤이어 야마왕과의 대화 전체를 이끄는 전제가 됩니다.

묵상

지금 내가 몸과 말과 마음으로 하는 행동들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느껴지나요? 그저 오늘 하루 있었던 행동 하나를 가만히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수행자들이여, 지옥지기들은 그를 붙잡아 야마왕에게 데려가 이렇게 아뢴다. ‘천왕이시여, 이 사람은 부모께 효도하지 않고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을 공경하지 않으며, 집안의 어른을 받들지 않았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야마왕은 그에게 첫째 천사에 대해 캐묻고 따지고 다그친다. ‘여보게, 그대는 사람들 가운데 나타난 첫째 천사를 보지 못하였는가?’ ‘보지 못하였습니다, 야마 님이시여.’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nānābāhāsu gahetvā yamassa rañño dassenti: ‘ayaṁ, deva, puriso amatteyyo apetteyyo asāmañño abrāhmañño, na kule jeṭṭhāpacāyī. Imassa devo daṇḍaṁ paṇetū’ti.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paṭhamaṁ devadūtaṁ samanuyuñjati samanugāhati samanubhāsati: ‘ambho purisa, na tvaṁ addasa manussesu paṭhamaṁ devadūtaṁ pātubhūtan’ti? So evamāha: ‘nāddasaṁ, bhant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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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죽은 뒤 지옥지기에게 붙잡혀 야마왕 앞에 끌려가는 장면이 시작됩니다. 지옥지기가 고발하는 죄목은 부모에 대한 효도, 종교인에 대한 공경, 집안 어른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소홀히 한 것입니다. 야마왕은 형을 곧바로 내리지 않고 먼저 ‘천사(데와두따)’를 보았는지 캐묻는데, 이는 이 경의 제목이기도 한 핵심 내용입니다. 뒤이어 이 천사가 무엇인지 하나씩 밝혀지며, 그것을 보고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 문제의 핵심임이 드러납니다.

묵상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알면서도 미루거나 소홀히 한 적이 있나요? 그 순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나중에 무겁게 다가온 일이 있었다면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지금 다시 그 일을 마주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나요?

야마왕은 이렇게 말한다. ‘여보게, 그대는 어린 아기가 아직 여려서 반듯이 누운 채 제 오줌과 똥에 젖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보았습니다, 야마 님이시여.’ ‘그대는 철들고 나이 든 사람으로서 ‘나 또한 태어나는 존재이니, 태어남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제 나는 몸과 말과 뜻으로 선행을 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야마 님이시여. 저는 게을렀습니다.’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na tvaṁ addasa manussesu daharaṁ kumāraṁ mandaṁ uttānaseyyakaṁ sake muttakarīse palipannaṁ semānan’ti? So evamāha: ‘addasaṁ, bhante’ti.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tassa te viññussa sato mahallakassa na etadahosi— ahampi khomhi jātidhammo, jātiṁ anatīto. Handāhaṁ kalyāṇaṁ karomi kāyena vācāya manasā’ti? So evamāha: ‘nāsakkhissaṁ, bhante, pamādassaṁ, bhant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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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첫째 천사의 정체가 밝혀지는 대목입니다. 그것은 제 오줌과 똥에 젖어 누운 갓난아기, 곧 ‘태어남’이라는 지극히 흔한 광경입니다. 야마왕은 그가 그 아기를 분명히 보았으면서도, 자신도 태어난 존재로서 언젠가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과 연결 짓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그의 대답 ‘게을렀습니다’는 알면서도 흘려보냈다는 뜻으로, 이 경 전체에서 되풀이되는 핵심 낱말입니다.

묵상

누군가의 아기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태어난 존재’라는 생각까지 이어져 본 적이 있나요? 알면서도 흘려보낸 순간이 있다면, 지금 그것을 가볍게 알아차려 보세요.

야마왕은 이렇게 말한다. ‘여보게, 그대는 게을러서 몸과 말과 뜻으로 선행을 하지 않았다. 참으로 그들은 그대의 게으름에 마땅한 대로 그대를 다룰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이 악한 행위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형제자매도, 벗도, 친척도,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나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도, 신들도 지은 것이 아니다. 이 악한 행위는 그대 자신이 지은 것이니, 그대 자신이 그 과보를 겪을 것이다.’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pamādavatāya na kalyāṇamakāsi kāyena vācāya manasā. Taggha tvaṁ, ambho purisa, tathā karissanti yathā taṁ pamattaṁ. Taṁ kho pana te etaṁ pāpakammaṁ neva mātarā kataṁ na pitarā kataṁ na bhātarā kataṁ na bhaginiyā kataṁ na mittāmaccehi kataṁ na ñātisālohitehi kataṁ na samaṇabrāhmaṇehi kataṁ na devatāhi kataṁ, tayāvetaṁ pāpakammaṁ kataṁ, tvaññevetassa vipākaṁ paṭisaṁvedissasī’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야마왕의 심문이 판결로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이 판결은 그 사람 자신이 지은 행위의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낱낱이 짚어 밝힙니다. 부모·형제·친척·종교인·신까지 하나하나 들어 부정하며 ‘그대 자신이 지은 것’이라고 못 박는 이 문장은, 뒤이어 다섯 천사 모두에서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이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리로 돌아오게 합니다.

묵상

누구의 탓도 아니라 나 자신이 지은 것이라는 말이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지금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야마왕은 첫째 천사에 대해 캐묻기를 마치고, 둘째 천사에 대해 캐묻고 따지고 다그친다. ‘여보게, 그대는 사람들 가운데 여든이나 아흔이나 백 살이 되어 허리가 굽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부들부들 떨면서 걷는, 이가 부러지고 머리가 세거나 벗어지고 피부가 주름진 여인이나 남자를 보지 못하였는가?’ ‘보았습니다, 야마 님이시여.’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paṭhamaṁ devadūtaṁ samanuyuñjitvā samanugāhitvā samanubhāsitvā dutiyaṁ devadūtaṁ samanuyuñjati samanugāhati samanubhāsati: ‘ambho purisa, na tvaṁ addasa manussesu dutiyaṁ devadūtaṁ pātubhūtan’ti? So evamāha: ‘nāddasaṁ, bhante’ti.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na tvaṁ addasa manussesu itthiṁ vā purisaṁ vā (…) jiṇṇaṁ gopānasivaṅkaṁ bhoggaṁ daṇḍaparāyanaṁ pavedhamānaṁ gacchantaṁ āturaṁ gatayobbanaṁ khaṇḍadantaṁ palitakesaṁ vilūnaṁ khalitasiraṁ valinaṁ tilakāhatagattan’ti? So evamāha: ‘addasaṁ, bhant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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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야마왕이 둘째 천사에 대해 캐묻는 대목입니다. 둘째 천사는 다름 아닌 늙음입니다. 허리가 굽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이가 부러지고 머리가 세는 노인의 모습을 이토록 낱낱이 묘사하는 것은, 늙음이 이미 도처에서 늘 보아 온 광경임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앞선 첫째 천사(태어남)와 마찬가지로, 이 사람은 이 광경을 실제로 보았다고 순순히 인정합니다. 보고도 자신의 일로 연결 짓지 못했다는 것이 거듭 드러납니다.

묵상

나이 든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된다”는 생각까지 이어져 본 적이 있나요? 그 생각이 두렵게 다가오나요, 아니면 다르게 다가오나요? 지금 드는 마음을 그대로 느껴 보세요.

야마왕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철들고 나이 든 사람으로서 ‘나 또한 늙는 존재이니, 늙음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제 나는 몸과 말과 뜻으로 선행을 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야마 님이시여. 저는 게을렀습니다.’ 야마왕은 앞서와 같은 말로 판결을 내리며, 이 악한 행위 또한 그대 자신이 지은 것이니 그대 자신이 그 과보를 겪으리라 하였다.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tassa te viññussa sato mahallakassa na etadahosi— ahampi khomhi jarādhammo, jaraṁ anatīto. Handāhaṁ kalyāṇaṁ karomi kāyena vācāya manasā’ti? So evamāha: ‘nāsakkhissaṁ, bhante, pamādassaṁ, bhante’ti.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pamādavatāya na kalyāṇamakāsi kāyena vācāya manasā. Taggha tvaṁ, ambho purisa, tathā karissanti yathā taṁ pamattaṁ. Taṁ kho pana te etaṁ pāpakammaṁ neva mātarā kataṁ na pitarā kataṁ na bhātarā kataṁ na bhaginiyā kataṁ na mittāmaccehi kataṁ na ñātisālohitehi kataṁ na samaṇabrāhmaṇehi kataṁ na devatāhi kataṁ, tayāvetaṁ pāpakammaṁ kataṁ, tvaññevetassa vipākaṁ paṭisaṁvedissasī’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늙음을 보고도 자신의 일로 잇지 못한 것에 대한 문답과 판결이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이 문답과 판결은 앞서 태어남에서 다룬 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되풀이됩니다. 다섯 천사 모두에서 이 틀이 똑같이 되풀이된다는 것 자체가, 이 경의 요점이 각 천사의 세부보다 “알면서도 흘려보낸다”는 게으름의 반복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같은 실수를 다시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이 있나요? 그 알아챔 자체가 이미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작은 걸음일 수 있어요. 지금 그런 알아챔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야마왕은 둘째 천사에 대해 캐묻기를 마치고, 셋째 천사에 대해 캐묻고 따지고 다그친다. ‘여보게, 그대는 사람들 가운데 병들어 괴로워하며 위독한 채로, 제 오줌과 똥에 젖어 누워 남들이 일으켜 주고 남들이 눕혀 주는 여인이나 남자를 보지 못하였는가?’ ‘보았습니다, 야마 님이시여.’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dutiyaṁ devadūtaṁ samanuyuñjitvā samanugāhitvā samanubhāsitvā tatiyaṁ devadūtaṁ samanuyuñjati samanugāhati samanubhāsati: ‘ambho purisa, na tvaṁ addasa manussesu tatiyaṁ devadūtaṁ pātubhūtan’ti? So evamāha: ‘nāddasaṁ, bhante’ti.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na tvaṁ addasa manussesu itthiṁ vā purisaṁ vā ābādhikaṁ dukkhitaṁ bāḷhagilānaṁ sake muttakarīse palipannaṁ semānaṁ aññehi vuṭṭhāpiyamānaṁ aññehi saṁvesiyamānan’ti? So evamāha: ‘addasaṁ, bhant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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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셋째 천사, 곧 병듦이 밝혀지는 대목입니다. 제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해 남의 손에 일으켜지고 눕혀지는 이 모습은, 앞서 다룬 태어남의 아기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삶의 양 끝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채 남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병듦은 그 둘 사이 어디에서도 갑자기 찾아올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사람 역시 이 광경을 보았다고 인정합니다.

묵상

몸이 아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야마왕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철들고 나이 든 사람으로서 “나 또한 병드는 존재이니, 병듦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제 나는 몸과 말과 뜻으로 선행을 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야마 님이시여. 저는 게을렀습니다.’ 야마왕은 앞서와 같은 말로 판결을 내리며, 이 악한 행위 또한 그대 자신이 지은 것이니 그대 자신이 그 과보를 겪으리라 하였다.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tassa te viññussa sato mahallakassa na etadahosi— ahampi khomhi byādhidhammo, byādhiṁ anatīto. Handāhaṁ kalyāṇaṁ karomi kāyena vācāya manasā’ti? So evamāha: ‘nāsakkhissaṁ, bhante, pamādassaṁ, bhante’ti.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pamādavatāya na kalyāṇamakāsi kāyena vācāya manasā. Taggha tvaṁ, ambho purisa, tathā karissanti yathā taṁ pamattaṁ. Taṁ kho pana te etaṁ pāpakammaṁ neva mātarā kataṁ na pitarā kataṁ na bhātarā kataṁ na bhaginiyā kataṁ na mittāmaccehi kataṁ na ñātisālohitehi kataṁ na samaṇabrāhmaṇehi kataṁ na devatāhi kataṁ, tayāvetaṁ pāpakammaṁ kataṁ, tvaññevetassa vipākaṁ paṭisaṁvedissasī’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병듦을 보고도 자신의 일로 잇지 못한 것에 대한 문답과 판결입니다. 이 문답과 판결도 앞서와 똑같은 문장이 되풀이됩니다. 태어남·늙음·병듦이라는 세 가지 천사가 모두 몸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어지는 넷째와 다섯째 천사는 조금 다른 광경, 곧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벌과 이미 죽은 몸을 보여 주며, 다섯 천사의 목록이 완성됩니다.

묵상

몸이 언젠가 병들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야마왕은 셋째 천사에 대해 캐묻기를 마치고, 넷째 천사에 대해 캐묻고 따지고 다그친다. ‘여보게, 그대는 사람들 가운데 통치자들이 도적이나 죄인을 붙잡아 채찍질과 회초리와 몽둥이질을 하고, 손발과 귀와 코를 자르며, 그 밖에도 여러 형벌을 가하고, 끓는 기름을 붓고, 개에게 물어뜯게 하며, 산 채로 꼬챙이에 꿰고, 칼로 목을 베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보았습니다, 야마 님이시여.’

… ‘ambho purisa, na tvaṁ addasa manussesu rājāno coraṁ āgucāriṁ gahetvā vividhā kammakāraṇā kārente— kasāhipi tāḷente vettehipi tāḷente addhadaṇḍakehipi tāḷente hatthampi chindante pādampi chindante… kaṇṇampi chindante nāsampi chindante… tattenapi telena osiñcante sunakhehipi khādāpente jīvantampi sūle uttāsente asināpi sīsaṁ chindante’ti? So evamāha: ‘addasaṁ, bhante’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넷째 천사가 밝혀지는 대목입니다. 앞의 세 천사(태어남·늙음·병듦)가 몸이 저절로 겪는 일이었다면, 이것은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사람에게서 받는 벌입니다. 이런 벌은 실제로 이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대표적인 몇 가지만 보여 줍니다. 이 장면은 형벌의 참혹함 자체보다, 이런 벌이 이미 이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보고도 자신의 삶과 연결 짓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이 대목이 읽기에 힘들었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사회에서 잘못에 뒤따르는 무거운 결과를 보면서, 지금 내 작은 행동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다고 느껴지나요?

야마왕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철들고 나이 든 사람으로서 “나쁜 행위를 하는 이는 이 생에서도 이런 벌을 받는데, 하물며 다음 생에서는 어떠하겠는가. 이제 나는 몸과 말과 뜻으로 선행을 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야마 님이시여. 저는 게을렀습니다.’ 야마왕은 앞서와 같은 말로 판결을 내리며, 이 악한 행위 또한 그대 자신이 지은 것이라 하였다.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tassa te viññussa sato mahallakassa na etadahosi— ye kira, bho, pāpakāni kammāni karonti te diṭṭheva dhamme evarūpā vividhā kammakāraṇā karīyanti, kimaṅgaṁ pana parattha. Handāhaṁ kalyāṇaṁ karomi kāyena vācāya manasā’ti? So evamāha: ‘nāsakkhissaṁ, bhante, pamādassaṁ, bhante’ti.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pamādavatāya na kalyāṇamakāsi kāyena vācāya manasā. Taggha tvaṁ, ambho purisa, tathā karissanti yathā taṁ pamattaṁ. Taṁ kho pana te etaṁ pāpakammaṁ neva mātarā kataṁ na pitarā kataṁ na bhātarā kataṁ na bhaginiyā kataṁ na mittāmaccehi kataṁ na ñātisālohitehi kataṁ na samaṇabrāhmaṇehi kataṁ na devatāhi kataṁ, tayāvetaṁ pāpakammaṁ kataṁ, tvaññevetassa vipākaṁ paṭisaṁvedissas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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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천사에 대한 문답과 판결이 이어지는 대목으로, 이번에는 되짚는 말이 앞의 셋과 조금 다릅니다. 다른 천사에서는 “나도 그런 존재이니”라고 자신에게 견주었다면, 여기서는 “이 생에서 이런 벌을 받는데 다음 생에서는 어떠하겠는가”라며 결과를 미루어 헤아리는 방식입니다. 형벌은 잘못된 행위가 부르는 결과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보여 주는 본보기로 쓰이고 있습니다.

묵상

지금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미리 헤아려 본 적이 있나요? 그런 헤아림이 걱정을 늘리기보다 지금의 선택을 돕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수 있어요. 지금 그 헤아림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요?

야마왕은 넷째 천사에 대해 캐묻기를 마치고, 다섯째 천사에 대해 캐묻고 따지고 다그친다. ‘여보게, 그대는 사람들 가운데 죽은 지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 되어 부풀고 검푸르게 되며 진물이 흐르는 여인이나 남자의 주검을 보지 못하였는가?’ ‘보았습니다, 야마 님이시여.’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catutthaṁ devadūtaṁ samanuyuñjitvā samanugāhitvā samanubhāsitvā pañcamaṁ devadūtaṁ samanuyuñjati samanugāhati samanubhāsati: ‘ambho purisa, na tvaṁ addasa manussesu pañcamaṁ devadūtaṁ pātubhūtan’ti? So evamāha: ‘nāddasaṁ, bhante’ti.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na tvaṁ addasa manussesu itthiṁ vā purisaṁ vā ekāhamataṁ vā dvīhamataṁ vā tīhamataṁ vā uddhumātakaṁ vinīlakaṁ vipubbakajātan’ti? So evamāha: ‘addasaṁ, bhant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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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이자 마지막 천사, 곧 죽음 그 자체가 밝혀지는 대목입니다. 부풀고 검푸르게 변하며 진물이 흐르는 주검의 모습은 삶의 마지막이 결코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줍니다. 태어남에서 시작해 늙음과 병듦,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벌을 거쳐, 이제 삶의 끝인 죽음까지 다섯 천사가 모두 갖추어집니다. 이 사람 역시 이 광경을 보았다고 인정합니다. 문제는 언제나 알아채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묵상

죽음을 눈으로 직접 마주한 적이 있나요? 힘들면 여기서 잠시 쉬어 가도 좋아요.

야마왕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철들고 나이 든 사람으로서 “나 또한 죽는 존재이니,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제 나는 몸과 말과 뜻으로 선행을 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야마 님이시여. 저는 게을렀습니다.’ 야마왕은 앞서와 같은 말로 판결을 내리며, 이 악한 행위 또한 그대 자신이 지은 것이라 하였다. 수행자들이여, 야마왕은 다섯째 천사에 대해 캐묻고 따져 묻고 타이른 뒤 침묵한다.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tassa te viññussa sato mahallakassa na etadahosi— ahampi khomhi maraṇadhammo, maraṇaṁ anatīto. Handāhaṁ kalyāṇaṁ karomi kāyena vācāya manasā’ti? So evamāha: ‘nāsakkhissaṁ, bhante, pamādassaṁ, bhante’ti.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evamāha: ‘ambho purisa, pamādavatāya na kalyāṇamakāsi kāyena vācāya manasā. Taggha tvaṁ, ambho purisa, tathā karissanti yathā taṁ pamattaṁ. Taṁ kho pana te etaṁ pāpakammaṁ neva mātarā kataṁ na pitarā kataṁ na bhātarā kataṁ na bhaginiyā kataṁ na mittāmaccehi kataṁ na ñātisālohitehi kataṁ na samaṇabrāhmaṇehi kataṁ na devatāhi kataṁ, tayāvetaṁ pāpakammaṁ kataṁ, tvaññevetassa vipākaṁ paṭisaṁvedissasī’ti. Tamenaṁ, bhikkhave, yamo rājā pañcamaṁ devadūtaṁ samanuyuñjitvā samanugāhitvā samanubhāsitvā tuṇhī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다섯째 천사에 대한 마지막 문답과 판결, 그리고 야마왕이 침묵하는 것으로 심문 전체가 끝납니다. 다섯 번 되풀이된 이 틀, 곧 천사를 보았는가, 자신과 연결 지었는가, 게을렀다는 고백, 그대 자신이 지은 것이라는 판결은 이제 더 할 말이 없을 만큼 분명해졌습니다. 야마왕의 침묵은 판결의 끝이자, 뒤이어 지옥지기들이 직접 나서는 대목으로의 전환을 알립니다.

묵상

다섯 가지 신호, 곧 태어남·늙음·병듦·벌·죽음을 이미 다 보아 왔다는 것을 지금 새삼 느끼시나요? 그것을 모두 알아채야 한다는 부담 없이, 오늘 하나만이라도 마음에 담아 보아도 충분해요.

2 지옥에서 겪는 일 15구절

방일함이 부른 형벌을 그리되, 두려움이 아니라 지금 알아챌 기회로 읽기 위한 대목입니다.

수행자들이여, 지옥지기들은 다섯 갈래로 못 박는 형벌을 그에게 가한다. 벌겋게 달군 쇠못을 두 손과 두 발에, 그리고 가슴 한복판에도 박는다. 그는 거기서 괴롭고 격렬하고 사납고 쓰라린 느낌을 겪으나, 그 악한 행위가 다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pañcavidhabandhanaṁ nāma kammakāraṇaṁ karonti— tattaṁ ayokhilaṁ hatthe gamenti, tattaṁ ayokhilaṁ dutiye hatthe gamenti, tattaṁ ayokhilaṁ pāde gamenti, tattaṁ ayokhilaṁ dutiye pāde gamenti, tattaṁ ayokhilaṁ majjheurasmiṁ gamenti. So tattha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eti, na ca tāva kālaṁ karoti yāva na taṁ pāpakammaṁ byantī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야마왕의 심문이 끝나고, 이제 지옥지기들이 직접 형벌을 가하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대목들은 매우 생생하고 무겁습니다. 이 경이 이런 장면을 상세히 그리는 것은, 게으르고 소홀하게 산 결과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극단적으로 보여 주어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을 돌아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 ‘그 악한 행위가 다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는 이 뒤로도 똑같이 되풀이되는 말로, 고통이 저절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대목이 힘들게 느껴진다면, 잠시 건너뛰고 다음으로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이런 이야기를 읽는 것 자체가 힘들 수 있어요. 그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지금 이 순간, 아주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선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옥을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두어 보아도 좋아요.

지옥지기들은 그를 눕혀 놓고 도끼로 깎아 낸다… 그를 거꾸로 매달아 자귀로 깎아 낸다… 그를 수레에 매어 불타는 땅 위로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그를 불타는 커다란 숯불 산에 오르내리게 한다…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saṁvesetvā kuṭhārīhi tacchanti …pe…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uddhampādaṁ adhosiraṁ gahetvā vāsīhi tacchanti …pe…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rathe yojetvā ādittāya pathaviyā sampajjalitāya sajotibhūtāya sārentipi, paccāsārentipi …pe…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mahantaṁ aṅgārapabbataṁ ādittaṁ sampajjalitaṁ sajotibhūtaṁ āropentipi oropentipi …pe…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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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형벌이 잇달아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 넷 모두 뒤에는, 괴롭고 격렬한 느낌을 겪으면서도 그 행위가 다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는 같은 말이 되풀이됩니다. 도끼로 깎고, 거꾸로 매달고, 수레에 끌고, 숯불 산에 오르내리게 하는 이 넷은 앞의 못 박는 형벌과 마찬가지로, 몸을 괴롭히는 여러 형태를 나열하는 것이지 하나하나가 별도의 교훈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묵상

이 대목들을 읽어 내려가기가 버겁다면, 지금 잠시 눈을 떼고 숨을 골라도 괜찮아요. 지금 내 몸과 마음은 어떤 상태인가요?

지옥지기들은 그를 거꾸로 잡아 불타는 구리 가마솥에 던져 넣는다. 그는 거기서 거품을 일으키며 삶아지며, 한 번은 위로, 한 번은 아래로, 한 번은 옆으로 떠오른다. 그는 거기서 괴롭고 격렬한 느낌을 겪으나, 그 행위가 다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uddhampādaṁ adhosiraṁ gahetvā tattāya lohakumbhiyā pakkhipanti ādittāya sampajjalitāya sajotibhūtāya. So tattha pheṇuddehakaṁ paccati. So tattha pheṇuddehakaṁ paccamāno sakimpi uddhaṁ gacchati, sakimpi adho gacchati, sakimpi tiriyaṁ gacchati. So tattha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eti, na ca tāva kālaṁ karoti yāva na taṁ pāpakammaṁ byantī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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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가마솥에 삶아지는 형벌입니다. 몸이 거꾸로 던져져 가마솥 속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삶아지고, 위로 아래로 옆으로 떠오르는 모습은 물속에 잠기듯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보여 줍니다. 이 형벌 뒤로 이야기는 ‘큰 지옥’이라는 더 큰 무대로 이어집니다.

묵상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 갇힌 듯한 느낌을 겪어 본 적이 있나요? 지금은 그렇지 않다면, 그 사실에 잠시 감사해 보세요.

지옥지기들은 그를 큰 지옥에 던져 넣는다. 수행자들이여, 그 큰 지옥은 이러하다. 네 모퉁이와 네 문을 갖추고, 구역마다 고르게 나뉘어 있으며, 쇠로 된 담이 둘러싸고, 쇠로 된 지붕이 덮여 있다. 그 바닥은 쇠로 되어 불길에 뜨겁게 달아 있으며, 사방 백 요자나에 걸쳐 늘 그 열기가 뻗어 있다.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mahāniraye pakkhipanti. So kho pana, bhikkhave, mahānirayo— Catukkaṇṇo catudvāro, vibhatto bhāgaso mito; Ayopākārapariyanto, ayasā paṭikujjito. Tassa ayomayā bhūmi, jalitā tejasāyutā; Samantā yojanasataṁ, pharitvā tiṭṭhati sabbadā.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이 경에서 가장 크게 다뤄지는 무대인 ‘큰 지옥’이 게송으로 묘사되는 대목입니다. 네 모퉁이와 네 문, 쇠로 된 담과 지붕과 바닥, 사방 백 요자나에 뻗은 열기라는 이 묘사는 이후 여러 불교 문헌에서 지옥을 그릴 때 흔히 쓰이는 틀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세한 건축적 묘사는 게으름의 결과가 그만큼 크고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지로 전합니다.

묵상

크고 벗어날 수 없어 보이는 상황에 갇혀 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그 느낌이 실제로 얼마나 오래갔는지, 어떻게 지나갔는지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지금은 그때와 무엇이 달라졌나요?

수행자들이여, 그 큰 지옥은 동쪽 벽에서 불길이 솟아 서쪽 벽에 부딪히고, 서쪽에서 솟아 동쪽에 부딪히며, 북쪽에서 솟아 남쪽에, 남쪽에서 솟아 북쪽에 부딪히고, 아래서 솟아 위에, 위에서 솟아 아래에 부딪힌다. 그는 거기서 괴롭고 격렬한 느낌을 겪으나, 그 행위가 다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

Tassa kho pana, bhikkhave, mahānirayassa puratthimāya bhittiyā acci uṭṭhahitvā pacchimāya bhittiyā paṭihaññati, pacchimāya bhittiyā acci uṭṭhahitvā puratthimāya bhittiyā paṭihaññati, uttarāya bhittiyā acci uṭṭhahitvā dakkhiṇāya bhittiyā paṭihaññati, dakkhiṇāya bhittiyā acci uṭṭhahitvā uttarāya bhittiyā paṭihaññati, heṭṭhā acci uṭṭhahitvā upari paṭihaññati, uparito acci uṭṭhahitvā heṭṭhā paṭihaññati. So tattha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eti, na ca tāva kālaṁ karoti yāva na taṁ pāpakammaṁ byantī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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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옥 안에서 불길이 여섯 방향(동서남북과 위아래)을 오가며 부딪히는 광경입니다. 어느 방향으로도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여섯 방향을 다 짚어 보여 주는 이 묘사는, 앞서 게송으로 그린 건축적 규모에 이어 그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을 구체화합니다. 뒤이은 대목에서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 지옥에 문이 열리는 순간이 나오는데, 그 문이 열리기까지의 긴 기다림이 다음 이야기의 무게를 더합니다.

묵상

어느 쪽을 보아도 피할 곳이 없다고 느껴졌던 순간이 있나요? 그런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갔다는 것을 지금 돌아볼 수 있나요?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수행자들이여,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어느 때에, 그 큰 지옥의 동쪽 문이 열리는 때가 있다. 그는 거기로 재빨리 달려간다. 달려가는 동안 겉가죽도 속가죽도 살도 힘줄도 타고 뼈까지 연기를 낸다. 수행자들이여, 그가 거의 다다랐을 때에 그 문은 닫혀 버린다.

Hoti kho so, bhikkhave, samayo yaṁ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tassa mahānirayassa puratthimaṁ dvāraṁ apāpurīyati. So tattha sīghena javena dhāvati. Tassa sīghena javena dhāvato chavimpi ḍayhati, cammampi ḍayhati, maṁsampi ḍayhati, nhārumpi ḍayhati, aṭṭhīnipi sampadhūpāyanti, ubbhataṁ tādisameva hoti. Yato ca kho so, bhikkhave, bahusampatto hoti, atha taṁ dvāraṁ pidhīyati. So tattha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eti, na ca tāva kālaṁ karoti yāva na taṁ pāpakammaṁ byantī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아주 오랜 시간 만에 마침내 문이 열리는 희망의 순간이 나오지만, 곧바로 좌절로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온몸이 타들어 가면서도 필사적으로 달려가지만, 거의 다다른 순간 문이 닫혀 버립니다. 이 장면은 다섯 형벌 가운데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잠깐 보여 준 뒤 꺾는다는 점에서 특히 무겁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다음 대목에서 이 같은 일이 서쪽·북쪽·남쪽 문에서도 되풀이됩니다.

묵상

다 왔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멀어지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같은 일이 서쪽 문이 열릴 때에도… 북쪽 문이 열릴 때에도… 남쪽 문이 열릴 때에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그는 거기로 재빨리 달려간다. 달려가는 동안 온몸이 타들어 간다. 그가 거의 다다랐을 때에 그 문은 또다시 닫혀 버린다. 그는 거기서 괴롭고 격렬한 느낌을 겪으나, 그 행위가 다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

Hoti kho so, bhikkhave, samayo yaṁ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tassa mahānirayassa pacchimaṁ dvāraṁ apāpurīyati …pe… uttaraṁ dvāraṁ apāpurīyati …pe… dakkhiṇaṁ dvāraṁ apāpurīyati. So tattha sīghena javena dhāvati. Tassa sīghena javena dhāvato chavimpi ḍayhati, cammampi ḍayhati, maṁsampi ḍayhati, nhārumpi ḍayhati, aṭṭhīnipi sampadhūpāyanti, ubbhataṁ tādisameva hoti. Yato ca kho so, bhikkhave, bahusampatto hoti, atha taṁ dvāraṁ pidhīyati. So tattha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eti, na ca tāva kālaṁ karoti yāva na taṁ pāpakammaṁ byantī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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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문에서 있었던 일이 서쪽·북쪽·남쪽 문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네 개의 문 모두에서 같은 좌절을 겪은 뒤에야, 다음 대목에서 마침내 다른 결말이 찾아오는데, 그 결말은 다시 동쪽 문이 열릴 때 나옵니다.

묵상

같은 실망이 몇 번이고 되풀이될 때, 그래도 다시 시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그런 되풀이를 겪고 있다면, 이번엔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잠시 마음에 두어 보아도 좋아요.

다시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그 큰 지옥의 동쪽 문이 열리는 때가 있다. 그는 거기로 재빨리 달려가나니, 달려가는 동안 온몸이 타들어 간다. 그는 마침내 그 문으로 빠져나간다.

Hoti kho so, bhikkhave, samayo yaṁ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tassa mahānirayassa puratthimaṁ dvāraṁ apāpurīyati. So tattha sīghena javena dhāvati. Tassa sīghena javena dhāvato chavimpi ḍayhati, cammampi ḍayhati, maṁsampi ḍayhati, nhārumpi ḍayhati, aṭṭhīnipi sampadhūpāyanti, ubbhataṁ tādisameva hoti. So tena dvārena nikkhama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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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좌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문이 닫히기 전에 빠져나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는 이 큰 지옥 안에서 유일하게 성공으로 끝나는 시도로, 앞선 되풀이 속에서도 언젠가는 벗어날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다만 그 벗어남이 완전한 자유는 아닌데, 다음 대목에서 밝혀지듯 큰 지옥 바로 곁에는 또 다른 형벌의 자리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어, 벗어남과 새로운 시련이 곧바로 맞닿아 있습니다.

묵상

몇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무언가를 이루어 낸 경험이 있나요? 그 순간의 안도감을 지금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다만 삶에서 하나의 어려움을 벗어나면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다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수행자들이여, 그 큰 지옥 바로 곁에는 커다란 똥지옥이 붙어 있다. 그는 거기에 떨어지나니, 바늘 주둥이를 가진 벌레들이 겉가죽과 속가죽과 살과 힘줄과 뼈를 뚫어 골수까지 파먹는다.

Tassa kho pana, bhikkhave, mahānirayassa samanantarā sahitameva mahanto gūthanirayo. So tattha patati. Tasmiṁ kho pana, bhikkhave, gūthaniraye sūcimukhā pāṇā chaviṁ chindanti, chaviṁ chetvā cammaṁ chindanti, cammaṁ chetvā maṁsaṁ chindanti, maṁsaṁ chetvā nhāruṁ chindanti, nhāruṁ chetvā aṭṭhiṁ chindanti, aṭṭhiṁ chetvā aṭṭhimiñjaṁ khādanti. So tattha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eti, na ca tāva kālaṁ karoti yāva na taṁ pāpakammaṁ byantī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큰 지옥을 벗어나자마자 곁에 있는 또 다른 지옥에 떨어지는 대목입니다. 이 경은 이 뒤로 큰 지옥 곁에 자리한 여러 부속 지옥들을 하나씩 소개하는데, 이는 게으름의 결과가 단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겹겹이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려는 구성입니다. 벌레가 몸을 파고드는 이 형벌은 앞선 불의 형벌들과는 다른 결의 고통을 전하며, 이 뒤로 몇 가지 부속 지옥이 더 이어집니다.

묵상

이 대목은 유난히 힘들 수 있어요. 속에서부터 갉아먹히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몸이 안팎으로 편안한 지금 이 순간이 있다면, 그것에 잠시 감사해 보아도 좋아요.

수행자들이여, 그 똥지옥 바로 곁에는 커다란 잿불지옥이 붙어 있다. 그는 거기에 떨어지나니, 거기서 괴롭고 격렬한 느낌을 겪으나 그 행위가 다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

Tassa kho pana, bhikkhave, gūthanirayassa samanantarā sahitameva mahanto kukkulanirayo. So tattha patati. So tattha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eti, na ca tāva kālaṁ karoti yāva na taṁ pāpakammaṁ byantī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똥지옥 곁의 또 다른 부속 지옥, 잿불지옥으로 이어집니다. 이 지옥에 대해서는 이름과 “거기에 떨어진다”는 것 외에 별다른 설명이 없어, 앞서 상세히 그린 지옥들과 달리 간략하게 다루어지는 자리입니다. 부속 지옥들이 이렇게 잇달아 나열되는 구성 자체가, 벗어났다고 여긴 자리마다 다음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하나의 어려움이 끝났다고 여긴 순간 곧바로 다른 어려움이 이어졌던 경험이 있나요? 그럴 때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셨나요? 그 방법을 지금도 쓸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도 좋아요.

수행자들이여, 그 잿불지옥 바로 곁에는 한 요자나 높이로 솟아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불타는 커다란 실면화나무 숲이 있다. 그곳에서 그를 오르내리게 하나니, 거기서 괴롭고 격렬한 느낌을 겪으나 그 행위가 다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

Tassa kho pana, bhikkhave, kukkulanirayassa samanantarā sahitameva mahantaṁ simbalivanaṁ uddhaṁ yojanamuggataṁ soḷasaṅgulakaṇṭakaṁ ādittaṁ sampajjalitaṁ sajotibhūtaṁ. Tattha āropentipi oropentipi. So tattha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eti, na ca tāva kālaṁ karoti yāva na taṁ pāpakammaṁ byantī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가시로 뒤덮인 불타는 나무숲에서 오르내려야 하는 형벌입니다. 이 나무는 실제로 목화솜과 비슷한 열매를 맺는 나무의 이름을 딴 것으로, 부드러운 솜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과 정반대로 날카로운 가시로 뒤덮여 있다는 대조가 두드러집니다. 겉보기와 실제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름 하나로 은근히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묵상

겉으로는 부드럽고 편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선택이나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나요? 그 차이를 지금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천천히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수행자들이여, 그 실면화나무 숲 바로 곁에는 커다란 칼잎 숲이 있다. 그는 거기로 들어가나니,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칼잎이 그의 손과 발과 귀와 코를 자른다.

Tassa kho pana, bhikkhave, simbalivanassa samanantarā sahitameva mahantaṁ asipattavanaṁ. So tattha pavisati. Tassa vāteritāni pattāni patitāni hatthampi chindanti, pādampi chindanti, hatthapādampi chindanti, kaṇṇampi chindanti, nāsampi chindanti, kaṇṇanāsampi chindanti. So tattha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eti, na ca tāva kālaṁ karoti yāva na taṁ pāpakammaṁ byantī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잎사귀 하나하나가 칼날인 숲으로 이어집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떨어지는 잎이 몸을 베는 이 형벌은,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주변 환경 자체가 끊임없이 해를 입히는 상황을 그립니다. 앞의 실면화나무 숲이 오르내리는 형벌이었다면, 이 칼잎 숲은 가만히 있어도 상처를 입는다는 점에서 대조를 이룹니다.

묵상

가만히 있어도 상처받는 것 같은 환경에 놓였던 적이 있나요? 그런 자리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지금 그 환경에서 벗어났다면, 그것도 기억해 두어도 좋아요.

수행자들이여, 그 칼잎 숲 바로 곁에는 거대한 잿물 강이 있다. 그는 거기에 떨어져, 물결을 따라, 물결을 거슬러, 이리저리 떠내려간다.

Tassa kho pana, bhikkhave, asipattavanassa samanantarā sahitameva mahatī khārodakā nadī. So tattha patati. So tattha anusotampi vuyhati, paṭisotampi vuyhati, anusotapaṭisotampi vuyhati. So tattha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eti, na ca tāva kālaṁ karoti yāva na taṁ pāpakammaṁ byantī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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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속 지옥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나오는 잿물 강입니다. 여기서는 스스로 애쓸 자리조차 없이 그저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립니다. 태어남에서 시작해 못 박힘, 도끼, 불산, 가마솥, 큰 지옥, 똥지옥, 잿불지옥, 가시나무, 칼잎 숲을 거쳐 이 강에 이르기까지, 형벌은 갈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태로 이어져 왔습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지옥지기가 다시 그를 건져 올리는 장면으로 전환됩니다.

묵상

어떤 상황에 완전히 휩쓸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그런 순간에도 결국 다시 발 디딜 곳을 찾았던 경험이 있다면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그 발판이 되어 준 것은 무엇이었나요?

지옥지기들은 갈고리로 그를 건져 올려 뭍에 세워 놓고 이렇게 묻는다. ‘여보게,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저는 배고픕니다.’ 지옥지기들은 벌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그의 입을 벌리고, 불타는 쇠구슬을 입안에 넣는다. 그것은 입술과 입안과 목과 가슴과 창자까지 태우며 아래로 빠져나간다.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balisena uddharitvā thale patiṭṭhāpetvā evamāhaṁsu: ‘ambho purisa, kiṁ icchasī’ti? So evamāha: ‘jighacchitosmi, bhante’ti.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tattena ayosaṅkunā mukhaṁ vivaritvā ādittena sampajjalitena sajotibhūtena tattaṁ lohaguḷaṁ mukhe pakkhipanti ādittaṁ sampajjalitaṁ sajotibhūtaṁ. So tassa oṭṭhampi dahati, mukhampi dahati, kaṇṭhampi dahati, urampi dahati, antampi antaguṇampi ādāya adhobhāgā nikkhamati. So tattha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eti, na ca tāva kālaṁ karoti yāva na taṁ pāpakammaṁ byantī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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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물 강에서 건져 올려진 그에게 지옥지기가 원하는 것을 묻는 대목입니다. 이 물음 자체는 얼핏 친절해 보이지만, 그가 배고프다고 답하자 돌아오는 것은 불타는 쇠구슬입니다. 이 장면은 갈망(배고픔) 자체가 다시 고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원함이 채워지지 않는 데서 오는 괴로움과, 잘못된 방식으로 채워지는 데서 오는 괴로움을 함께 그리고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간절히 원하던 것이 오히려 더 큰 아픔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나요? 지금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면, 그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잠시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지옥지기들은 다시 이렇게 묻는다. ‘여보게,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저는 목마릅니다.’ 지옥지기들은 쇠꼬챙이로 그의 입을 벌리고, 불타는 녹인 구리물을 입안에 부어 넣는다. 그것은 입술과 입안과 목과 가슴과 창자까지 태우며 아래로 빠져나간다.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evamāhaṁsu: ‘ambho purisa, kiṁ icchasī’ti? So evamāha: ‘pipāsitosmi, bhante’ti.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tattena ayosaṅkunā mukhaṁ vivaritvā ādittena sampajjalitena sajotibhūtena tattaṁ tambalohaṁ mukhe āsiñcanti ādittaṁ sampajjalitaṁ sajotibhūtaṁ. Taṁ tassa oṭṭhampi dahati, mukhampi dahati, kaṇṭhampi dahati, urampi dahati, antampi antaguṇampi ādāya adhobhāgā nikkhamati. So tattha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eti, na ca tāva kālaṁ karoti, yāva na taṁ pāpakammaṁ byantī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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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에 이어 목마름을 묻는 대목이 되풀이됩니다. 이번에는 쇠구슬 대신 녹인 구리물이 부어지는데, 배고픔 대신 목마름을 채우려 한다는 점만 다릅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은 누구나 겪는 아주 기본적인 필요인데, 여기서는 그것마저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이 됩니다. 이 두 장면을 끝으로 그는 다시 큰 지옥으로 돌려보내지며, 지옥의 형벌 전체가 여기서 한 바퀴를 마칩니다.

묵상

기본적인 필요조차 채워지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나요? 지금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스스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감사한 일일 수 있어요. 오늘 물 한 모금을 마실 때 잠시 그것을 느껴 보아도 좋아요.

3 붙들지 않으면 - 야마왕의 바람과 게송 4구절

야마왕조차 품은 소망과, 방일하지 않는 이가 이르는 곳을 게송으로 마무리합니다.

지옥지기들은 그를 다시 큰 지옥에 던져 넣는다. 수행자들이여, 예전에 야마왕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악한 행위를 짓는 이들은 이토록 다양한 형벌을 받는구나. 아, 나도 인간의 몸을 얻는다면.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께서 세상에 나타나신다면. 내가 그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 가르침을 들어 알아들을 수 있다면.’

Tamenaṁ, bhikkhave, nirayapālā puna mahāniraye pakkhipanti. Bhūtapubbaṁ, bhikkhave, yamassa rañño etadahosi: ‘ye kira, bho, loke pāpakāni akusalāni kammāni karonti te evarūpā vividhā kammakāraṇā karīyanti. Aho vatāhaṁ manussattaṁ labheyyaṁ. Tathāgato ca loke uppajjeyya arahaṁ sammāsambuddho. Tañcāhaṁ bhagavantaṁ payirupāseyyaṁ. So ca me bhagavā dhammaṁ deseyya. Tassa cāhaṁ bhagavato dhammaṁ ājāneyyan’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길게 이어진 지옥의 형벌들이 큰 지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일단락되고, 뜻밖에도 이 모든 형벌을 관장하던 야마왕 자신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그는 이런 형벌을 보면서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도 인간으로 태어나 부처님을 만나 가르침을 듣고 싶다는 소망을 품습니다. 심판자인 야마왕조차 이런 바람을 품는다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한 기회인지를 거꾸로 비추어 보여 줍니다.

묵상

지금 가르침이나 좋은 말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야마왕조차 부러워할 만한 기회라면 어떻게 느껴지나요? 오늘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가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그 말을 다시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수행자들이여, 나는 이것을 다른 수행자나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에게서 들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달은 것만을 말한다.

Taṁ kho panāhaṁ, bhikkhave, nāññassa samaṇassa vā brāhmaṇassa vā sutvā vadāmi, api ca yadeva sāmaṁ ñātaṁ sāmaṁ diṭṭhaṁ sāmaṁ viditaṁ tadevāhaṁ vad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지금까지 들려준 이야기 전체에 대해 부처님께서 그 출처를 직접 밝히는 대목입니다. 태어남부터 지옥의 형벌, 야마왕의 속마음까지 이르는 이 길고 상세한 이야기가 전해 들은 소문이나 다른 종교인의 가르침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라, 부처님 자신이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달은 것’이라고 못 박습니다. 이는 이 이야기 전체의 무게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해 주는 문장입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들은 말과 내가 직접 겪어 안 것은 무게가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지금 내가 스스로 겪어서 알게 된 것 가운데, 남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것을 누구에게 전하고 싶나요?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스승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천사들에게 일깨워졌으나 게으른 이들은, 오랫동안 슬퍼하며, 고달픈 처지로 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천사들에게 일깨워져, 여기서 고요하고 참된 사람들은, 결코 거룩한 이치에 게으르지 않다.’

Idamavoca bhagavā. Idaṁ vatvāna sugato athāparaṁ etadavoca satthā: “Coditā devadūtehi, ye pamajjanti māṇavā; Te dīgharattaṁ socanti, hīnakāyūpagā narā. Ye ca kho devadūtehi, santo sappurisā idha; Coditā nappamajjanti, ariyadhamme kudāca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산문으로 된 긴 이야기를 마친 뒤,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그 뜻을 요약하는 대목입니다. 앞서 다룬 다섯 천사(태어남·늙음·병듦·벌·죽음)를 이 게송은 짧게 ‘천사들’로 되짚으며, 그것에 일깨워지고도 게으른 이와 게으르지 않은 이, 이 둘을 대비합니다. ‘오랫동안 슬퍼한다’는 표현은 지옥의 형벌을 다시 묘사하지 않고도 그 결과를 압축해 전하며, 게으르지 않은 이들은 ‘고요하고 참된 사람(산또 삽뿌리사)’이라 불립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이 두 갈래 길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음이 여기서 정리됩니다.

묵상

지금 나에게 온 신호를 알아채고 게으르지 않기로 한다면, 오늘 무엇을 다르게 해 볼 수 있을까요? 아주 작은 것 하나면 충분해요. 지금 떠오르는 그 하나는 무엇인가요?

‘붙듦 속에서 두려움을 보고, 태어남과 죽음이 생겨나는 것을 보아, 붙들지 않아 풀려나며, 태어남과 죽음이 다하는 데서이다. 그들은 안온함에 이르러 행복하며, 지금 여기서 완전히 고요해진다. 모든 원한과 두려움을 넘어서고, 모든 괴로움을 벗어났다.’

Upādāne bhayaṁ disvā, jātimaraṇasambhave; Anupādā vimuccanti, jātimaraṇasaṅkhaye. Te khemappattā sukhino, diṭṭhadhammābhinibbutā; Sabbaverabhayātītā, sabbadukkhaṁ upaccagun”ti.

맛지마 니까야 MN 130 데와두따 숫따 (신들의 전령)

배경

긴 이야기 전체를 마무리하는 게송의 결론부입니다. 앞서 게으르지 않은 이들을 말한 데 이어, 이제 그들이 어떻게 벗어나는지를 밝힙니다. ‘붙듦(우빠다나)’ 속에서 두려움을 본다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이 되풀이되는 원인이 붙듦에 있음을 본다는 뜻이며, 그 붙들지 않음이 곧 풀려남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구절 ‘지금 여기서 완전히 고요해진다’는 표현은 이 평온이 살아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묵상

지금 붙들고 있는 것에서 두려움의 뿌리를 본 적이 있나요? 완전히 놓아야 한다는 부담 없이, 오늘은 그 붙듦을 그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 고요함이 가능하다는 말이 위안이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