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웨다위딱까 숫따(두 갈래 생각)

Dvedhāvitakk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19

깨달음 전 생각을 두 갈래로 나누어 살피고 마음을 길들인 과정을 들려준다.

인용된 가르침 26구절

이 경을 4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해로운 생각을 알아보다 8구절

욕망과 악의와 해침이 어디로 이끄는지 보고 마음에서 놓는 과정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무셨다. 부처님이 수행자들을 부르셨다. “수행자들이여.” “네, 부처님.” 수행자들이 대답하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장소와 듣는 이들을 밝히며 경이 시작됩니다.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을 부르시고, 수행자들이 대답하자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뒤따르는 말씀에서는 부처님 자신이 깨닫기 전에 어떤 생각을 품고 살폈는지 들려주십니다. 짧은 부름과 대답은 그 경험을 함께 듣는 자리를 열어 줍니다.

묵상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첫말을 읽으면 누군가의 경험을 듣는 자리가 떠오르나요? 조언의 결론을 바로 받아들이기 전에, 그 사람이 무엇을 겪고 살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아직 깨닫지 못하고 깨달음을 구하던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생각(위딱까)을 늘 두 갈래로 나누어 살펴보면 어떨까?’ 수행자들이여, 나는 감각의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 미워하는 생각, 해치려는 생각을 한쪽에 두었다. 감각의 즐거움에서 벗어나려는 생각, 미워하지 않는 생각,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은 다른 쪽에 두었다.”

“Pubbeva me, bhikkhave, sambodhā anabhisambuddhassa bodhisattasseva sato etadahosi: ‘yannūnāhaṁ dvidhā katvā dvidhā katvā vitakke vihareyyan’ti. So kho ahaṁ, bhikkhave, yo cāyaṁ kāmavitakko yo ca byāpādavitakko yo ca vihiṁsāvitakko—imaṁ ekaṁ bhāgamakāsiṁ; yo cāyaṁ nekkhammavitakko yo ca abyāpādavitakko yo ca avihiṁsāvitakko—imaṁ dutiyaṁ bhāgamak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부처님은 먼저 생각을 두 갈래로 나눴던 때를 돌아봅니다. 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의 세 생각과 뒤의 세 생각은 각각 짝을 이룹니다. 즐거움을 탐하는 마음에는 거기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미움과 해침에는 미워하지 않음과 해치지 않음이 맞섭니다. 다음 대목부터는 각 생각이 자신과 남에게 어떤 결과를 남기는지 살펴 이 구분의 까닭을 보여 줍니다.

묵상

두 갈래 가운데 지금 눈에 머무는 말은 어느 쪽인가요? 오늘 스친 생각 하나를 떠올린다면, 그 생각이 누구를 향하고 있었는지 정도는 살펴볼 수 있을까요? 그 생각을 따라간 뒤에 남은 느낌이 어땠는지도 함께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내가 방심하지 않고 힘을 다해 뜻을 굳게 세우고 지내는 동안, 감각의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나는 이렇게 알았다. ‘내게 감각의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이 생각은 나를 해치고, 남을 해치고, 나와 남 모두를 해친다. 지혜(빤냐)를 가로막고, 괴로움을 낳으며,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이끌지 않는다.’”

Tassa mayhaṁ, bhikkhave,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uppajjati kāmavitakko. So evaṁ pajānāmi: ‘uppanno kho me ayaṁ kāmavitakko. So ca kho attabyābādhāyapi saṁvattati, parabyābādhāyapi saṁvattati, ubhayabyābādhāyapi saṁvattati, paññānirodhiko vighātapakkhiko anibbānasaṁvattaniko’.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두 갈래 가운데 먼저 감각의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을 살핍니다. 힘써 수행하던 중에도 그 생각이 일어났고, 부처님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아봅니다. 자신에게 끼치는 해, 남에게 끼치는 해, 나와 남 모두에게 끼치는 해를 각각 살핍니다. 이어 지혜를 가로막는지, 괴로움을 낳는지, 고요히 꺼짐으로 이끄는지도 봅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이렇게 알아본 내용을 거듭 돌아보자 생각이 가라앉았다고 이어집니다. 생각이 떠오른 때와 그 뒤에 살핀 일을 차례로 들려주는 장면입니다.

묵상

‘내게 감각의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이 일어났다’는 말은 떠오른 생각과 나 자신 사이에 어떤 거리를 만들어 주나요? 최근의 작은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면, 그것을 따라간 뒤 남은 느낌은 어땠나요? 떠오른 때와 그 뒤의 결과를 따로 돌아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이 생각은 나를 해친다’고 돌아보자 그 생각이 가라앉았다. 수행자들이여, ‘남을 해친다’고 돌아보자 가라앉았다. 수행자들이여, ‘나와 남 모두를 해친다’고 돌아보자 가라앉았다. 수행자들이여, ‘지혜를 가로막고 괴로움을 낳으며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돌아보자 가라앉았다. 수행자들이여, 감각의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그것을 버리고, 몰아내고, 끝냈다.”

‘Attabyābādhāya saṁvattatī’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parabyābādhāya saṁvattatī’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ubhayabyābādhāya saṁvattatī’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paññānirodhiko vighātapakkhiko anibbānasaṁvattaniko’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So kho ahaṁ, bhikkhave, uppannuppannaṁ kāmavitakkaṁ pajahameva vinodameva byantameva naṁ ak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앞에서 알아본 생각의 결과를 실제로 돌아보는 장면입니다. 자신에게 미치는 해, 남에게 미치는 해, 나와 남 모두에게 미치는 해를 하나씩 살필 때마다 같은 생각이 가라앉습니다. 마지막에는 지혜를 가로막고, 괴로움을 낳고, 고요히 꺼짐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점까지 함께 돌아봅니다. 네 번 되풀이되는 ‘가라앉았다’는 말은 살피는 일을 거듭했음을 드러냅니다. 끝의 버리고·몰아내고·끝냈다는 세 동사는 그 생각을 계속 키우지 않았다는 회고를 힘 있게 마무리합니다.

묵상

‘돌아보자 가라앉았다’는 반복에서 어떤 말이 눈에 남나요? 작은 일이 지나간 뒤 그 결과를 다시 보니 처음의 끌림이 달라진 적이 있었나요? 지금은 어느 쪽의 기억이 더 가까이 느껴지나요?

“수행자들이여, 내가 방심하지 않고 힘을 다해 뜻을 굳게 세우고 지내는 동안, 미워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 해치려는 생각이 일어났다. 나는 이렇게 알았다. ‘내게 해치려는 생각이 일어났다. 이 생각은 나를 해치고, 남을 해치고, 나와 남 모두를 해친다. 지혜를 가로막고 괴로움을 낳으며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이끌지 않는다.’”

Tassa mayhaṁ, bhikkhave,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uppajjati byāpādavitakko …pe… uppajjati vihiṁsāvitakko. So evaṁ pajānāmi: ‘uppanno kho me ayaṁ vihiṁsāvitakko. So ca kho attabyābādhāyapi saṁvattati, parabyābādhāyapi saṁvattati, ubhayabyābādhāyapi saṁvattati, paññānirodhiko vighātapakkhiko anibbānasaṁvattani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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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감각의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을 살핀 뒤, 미워하는 생각과 해치려는 생각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가운데 줄임표는 앞에서 했던 설명을 되풀이하는 부분입니다. 그 뒤에는 해치려는 생각을 알아보고 결과를 살피는 문장이 다시 나옵니다. 자신과 남과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지, 지혜를 막고 괴로움을 낳으며 고요히 꺼짐으로 이끌지 않는지를 같은 기준으로 봅니다. 미워함과 해치려 함을 따로 들어, 각각의 생각을 하나씩 알아보며 살핍니다.

묵상

‘미워하는 생각’과 ‘해치려는 생각’을 나란히 읽으면 어떤 차이가 느껴지나요? 누군가에게 불편했던 작은 순간이 떠오른다면 그때 마음에 맴돈 말은 어느 쪽에 가까웠나요?

“수행자들이여, ‘이 생각은 나를 해친다’고 돌아보자 그 생각이 가라앉았다. 수행자들이여, ‘남을 해친다’고 돌아보자 가라앉았다. 수행자들이여, ‘나와 남 모두를 해친다’고 돌아보자 가라앉았다. 수행자들이여, ‘지혜를 가로막고 괴로움을 낳으며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돌아보자 가라앉았다. 수행자들이여, 해치려는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그것을 버리고, 몰아내고, 끝냈다.”

‘Attabyābādhāya saṁvattatī’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parabyābādhāya saṁvattatī’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ubhayabyābādhāya saṁvattatī’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paññānirodhiko vighātapakkhiko anibbānasaṁvattaniko’tipi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bbhatthaṁ gacchati. So kho ahaṁ, bhikkhave, uppannuppannaṁ vihiṁsāvitakkaṁ pajahameva vinodameva byantameva naṁ akāsi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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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앞서 감각의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에 썼던 살핌을 해치려는 생각에도 적용합니다. 자신에게 미치는 해와 남에게 미치는 해, 나와 남 모두에게 미치는 해를 각각 돌아봅니다. 지혜를 막고 괴로움을 낳으며 고요히 꺼짐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점도 살핍니다. 같은 문장이 반복되는 까닭은 생각의 종류가 달라도 살피는 기준이 같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말은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버렸다는 회고입니다. 뒤에서는 어떤 생각을 자주 이어 가느냐에 따라 마음의 방향도 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묵상

같은 기준으로 다시 살핀다는 말은 마음에 어떻게 들리나요? 이미 지나갔다고 여긴 생각이 다시 떠올랐을 때, 지난번과 달리 보인 점이 있었나요? 곧바로 놓아야 한다는 답을 찾기보다 지금 알아볼 수 있는 차이 하나가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무엇을 자주 떠올리고 헤아리든, 마음은 그쪽으로 기운다. 수행자들이여, 감각의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을 자주 떠올리고 헤아리면, 거기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버리고 탐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 마음은 탐하는 생각 쪽으로 기운다. 수행자들이여, 미워하는 생각을 자주 떠올리고 헤아리면 … 수행자들이여, 해치려는 생각을 자주 떠올리고 헤아리면,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해치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 마음은 해치려는 생각 쪽으로 기운다.”

Yaññadeva,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tathā tathā nati hoti cetaso. Kāmavitakkañce,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pahāsi nekkhammavitakkaṁ, kāmavitakkaṁ bahulamakāsi, tassa taṁ kāmavitakkāya cittaṁ namati. Byāpādavitakkañce, bhikkhave …pe… vihiṁsāvitakkañce,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pahāsi avihiṁsāvitakkaṁ, vihiṁsāvitakkaṁ bahulamakāsi, tassa taṁ vihiṁsāvitakkāya cittaṁ nam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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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개별 생각을 돌아보던 회고가 마음의 기울어짐에 관한 설명으로 넓어집니다. 중요한 말은 ‘자주’입니다. 생각 하나가 스쳤다는 사실과, 그 생각을 거듭 붙들고 곱씹는 일을 같게 보지 않습니다. 감각의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을 많이 키울수록 거기서 벗어나려는 생각은 놓게 된다는 두 방향이 함께 나옵니다. 미움에 관한 반복은 원문에서 줄이고, 해치려는 생각에는 같은 관계를 다시 풀어 씁니다. 뒤에서는 이 원리를 해치지 않는 쪽에도 그대로 적용합니다.

묵상

최근 자주 곱씹은 작은 생각이 하나 떠오르나요? 그 생각이 다시 나타날 때 마음이 향하는 쪽은 처음과 비슷한가요, 조금 다른가요?

“수행자들이여, 비 오는 철의 마지막 달인 가을, 곡식이 빽빽한 들에서 목동이 소를 지킨다고 하자. 막대기로 이쪽저쪽 두드리고 밀치며 소를 막아서고 돌려세운다. 왜 그럴까? 수행자들이여,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하거나 갇히거나 재산을 잃거나 꾸지람을 들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수행자들이여, 나도 해로운 생각의 위험과 천함, 마음을 더럽히는 성질을 보았다. 감각의 즐거움에서 벗어날 때 이로운 생각의 도움과 마음을 맑게 하는 힘도 보았다.”

Seyyathāpi, bhikkhave, vassānaṁ pacchime māse saradasamaye kiṭṭhasambādhe gopālako gāvo rakkheyya. So tā gāvo tato tato daṇḍena ākoṭeyya paṭikoṭeyya sannirundheyya sannivāreyya. Taṁ kissa hetu? Passati hi so, bhikkhave, gopālako tatonidānaṁ vadhaṁ vā bandhanaṁ vā jāniṁ vā garahaṁ vā. Evameva kho ahaṁ, bhikkhave, addas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ādīnavaṁ okāraṁ saṅkilesaṁ, kusalānaṁ dhammānaṁ nekkhamme ānisaṁsaṁ vodānapakkha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첫 목동 비유는 곡식이 아직 들에 남아 있는 때를 그립니다. 소가 곡식을 해치면 목동 자신이 큰 벌을 받을 수 있어, 목동은 소가 가는 쪽을 살피며 막아섭니다. 뒤의 비유 풀이도 결과를 미리 보는 데 초점을 둡니다. 해로운 생각이 어떤 손해를 남기는지와, 감각의 즐거움에서 벗어나는 생각이 어떤 이로움을 갖는지를 함께 봅니다. 뒤에 나올 수확 뒤의 목동과 비교하면, 같은 소를 지키더라도 주변 조건에 따라 필요한 돌봄이 달라집니다.

묵상

목동이 소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곡식이 있는 들도 살피는 장면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작은 일을 할 때 주변 사정 때문에 주의를 더 기울였던 적이 있나요? 그때 눈여겨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편하게 떠오르는 장면 하나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2 이로운 생각을 기르다 6구절

물러남과 선의와 해치지 않음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고요히 쉬게 하는 과정

“수행자들이여, 내가 이렇게 방심하지 않고 힘을 다해 뜻을 굳게 세우고 지내는 동안, 감각의 즐거움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일어났다. 나는 이렇게 알았다. ‘내게 감각의 즐거움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일어났다. 이 생각은 나를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고, 나와 남 모두를 해치지 않는다. 지혜를 키우고, 괴로움이 없는 쪽으로 향하며,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이끈다.’”

Tassa mayhaṁ, bhikkhave,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uppajjati nekkhammavitakko. So evaṁ pajānāmi: ‘uppanno kho me ayaṁ nekkhammavitakko. So ca kho nevattabyābādhāya saṁvattati, na parabyābādhāya saṁvattati, na ubhayabyābādhāya saṁvattati, paññāvuddhiko avighātapakkhiko nibbānasaṁvattaniko’.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앞에서는 감각의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이 자신과 남에게 끼치는 해를 살폈습니다. 여기서는 그 즐거움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같은 기준으로 살핍니다. 나에게 해가 없는지, 남에게 해가 없는지, 나와 남 모두에게 해가 없는지를 따로 확인하고, 이어 지혜를 키우는지와 고요히 꺼짐으로 향하는지를 봅니다. 생각의 두 방향이 낳는 서로 다른 결과를 나란히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생각을 이어 갈지 살피는 기준이 이 대조에서 드러납니다.

묵상

더 갖고 싶은 마음에서 잠시 벗어났을 때, 나와 곁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큰 결심이 아니어도 좋아요. 별일 없이 지나간 작은 장면을 떠올려 보면, 그 생각이 해를 줄였는지 알아볼 만한 단서가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이 생각을 밤새 떠올리고 헤아려도, 거기서 비롯될 위험은 보이지 않았다. 수행자들이여, 이 생각을 온종일 떠올리고 헤아려도, 거기서 비롯될 위험은 보이지 않았다. 수행자들이여, 이 생각을 밤낮으로 떠올리고 헤아려도, 거기서 비롯될 위험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오래 떠올리고 헤아리면 몸이 지칠 수 있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흔들릴 수 있었다.”

Rattiñcepi naṁ, bhikkhave, anuvitakkeyyaṁ anuvicāreyyaṁ, neva tatonidānaṁ bhayaṁ samanupassāmi. Divasañcepi naṁ, bhikkhave, anuvitakkeyyaṁ anuvicāreyyaṁ, neva tatonidānaṁ bhayaṁ samanupassāmi. Rattindivañcepi naṁ, bhikkhave, anuvitakkeyyaṁ anuvicāreyyaṁ, neva tatonidānaṁ bhayaṁ samanupassāmi. Api ca kho me aticiraṁ anuvitakkayato anuvicārayato kāyo kilameyya. Kāye kilante cittaṁ ūhaññeyya.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이 생각’은 바로 앞에서 말한, 감각의 즐거움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입니다. 밤, 낮, 밤낮을 따로 들어 그 생각 자체가 해로운 결과를 낳지 않음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면서도 오래 생각하는 일에는 몸을 지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입니다. 생각의 내용이 이로운가와 생각을 얼마나 오래 이어 가는가는 서로 다른 문제로 다루어집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몸의 피로에 따라 흔들린 마음을 어떻게 가라앉히는지 이어서 말합니다.

묵상

필요한 생각을 하다가 몸이 먼저 지쳤던 적이 있나요? 그때 생각의 내용은 여전히 도움이 되었는지, 생각을 오래 이어 가는 일만 힘들었는지 구별할 수 있나요? 최근의 가벼운 경험 하나를 떠올리며, 언제 쉬어야 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마음이 흔들리면, 마음이 한곳에 모이는 상태(사마디)에서 멀어진다. 수행자들이여, 그래서 나는 마음을 안으로 붙들어 세우고, 가라앉히고, 하나로 모으고, 한곳에 깊이 머물게 했다. 왜 그랬을까?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Ūhate citte ārā cittaṁ samādhimhāti. So kho ahaṁ, bhikkhave, ajjhattameva cittaṁ saṇṭhapemi sannisādemi ekodiṁ karomi samādahāmi. Taṁ kissa hetu? ‘Mā me cittaṁ ūhaññī’ti.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앞 대목은 이로운 생각이라도 오래 이어 가면 몸이 지치고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고 끝납니다. 이 인용은 그 뒤를 이어, 흔들린 마음이 한곳에 모이기 어렵다는 점을 말합니다. 그러고는 마음을 안으로 세우고, 가라앉히고, 하나로 모으고, 깊이 머물게 했다는 네 동작을 나란히 놓습니다. 마지막 물음과 대답은 그 까닭을 분명히 합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돌보는 과정입니다.

묵상

생각을 계속 이어 가는 것보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이 필요했던 때가 있나요? 그때 몸과 마음에서는 어떤 신호가 나타났나요? 이 문장의 네 동작 가운데 지금 가장 이해되는 말 하나를 골라, 자신의 경험과 나란히 놓아 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내가 이렇게 방심하지 않고 힘을 다해 뜻을 굳게 세우고 지내는 동안, 미워하지 않는 생각이 일어났다. …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이 일어났다. 나는 이렇게 알았다. ‘내게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이 일어났다. 이 생각은 나를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고, 나와 남 모두를 해치지 않는다. 지혜를 키우고, 괴로움이 없는 쪽으로 향하며,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이끈다.’”

Tassa mayhaṁ, bhikkhave,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uppajjati abyāpādavitakko …pe… uppajjati avihiṁsāvitakko. So evaṁ pajānāmi: ‘uppanno kho me ayaṁ avihiṁsāvitakko. So ca kho nevattabyābādhāya saṁvattati, na parabyābādhāya saṁvattati, na ubhayabyābādhāya saṁvattati, paññāvuddhiko avighātapakkhiko nibbānasaṁvattaniko’.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감각의 즐거움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에 이어, 미워하지 않는 생각과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을 살핍니다. 가운데 줄임표는 같은 설명을 되풀이하는 자리이며, 그 뒤에는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의 결과가 나옵니다. 이 생각도 자신과 남을 해치지 않고 지혜를 키우며 고요히 꺼짐으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경의 뒷부분에서는 그런 생각을 밤낮으로 이어 가도 해롭지 않지만, 오래 헤아리면 몸이 지칠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생각의 방향을 살핀 뒤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가라앉히는 데로 이어집니다.

묵상

미워하지 않는 마음과 해치지 않으려는 마음은 자신에게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나요? 말이나 행동을 고르기 전에 그런 생각이 먼저 떠오른 적이 있나요? 쉽게 떠오르는 일 하나를 통해, 그 생각이 자신과 상대에게 남긴 것을 살펴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무엇을 자주 떠올리고 헤아리든, 마음은 그쪽으로 기운다. 수행자들이여, 감각의 즐거움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자주 떠올리고 헤아리면, 그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은 버리고 벗어나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 마음은 벗어나려는 생각 쪽으로 기운다. 수행자들이여, 미워하지 않는 생각을 자주 떠올리고 헤아리면 … 수행자들이여,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을 자주 떠올리고 헤아리면, 해치려는 생각을 버리고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 마음은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 쪽으로 기운다.”

Yaññadeva,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tathā tathā nati hoti cetaso. Nekkhammavitakkañce,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pahāsi kāmavitakkaṁ, nekkhammavitakkaṁ bahulamakāsi, tassaṁ taṁ nekkhammavitakkāya cittaṁ namati. Abyāpādavitakkañce, bhikkhave …pe… avihiṁsāvitakkañce, bhikkhave, bhikkhu bahulamanuvitakketi anuvicāreti, pahāsi vihiṁsāvitakkaṁ, avihiṁsāvitakkaṁ bahulamakāsi, tassa taṁ avihiṁsāvitakkāya cittaṁ namati.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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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운 생각을 설명할 때 나온, 자주 떠올리는 생각이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는 같은 설명을, 이번에는 벗어나려는 생각과 미워하지 않는 생각,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에 적용합니다. 각 대목은 맞은편의 생각을 버리는 일, 이로운 생각을 자주 하는 일, 마음이 그쪽으로 기우는 일을 차례로 말합니다. 가운데 대목은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부분을 줄인 자리입니다.

묵상

자주 떠올리는 생각 때문에 마음의 방향이 조금 달라진 경험이 있나요?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려 했던 때나 무언가에서 물러났던 때를 떠올려도 좋아요. 그 변화에서 생각의 내용과 되풀이한 횟수는 각각 어떤 몫을 했나요?

“수행자들이여, 더운 철의 마지막 달에 곡식을 모두 마을로 거둬들인 뒤, 목동이 소를 지킨다고 하자. 그는 나무 밑이나 탁 트인 곳에서 ‘소들이 저기 있다’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수행자들이여, 나도 ‘이런 생각들이 있다’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었다.”

Seyyathāpi, bhikkhave, gimhānaṁ pacchime māse sabbasassesu gāmantasambhatesu gopālako gāvo rakkheyya, tassa rukkhamūlagatassa vā abbhokāsagatassa vā satikaraṇīyameva hoti: ‘etā gāvo’ti. Evamevaṁ kho, bhikkhave, satikaraṇīyameva ahosi: ‘ete dhammā’ti.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앞의 목동 비유에서는 곡식이 들에 남아 있어 소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곡식을 모두 거둬들였으므로 목동이 소의 움직임을 매번 막을 필요가 없습니다. 소를 지키는 일은 같아도 주변 조건이 달라졌습니다. 부처님은 이 두 번째 장면을 이로운 생각을 살피던 때에 견줍니다. ‘이런 생각들’은 앞에서 다룬 벗어나려는 생각, 미워하지 않는 생각,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을 받습니다. 그 생각들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는 모습이 소를 지켜보는 목동과 나란히 놓입니다.

묵상

같은 일을 돌보더라도 계속 손을 써야 할 때와 지켜보기만 해도 될 때가 있었나요? 두 경우를 가른 조건은 무엇이었나요? 목동의 두 장면을 떠올리며, 요즘 마음을 살필 때에도 그런 차이를 알아볼 수 있는지 천천히 생각해 볼까요?

3 고요에서 깨달음까지 6구절

준비된 마음이 네 단계의 깊은 집중과 세 가지 앎을 거쳐 풀려남에 이르는 과정

“수행자들이여, 나는 힘을 내어 느슨해지지 않았고, 알아차림(사띠)을 잊지 않고 또렷이 지켰다. 몸은 고요하고 긴장하지 않았으며, 마음은 한곳에 모여 있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감각의 즐거움과 해로운 것들에서 벗어나 첫 번째 깊은 몰입(자나)에 들어 머물렀다. 거기에는 생각을 일으키고 살펴 가는 움직임이 있었고, 벗어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다. 생각을 일으키고 살펴 가는 움직임이 가라앉자, 나는 두 번째 깊은 몰입에 들어 머물렀다. 마음 안은 맑아지고 마음은 하나로 모였다. 생각을 일으키거나 살펴 가는 움직임은 없었고, 한곳에 모인 마음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다.”

Āraddhaṁ kho pana me, bhikkhave, vīriyaṁ ahosi asallīnaṁ,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passaddho kāyo asāraddho, samāhitaṁ cittaṁ ekaggaṁ. So kho ahaṁ, bhikkhave,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āsiṁ.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생각의 두 방향을 살핀 이야기는 이제 깊은 몰입으로 이어집니다. 먼저 힘씀과 알아차림, 몸의 고요함, 한곳에 모인 마음을 함께 말합니다. 첫 번째 몰입에서는 생각을 일으키고 그 대상을 살피는 움직임이 남아 있으며, 감각의 즐거움에서 벗어나 생긴 기쁨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두 번째에서는 그 움직임도 잦아듭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바탕 역시 벗어남에서 한곳에 모인 마음으로 달리 설명됩니다.

묵상

어떤 일에 마음이 모였을 때 몸의 긴장과 주의의 또렷함은 각각 어땠나요? 이 경의 깊은 몰입에 자기 경험을 맞추려 하기보다, 힘을 쓰는 일과 몸을 편안히 하는 일이 함께 갈 수 있었던 작은 순간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기쁨이 잦아들자 나는 치우치지 않는 마음(우뻬까)으로 머물며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았고, 몸으로 즐거움을 느꼈다. 나는 세 번째 깊은 몰입에 들어 머물렀다. 고귀한 이들이 ‘치우치지 않고 알아차리며 즐겁게 머문다’고 하는 상태였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버리고, 그에 앞서 기쁨과 슬픔도 사라지자, 나는 네 번째 깊은 몰입에 들어 머물렀다. 거기에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었고, 치우치지 않는 마음으로 알아차림이 맑아져 있었다. 이렇게 한곳에 모인 마음이 맑고 환하며, 흠도 더러움도 없고, 부드러워 뜻대로 쓸 수 있으며, 굳게 자리 잡아 흔들리지 않게 되자, 나는 지난 삶들을 기억해 아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āsiṁ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esiṁ,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āsiṁ.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ṁ upekkhāsatipārisuddhiṁ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āsiṁ.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앞서 첫째·둘째 몰입에 이어 셋째·넷째 몰입을 말합니다. 셋째에서는 기쁨이 잦아들어도 몸으로 느끼는 즐거움은 남아 있습니다. 넷째에서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버리며, 기쁨과 슬픔은 그보다 앞서 사라졌다고 순서를 밝혀 둡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모인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길게 짚습니다. 맑음과 흔들리지 않음뿐 아니라 부드럽고 뜻대로 쓸 수 있다는 성질도 들어 있습니다. 이 마음을 지난 삶들을 기억하는 데로 향하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묵상

즐거움이 잔잔해졌는데도 마음이 편안했던 순간이 있나요? 강한 기쁨이 없다는 사실과 괴롭다는 느낌을 늘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는지도 살펴볼 수 있을까요? 경의 단계와 같다고 단정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서 두 느낌을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나는 여러 지난 삶을 기억했다. 한 번의 삶부터 … 그 모습과 자세한 사정까지, 여러 지난 삶을 기억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밤의 첫 무렵에 얻은 첫 번째 앎이었다. 방심하지 않고 힘을 다해 뜻을 굳게 세우고 지내는 이에게 그러하듯, 내게도 알지 못함(아위자)은 사라지고 앎이 생겨났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생겨났다.”

So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ām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pe…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āmi. Ayaṁ kho me, bhikkhave, rattiyā paṭhame yāme paṭham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지난 삶들을 기억하는 앎을 말하는 대목입니다. ‘한 번의 삶’부터 시작해 여러 지난 삶을 자세히 기억했다고 말하며, 가운데 줄임표는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부분을 줄인 자리입니다. 부처님은 이 앎을 얻은 때를 밤의 첫 무렵이라고 밝힙니다. 이어 알지 못함과 앎, 어둠과 빛을 짝지어 변화를 말합니다. 이 두 쌍의 문장과 방심하지 않고 힘썼다는 설명은 뒤에 나오는 두 앎의 끝에서도 같은 형식으로 되풀이됩니다.

묵상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어 이전 일이 다르게 보였던 경험이 있나요? 다만 ‘어둠이 걷히고 빛이 생겼다’는 표현이 어떤 배움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지 살펴볼까요?

“이렇게 한곳에 모인 마음이 맑고 환하며, 흠도 더러움도 없고, 부드러워 뜻대로 쓸 수 있으며, 굳게 자리 잡아 흔들리지 않게 되자, 나는 살아 있는 이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아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나는 맑고 사람의 눈을 넘어서는 하늘의 눈으로, 살아 있는 이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 ‘이들은 몸으로 나쁜 일을 했구나.’ … 이처럼 맑고 사람의 눈을 넘어서는 하늘의 눈으로,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이들을 보았다. 낮고 높은 이들, 아름답고 추한 이들,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 가는 이들이었으며, 저마다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알았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한밤중에 얻은 두 번째 앎이었다. 방심하지 않고 힘을 다해 뜻을 굳게 세우고 지내는 이에게 그러하듯, 내게도 알지 못함은 사라지고 앎이 생겨났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생겨났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ṁ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siṁ.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pe…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pe…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 Ayaṁ kho me, bhikkhave, rattiyā majjhime yāme du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앞에서는 자신의 지난 삶들을 기억했고, 여기서는 다른 이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봅니다. 두 앎에 앞서 마음이 맑고 부드러우며 흔들리지 않는다는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이어 사람의 눈을 넘어서는 하늘의 눈으로 보았다고 말합니다. 가운데 줄임표 두 곳은 경문에서 되풀이되는 내용을 줄인 자리입니다. 서로 다른 곳에 태어나는 일이 저마다 한 일과 이어져 있음을 안 뒤, 이를 밤의 가운데 무렵에 얻은 두 번째 앎이라고 정리합니다. 알지 못함과 앎, 어둠과 빛의 대조가 다시 나옵니다.

묵상

이 대목은 자신이 한 일과 그 뒤에 이어지는 결과를 함께 바라봐요. 평소에는 눈앞의 결과만 살폈다가 나중에 더 긴 영향을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경이 말하는 다시 태어남과 일상의 경험을 구별하면서, 내 선택을 얼마나 긴 시간 속에서 보는지 생각해 볼까요?

“이렇게 한곳에 모인 마음이 맑고 환하며, 흠도 더러움도 없고, 부드러워 뜻대로 쓸 수 있으며, 굳게 자리 잡아 흔들리지 않게 되자, 나는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아사와)이 다하는 것을 아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괴로움이 생겨나는 까닭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괴로움이 다한 상태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괴로움의 끝으로 이끄는 길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들이 아사와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아사와가 생겨나는 까닭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아사와가 다한 상태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아사와의 끝으로 이끄는 길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siṁ.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이제 마음을 아사와가 다하는 것을 아는 데로 향합니다. 아사와는 다음 대목에서 감각의 즐거움을 향한 욕망, 계속 존재하려는 욕망, 알지 못함으로 구체화됩니다. 여기서는 먼저 괴로움을 네 갈래로 알고, 이어 아사와도 같은 네 갈래로 알았다고 말합니다. 무엇인지, 어디서 생겨나는지, 다한 상태가 무엇인지, 그 끝으로 이끄는 길이 무엇인지를 각각 확인합니다. ‘있는 그대로 알았다’는 말을 여덟 번 되풀이해, 각 대상을 따로 분명히 알았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묵상

불편한 일이 생기면 그 느낌과 생겨난 까닭, 가라앉는 과정, 도움이 된 방법을 구별해서 본 적이 있나요? 경의 깊은 앎을 쉽게 얻었다고 여기기보다, 최근의 작은 경험에서 이 네 물음 가운데 무엇이 아직 잘 보이지 않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이렇게 알고 보자, 내 마음은 감각의 즐거움을 바라는 마음이 흘러드는 것에서도, 계속 존재하려는 마음이 흘러드는 것에서도, 알지 못함이 흘러드는 것에서도 풀려났다.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알았다. ‘태어남은 끝났다. 거룩한 삶을 다 살아 냈다. 해야 할 일을 마쳤다. 더는 이런 삶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밤의 마지막 무렵에 얻은 세 번째 앎이었다. 방심하지 않고 힘을 다해 뜻을 굳게 세우고 지내는 이에게 그러하듯, 내게도 알지 못함은 사라지고 앎이 생겨났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생겨났다.”

Tassa me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ittha,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ittha,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ittha,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ahos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abbhaññāsiṁ. Ayaṁ kho me, bhikkhave, rattiyā pacchime yāme ta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앞에서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인 아사와를 네 갈래로 알았다고 말한 뒤, 여기서는 그로부터 풀려남을 설명합니다. 감각의 즐거움에 대한 욕망, 계속 존재하려는 욕망, 알지 못함을 차례로 들며, 각각에서 마음이 풀려났다고 되풀이합니다. 뒤이어 풀려났다는 앎과, 태어남이 끝나고 해야 할 일을 마쳤다는 확인이 나옵니다. 이를 밤의 마지막 무렵에 얻은 세 번째 앎이라고 말하면서, 생각을 두 갈래로 나누어 살피기 시작한 부처님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묵상

무언가에서 놓여난 느낌이 들 때, 잠깐 편해진 것인지 다시 붙잡히지 않게 된 것인지 어떻게 알아보나요? 이 경의 완전한 풀려남에 자신의 상태를 맞추려 하기보다, 작은 변화를 확인할 때 어떤 근거를 살피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4 안전한 길을 열다 6구절

사슴 무리의 비유로 잘못된 길과 안전한 여덟 가지 길을 밝히는 마지막 가르침

“수행자들이여, 외딴 숲의 낮은 곳에 넓은 늪이 있고, 큰 사슴 무리가 그곳에 기대어 산다고 하자. 그 사슴들이 망하고, 해를 입고, 안전하지 못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안전하고 탈 없이 즐거움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잘못된 길을 연다. 그리고 사슴들을 꾀어낼 수사슴을 놓고 암사슴도 두어 둔다.”

Seyyathāpi, bhikkhave, araññe pavane mahantaṁ ninnaṁ pallalaṁ. Tamenaṁ mahāmigasaṅgho upanissāya vihareyya. Tassa kocideva puriso uppajjeyya anatthakāmo ahitakāmo ayogakkhemakāmo. So yvāssa maggo khemo sovatthiko pītigamanīyo taṁ maggaṁ pidaheyya, vivareyya kummaggaṁ, odaheyya okacaraṁ, ṭhapeyya okacārika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부처님 자신의 깨달음 이야기가 끝나고, 길과 사슴을 중심으로 한 긴 비유가 시작됩니다. 사슴들이 기대어 사는 늪, 그들을 해치려는 사람, 두 길, 사슴을 꾀는 수사슴과 암사슴이 차례로 나옵니다. 그 사람은 사슴들이 다니던 안전한 길을 막고 다른 길을 열어 둡니다. 사슴들이 어느 쪽으로 가게 되는지를 바꾸는 행동입니다. 바로 다음 대목은 그 결과를 말하고, 이어 사슴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의 반대 장면을 보여 줍니다.

묵상

이 장면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늪인가요, 두 갈래 길인가요, 다른 사슴을 꾀어내는 사슴인가요? 아직 뒤의 풀이를 읽지 않았다면 장면을 잠시 그대로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길을 누가 열고 닫는지 알게 되었을 때 그 장면이 어떻게 달리 보이나요?

“수행자들이여, 그러면 그 큰 사슴 무리는 얼마 뒤에 재앙을 겪고 무너질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그런데 그 사슴들이 잘되고, 이로움을 얻고, 안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자. 그는 안전하고 탈 없이 즐거움으로 가는 길을 열고, 잘못된 길을 막는다. 사슴들을 꾀던 수사슴을 치우고 암사슴을 없앤다. 수행자들이여, 그러면 그 큰 사슴 무리는 얼마 뒤에 자라고, 불어나고, 크게 번성할 것이다.”

Evañhi so, bhikkhave, mahāmigasaṅgho aparena samayena anayabyasanaṁ āpajjeyya. Tasseva kho pana, bhikkhave, mahato migasaṅghassa kocideva puriso uppajjeyya atthakāmo hitakāmo yogakkhemakāmo. So yvāssa maggo khemo sovatthiko pītigamanīyo taṁ maggaṁ vivareyya, pidaheyya kummaggaṁ, ūhaneyya okacaraṁ, nāseyya okacārikaṁ. Evañhi so, bhikkhave, mahāmigasaṅgho aparena samayena vuddhiṁ virūḷhiṁ vepullaṁ āpajjeyya.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첫 문장은 앞 대목에서 안전한 길을 막고 사슴을 꾀어낸 결과입니다. 그다음에는 반대 뜻을 지닌 사람이 나타나, 막혔던 길을 열고 잘못된 길을 막으며 두 사슴을 치웁니다. 두 사람의 뜻과 행동, 그에 따른 결과가 서로 맞물려 대조됩니다. 첫 사람은 사슴 무리를 무너지게 하고, 두 번째 사람은 무리가 자라고 번성할 수 있도록 길을 엽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비유의 풀이에서는 이 두 사람과 두 길, 사슴들을 꾀는 두 미끼가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지 설명합니다.

묵상

앞뒤의 두 사람은 같은 길과 같은 사슴들을 두고 서로 반대로 행동해요. 이 대조에서 어떤 행동이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나요?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만큼, 그 사람이 마주할 조건을 실제로 바꾸는 일이 필요했던 때가 있었나요?

“수행자들이여, 뜻을 알리려고 이 비유를 들었다. 그 뜻은 이렇다. 수행자들이여, ‘낮은 곳의 넓은 늪’은 감각의 즐거움을 가리킨다. 수행자들이여, ‘큰 사슴 무리’는 살아 있는 이들을 가리킨다. 수행자들이여, ‘사슴들이 망하고, 해를 입고, 안전하지 못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악한 마라를 가리킨다.”

Upamā kho me ayaṁ, bhikkhave, katā atthassa viññāpanāya. Ayaṁ cevettha attho—mahantaṁ ninnaṁ pallalanti kho, bhikkhave, kāmānametaṁ adhivacanaṁ. Mahāmigasaṅghoti kho, bhikkhave, sattānametaṁ adhivacanaṁ. Puriso anatthakāmo ahitakāmo ayogakkhemakāmoti kho, bhikkhave, mārassetaṁ pāpimato adhivaca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비유의 뜻을 부처님이 직접 풉니다. 늪은 감각의 즐거움, 사슴 무리는 살아 있는 이들, 해치려는 사람은 악한 마라를 가리킨다고 밝힙니다. 앞 장면에서 사슴들은 늪에 기대어 살고 있었으며, 마라에 견준 사람은 그들이 망하고 해를 입으며 안전하지 못하기를 바랐습니다. 그 의도를 나타내는 세 표현도 풀이에서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비유에 나온 대상과 그것이 가리키는 것을 이렇게 짝지어 둔 뒤, 다음 대목에서는 잘못된 길과 사슴을 꾀는 미끼의 뜻을 이어서 밝힙니다.

묵상

앞에서 상상했던 비유의 장면과 부처님이 직접 밝힌 뜻이 어떻게 맞아들어 가나요? 예상과 달랐던 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신의 해석을 곧바로 덧붙이기 전에, 글이 실제로 무엇을 무엇에 견주고 있는지 한 번 더 읽어 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잘못된 길’은 잘못된 여덟 갈래 길을 가리킨다. 잘못 이해하고, 잘못 뜻을 세우고, 잘못 말하고, 몸으로 잘못된 일을 하고, 잘못 생계를 꾸리고, 잘못 힘쓰고, 잘못 알아차리고, 잘못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사슴들을 꾀는 수사슴’은 즐거움에 빠져 탐내는 마음을 가리킨다. 수행자들이여, ‘사슴들을 꾀는 암사슴’은 알지 못함(아위자)을 가리킨다.”

Kummaggoti kho, bhikkhave, aṭṭhaṅgikassetaṁ micchāmaggassa adhivacanaṁ, seyyathidaṁ—micchādiṭṭhiyā micchāsaṅkappassa micchāvācāya micchākammantassa micchāājīvassa micchāvāyāmassa micchāsatiyā micchāsamādhissa. Okacaroti kho, bhikkhave, nandīrāgassetaṁ adhivacanaṁ. Okacārikāti kho, bhikkhave, avijjāyetaṁ adhivaca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비유의 잘못된 길을 여덟 갈래로 풉니다. 이해와 뜻에서 시작해 말과 몸으로 하는 일, 생계를 꾸리는 일, 힘씀, 알아차림, 마음을 모으는 일까지 이어집니다. 원문은 여덟 가지 모두에 ‘잘못된’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마지막 세 가지도 그 자체만으로는 바른 길이 되지 않습니다. 이어 사슴을 꾀던 수사슴은 즐거움에 빠져 탐내는 마음에, 암사슴은 알지 못함에 견줍니다. 바로 다음 대목에서는 이 여덟 갈래와 마주 놓인 바른 길을 설명합니다.

묵상

열심히 하거나 한곳에 마음을 모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던 적이 있나요? 이 여덟 갈래 가운데 평소에는 방향이 바른지 잘 묻지 않던 부분이 있나요? 최근의 작은 일을 하나 떠올리며, 무엇을 위해 힘썼는지부터 돌아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사슴들이 잘되고, 이로움을 얻고, 안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를 가리킨다. 수행자들이여, ‘안전하고 탈 없이 즐거움으로 가는 길’은 거룩한 여덟 갈래 길을 가리킨다.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뜻을 세우고, 바르게 말하고, 몸으로 하는 일(깜만따)을 바르게 하고, 바르게 생계를 꾸리고, 바르게 힘쓰고, 바르게 알아차리고, 바르게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이처럼 안전하고 탈 없이 즐거움으로 가는 길을 열고, 잘못된 길을 막고, 사슴들을 꾀던 수사슴을 치우고 암사슴을 없앴다.”

Puriso atthakāmo hitakāmo yogakkhemakāmoti kho, bhikkhave, tathāgatassetaṁ adhivacanaṁ arahato sammāsambuddhassa. Khemo maggo sovatthiko pītigamanīyoti kho, bhikkhave, ariyassetaṁ aṭṭhaṅgikassa maggassa adhivacana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yā sammāsaṅkappassa sammāvācāya sammākammantassa sammāājīvassa sammāvāyāmassa sammāsatiyā sammāsamādhissa. Iti kho, bhikkhave, vivaṭo mayā khemo maggo sovatthiko pītigamanīyo, pihito kummaggo, ūhato okacaro, nāsitā okacārikā.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사슴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과 안전한 길의 뜻을 풉니다. 원문이 가리키는 인물은 부처님이며, 길은 여덟 갈래로 제시됩니다. 바로 앞의 잘못된 길과 같은 여덟 항목을 쓰되, 각각 ‘바르게’라고 말합니다. 이해와 뜻을 세우는 일에서 말과 몸으로 하는 일, 생계, 힘씀, 알아차림, 마음을 모으는 일까지 이어집니다. 끝에서는 길을 열고 막는 일과 두 사슴을 치우는 일을 부처님 자신의 말로 되짚습니다. 이 맺음은 비유 전체를 앞에서 들려준 가르침에 연결합니다.

묵상

여덟 갈래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인가요? 평소에 마음을 많이 쓰는 부분과 거의 돌아보지 않는 부분이 서로 다른지도 살펴볼 수 있을까요? 작은 선택 하나가 다른 갈래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지금 떠올릴 만한 경험이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제자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그들을 가엾이 여기는 스승으로서 해야 할 일을, 나는 그대들에게 다 했다. 수행자들이여, 여기 나무 밑이 있고 빈 거처가 있다. 수행자들이여, 고요히 마음을 닦아라. 방심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은 기뻐하며 부처님의 말씀을 반겼다.

Yaṁ, bhikkhave, satthārā karaṇīyaṁ sāvakānaṁ hitesinā anukampakena anukampaṁ upādāya, kataṁ vo taṁ mayā. Etāni, bhikkhave, rukkhamūlāni, etāni suññāgārāni; jhāyatha, bhikkhave, mā pamādattha;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Ayaṁ vo amhākaṁ anusāsanī”ti.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맛지마 니까야 MN 19 드웨다위딱까 숫따 (두 갈래 생각)

배경

부처님은 제자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가엾이 여기는 스승의 마음을 밝힌 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합니다. 이어 나무 밑과 빈 거처를 가리키며 실제로 마음을 닦도록 당부합니다. 장소를 가리키는 말과 방심하지 말라는 말이 함께 있어, 앞에서 들은 이야기가 수행자 자신의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두 문장은 이야기를 전하는 이가 전합니다. 수행자들이 그 말씀을 기뻐하며 반겼다고 전하면서 경을 마칩니다.

묵상

좋은 설명을 들은 뒤 그것을 직접 해 볼 시간과 자리를 마련했던 적이 있나요? 자신에게는 어떤 자리에서 마음을 살피기가 조금 더 편한가요? 지금 바로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부담보다, 들은 말을 천천히 돌아볼 조건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