쭐라말루꺄 숫따(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Cūḷamālukyasutta

흔히 부르는 이름 전유경

맛지마 니까야 MN 63

세상의 영원성 등 열 가지 물음에 답을 기다리다 죽는 일을 독화살에 비유하고, 괴로움과 그 소멸의 길을 먼저 가르친다.

인용된 가르침 28구절

이 경을 5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대답 없는 물음에 걸린 수행 9구절

말룽꺄뿟따가 답을 받지 못한 열 가지 견해를 떠올리고 수행을 계속할 조건으로 내겁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무셨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이 경은 부처님이 머물던 곳을 밝히며 시작합니다. 제따 숲은 장소이고 아나타삔디까는 동산의 이름에 들어 있는 사람 이름입니다. 곧이어 말룽꺄뿟따가 홀로 지내다가 품은 생각이 나오며, 그 생각은 부처님과의 문답으로 이어집니다. 처음의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말은 이야기를 전하는 이의 목소리입니다. 부처님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대목과는 구별됩니다. 짧은 장소 설명은 뒤의 질문과 독화살 비유가 누구 사이에서 오가는지를 알려 주는 시작입니다.

묵상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 말이 나온 자리와 상황을 알면 다르게 들리기도 하나요? 최근에 들은 말 하나를 떠올려 볼까요? 그 배경을 알기 전과 알고 난 뒤에 달라진 느낌이 있었는지 가볍게 살펴봐도 좋겠어요.

“말룽꺄뿟따께서는 홀로 조용히 머물다가 이런 생각을 하셨다. ‘부처님은 여러 생각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고 제쳐 두며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진다거나 그렇지 않다는 생각, 세상에는 끝이 있다거나 없다는 생각, 생명의 바탕(지와)과 몸은 같다거나 다르다는 생각이다. 또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에도 있다거나 없다는 생각,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거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부처님은 내게 이것들을 설명하지 않으신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부처님께 가서 이 일을 여쭈어야겠다.’”

Atha kho āyasmato mālukyaputtassa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ṁ cetaso parivitakko udapādi: “yānimāni diṭṭhigatāni bhagavatā abyākatāni ṭhapitāni paṭikkhittāni: ‘sassato loko’tipi, ‘asassato loko’tipi, ‘antavā loko’tipi, ‘anantavā loko’tipi,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pi,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pi,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pi,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pi,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pi,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pi— tāni me bhagavā na byākaroti. Yāni me bhagavā na byākaroti taṁ me na ruccati, taṁ me nakkhamati. Sohaṁ bhagavantaṁ upasaṅkamitvā etamatthaṁ pucchissām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말룽꺄뿟따가 홀로 지내며 품은 불만입니다.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공간의 끝이 있는지, 생명의 바탕과 몸이 같은지, 깨달은 이가 죽은 뒤 어떻게 되는지를 묻습니다. 마지막 물음에는 있다와 없다뿐 아니라 둘 다인 경우와 둘 다 아닌 경우까지 들어 있어 모두 열 가지 생각이 됩니다. 지와는 여기서 몸과 같은지 다른지를 논하던 생명의 바탕을 가리키며, 경이 그 존재를 확정한 말은 아닙니다. 말룽꺄뿟따는 답이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직접 물으러 가기로 합니다.

묵상

여러 물음 가운데 유독 마음에 남는 것이 있나요? 그 물음에서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답을 듣지 못할 때 어떤 느낌이 생기는지 하나만 천천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부처님이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신다면, 나는 부처님께 배우며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겠다.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 깨달음에 이른 이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시지 않는다면, 배움을 그만두고 지금보다 못한 삶으로 돌아가겠다.”

Sace me bhagavā byākarissa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evāhaṁ bhagavati brahmacariyaṁ carissāmi; no ce me bhagavā byākarissa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evāhaṁ sikkhaṁ paccakkhāya hīnāyāvatti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말룽꺄뿟따의 생각은 이제 배움을 계속할지 그만둘지를 정하는 조건으로 이어집니다. 답을 받으면 부처님께 배우며 살고, 받지 못하면 배움을 그만두겠다는 것입니다. 맑고 바른 삶은 이 문맥에서 집을 떠나 욕망을 절제하며 길을 닦는 삶을 가리킵니다. ‘지금보다 못한 삶’이라는 말은 집으로 돌아가는 삶을 낮추어 부르던 당시의 표현으로, 말룽꺄뿟따의 생각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 집에서 사는 독자의 삶을 평가하는 말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묵상

무언가를 계속할지 말지 생각할 때 내 마음속에 어떤 조건이 붙어 있나요? 그 조건이 처음부터 있었는지 지내는 동안 새로 생겼는지 떠올려 볼까요?

저녁 무렵, 말룽꺄뿟따께서는 홀로 머물던 곳에서 나와 부처님을 찾아가셨다. 인사를 올리고 한쪽에 앉으셨다. 한쪽에 앉은 말룽꺄뿟따께서는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셨다. “부처님, 저는 홀로 조용히 머물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여러 생각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고 제쳐 두며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진다거나 그렇지 않다는 생각, …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부처님은 내게 이것들을 설명하지 않으신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부처님께 가서 이 일을 여쭈어야겠다. 부처님이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 깨달음에 이른 이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신다면, 나는 부처님께 배우며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겠다.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 깨달음에 이른 이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시지 않는다면, 배움을 그만두고 지금보다 못한 삶으로 돌아가겠다.’”

Atha kho āyasmā mālukyaputto sāyanhasamayaṁ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mālukya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Idha mayhaṁ, bhante,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ṁ cetaso parivitakko udapādi— yānimāni diṭṭhigatāni bhagavatā abyākatāni ṭhapitāni paṭikkhittāni: ‘sassato loko’tipi, ‘asassato loko’tipi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pi— tāni me bhagavā na byākaroti. Yāni me bhagavā na byākaroti taṁ me na ruccati, taṁ me nakkhamati. Sohaṁ bhagavantaṁ upasaṅkamitvā etamatthaṁ pucchissāmi. Sace me bhagavā byākarissa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evāhaṁ bhagavati, brahmacariyaṁ carissāmi. No ce me bhagavā byākarissa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evāhaṁ sikkhaṁ paccakkhāya hīnāyāvatti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말룽꺄뿟따는 저녁에 부처님을 찾아가 홀로 있을 때의 생각을 전합니다. 답이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불만과, 답을 받아야 배움을 계속하겠다는 조건을 함께 밝힙니다. 부처님을 찾아가 묻겠다는 말도 이미 지나간 속생각을 전하는 부분입니다. 그 구별을 알면 눈앞의 상대에게 다시 찾아가겠다고 말하는 듯한 어색함이 풀립니다. 뒤의 대화에서는 그가 원한 답보다 먼저, 처음부터 그런 조건으로 배움을 약속했는지가 다루어집니다.

묵상

마음속에서 여러 번 되풀이한 말을 상대에게 직접 전해 본 적이 있나요? 입 밖에 내고 나서 내가 바란 것이 좀 더 분명해지기도 했나요? 떠오르는 가벼운 대화 하나에서 그때의 부탁과 내 기대를 나누어 살펴볼까요?

“부처님께서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진다고 아신다면, 제게 언제까지나 이어진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까지나 이어지지 않는다고 아신다면, 그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 쪽인지 알지도 보지도 못하신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한 태도입니다.”

Sace bhagavā jānāti: ‘sassato loko’ti, ‘sassato loko’ti me bhagavā byākarotu; sace bhagavā jānāti: ‘asassato loko’ti, ‘asassato loko’ti me bhagavā byākarotu. No ce bhagavā jānā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ajānato kho pana apassato etadeva ujukaṁ hoti yadidaṁ: ‘na jānāmi, na pa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말룽꺄뿟따는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를 두 갈래로 나누어 묻습니다. 어느 쪽인지 안다면 그대로 말하고, 알지 못한다면 모른다고 밝혀 달라는 요구입니다. 그는 답하지 않는 까닭을 앎이 있는지 없는지로 판단하려 합니다. 그러나 뒤에서 부처님은 어떤 답이 괴로움을 끝내는 길에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대목은 말룽꺄뿟따의 요구이며, 부처님이 알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질문에 답하는 기준이 둘 사이에서 어떻게 다른지 보여 줍니다.

묵상

상대가 바로 답하지 않을 때 나는 그 까닭을 어떻게 짐작하나요?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말할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떠올려 볼까요? 최근의 가벼운 대화에서 내 짐작과 실제로 들은 말을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세상이 유한한지 무한한지 아신다면 답해 주십시오. 모르고 보지 못하신다면 ‘나는 모른다,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한 태도입니다.”

Sace bhagavā jānāti: ‘antavā loko’ti, ‘anantavā loko’ti me bhagavā byākarotu; sace bhagavā jānāti: ‘anantavā loko’ti, ‘anantavā loko’ti me bhagavā byākarotu. No ce bhagavā jānāti: ‘antavā loko’ti vā, ‘anantavā loko’ti vā, ajānato kho pana apassato etadeva ujukaṁ hoti yadidaṁ: ‘na jānāmi, na passām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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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앞에서는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를 물었고, 여기서는 세상에 끝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습니다. 말룽꺄뿟따는 이 경우에도 아는 것을 말하거나 모른다고 밝혀 달라고 요구합니다. 두 물음은 비슷해 보여도 하나는 시간의 지속을, 다른 하나는 세상의 경계를 다룹니다. 이 요구에 대해 뒤의 문답은 답을 얻는 것이 길을 닦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지 살핍니다. 이곳은 질문자의 요구를 듣는 자리이며, 부처님이 세상의 경계에 대해 내린 결론으로 읽지 않습니다.

묵상

서로 반대되는 두 답 가운데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최근의 작은 일에서 그랬던 순간을 떠올려 볼까요?

“부처님께서 생명의 바탕(지와)과 몸이 같다고 아신다면, 제게 같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서로 다르다고 아신다면, 다르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 쪽인지 알지도 보지도 못하신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한 태도입니다.”

Sace bhagavā jānāti: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 me bhagavā byākarotu; sace bhagavā jānāti: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 me bhagavā byākarotu. No ce bhagavā jānāti: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 vā,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 vā, ajānato kho pana apassato etadeva ujukaṁ hoti yadidaṁ: ‘na jānāmi, na passām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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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번에는 살아 있게 하는 바탕과 몸이 같은지 다른지를 묻습니다. 지와는 이 논의에서 그 바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몸 안에 무엇이 따로 들어 있다고 미리 정한 표현은 아닙니다. 말룽꺄뿟따는 같음과 다름 중 아는 쪽을 밝혀 달라고 하며,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는 조건도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부처님은 뒤에서 이 두 생각 가운데 하나를 정해야만 길을 닦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질문의 대상과 배움을 시작하는 조건을 구별하며 읽을 대목입니다.

묵상

몸과 나의 관계를 생각할 때 지금 몸에서 바로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요? 깊은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손의 온기나 앉아 있는 감촉처럼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나요?

“부처님께서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가 죽은 뒤에도 있다고 아신다면, 제게 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죽은 뒤에는 없다고 아신다면, 없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 쪽인지 알지도 보지도 못하신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한 태도입니다.”

Sace bhagavā jānāti: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e bhagavā byākarotu; sace bhagavā jānāti: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e bhagavā byākarotu. No ce bhagavā jānāti: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ajānato kho pana apassato etadeva ujukaṁ hoti yadidaṁ: ‘na jānāmi na passām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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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말룽꺄뿟따는 이제 깨달음에 이른 이가 죽은 뒤에도 있는지를 묻습니다. 따타가따는 여기서 그 대상을 가리키는 호칭입니다. 있다와 없다라는 두 답 가운데 어느 쪽을 아는지 밝히라는 요구가 이어집니다. 이 물음은 깨달음에 이른 이 한 사람에게만 묻는 좁은 질문입니다. 뒤의 설명에서는 어느 생각을 택하든 지금의 태어남과 늙음, 죽음, 괴로움이 저절로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아직 부처님이 답을 내리는 대목은 아닙니다.

묵상

죽음 뒤의 일에 관한 말을 들을 때 나는 그 말에서 무엇을 알고 싶어 하나요? 지금 답을 정하기보다 그 물음이 내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만 살펴볼까요? 아직 답을 알지 못해도, 오늘 돌보고 싶은 사람이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부처님께서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아신다면, 제게 그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고 아신다면, 그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알지도 보지도 못하신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한 태도입니다.”

Sace bhagavā jānāti: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e bhagavā byākarotu; sace bhagavā jānāti: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e bhagavā byākarotu. No ce bhagavā jānāti: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ajānato kho pana apassato etadeva ujukaṁ hoti yadidaṁ: ‘na jānāmi, na pa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앞에서는 죽은 뒤 있다와 없다를 따로 물었습니다. 이제 둘 다인 경우와 둘 다 아닌 경우가 더해집니다. 말룽꺄뿟따는 말로 세울 수 있는 네 갈래를 모두 내놓고, 어느 쪽을 아는지 밝혀 달라고 합니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말은 여기서 네 번째로 제시한 생각이며, 부처님이 내린 답이 아닙니다. 앎을 밝히거나 모름을 인정하라는 같은 요구가 마지막까지 이어집니다. 그 뒤에 부처님은 답을 대가로 배우기로 한 약속이 있었는지를 되묻습니다.

묵상

어떤 일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설명해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그때 더 많은 경우를 세는 일과 실제로 본 것을 확인하는 일은 어떻게 달랐나요? 가벼운 경험 하나에서 그 차이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2 성립하지 않은 거래 3구절

부처님은 그런 답을 조건으로 출가를 청한 적도, 답을 약속한 적도 없다고 확인합니다.

“말룽꺄뿟따여, 내가 네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가? ‘말룽꺄뿟따여, 와서 내게 배우며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아라. 그러면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끝이 있는지 없는지, 생명의 바탕(지와)과 몸이 같은지 다른지,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에도 있는지 없는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알려 주겠다.’” “아닙니다, 부처님.”

“Kiṁ nu tāhaṁ, mālukyaputta, evaṁ avacaṁ: ‘ehi tvaṁ, mālukyaputta, mayi brahmacariyaṁ cara, ahaṁ te byākarissām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antavā loko”ti vā, “anantavā loko”ti vā,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 vā,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 vā,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ti? “No hetaṁ, bh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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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부처님은 말룽꺄뿟따가 내놓은 열 가지 생각 중 어느 쪽이 맞는지부터 답하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이 그 물음에 답해 주는 대가로 배움을 권한 적이 있는지 묻습니다. 질문 속의 긴 목록은 말룽꺄뿟따가 알고 싶어 한 내용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살피는 것은 처음에 둘 사이에 어떤 약속이 있었는가입니다. 말룽꺄뿟따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답합니다. 뒤에서는 반대로 자신이 같은 조건을 제안했는지도 확인하게 됩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기대한 일이 그 사람이 실제로 약속한 일이었는지 구별해 본 적이 있나요? 가벼운 약속 하나를 떠올리며 내가 들은 말과 스스로 기대한 것을 나누어 볼까요? 어느 쪽인지 불분명하다면 아직 모르겠다고 남겨 둘 수 있을까요?

“그러면 네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가? ‘부처님, 저는 부처님께 배우며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겠습니다. 부처님은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끝이 있는지 없는지, 생명의 바탕(지와)과 몸이 같은지 다른지,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에도 있는지 없는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알려 주실 것입니다.’” “아닙니다, 부처님.”

“Tvaṁ vā pana maṁ evaṁ avaca: ‘ahaṁ, bhante, bhagavati brahmacariyaṁ carissāmi, bhagavā me byākarissa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antavā loko”ti vā, “anantavā loko”ti vā,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 vā,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 vā,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ti? “No hetaṁ, bh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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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앞에서는 부처님이 조건을 제안했는지 물었고, 이번에는 말룽꺄뿟따가 그런 조건을 말한 적이 있는지 묻습니다. 배움을 시작하겠다는 말에 세상과 죽음 뒤의 물음에 답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묶어 제시했는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 물음에도 아니라고 답합니다. 같은 목록이 되풀이되지만 확인하는 쪽이 달라집니다. 나중에 생긴 기대와 처음에 함께 정한 약속은 서로 다릅니다.

묵상

어떤 일을 시작할 때의 약속과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달라진 적이 있나요? 바람이 달라진 것이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처음 나눈 말과 지금 새롭게 부탁하고 싶은 말을 나누어 보면 무엇이 좀 더 분명해질까요?

“말룽꺄뿟따여, 그렇다면 나는 네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구나. ‘말룽꺄뿟따여, 와서 내게 배우며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아라.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알려 주겠다.’ 너도 내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구나. ‘부처님, 저는 부처님께 배우며 맑고 바르게 살겠습니다. 부처님은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 깨달음에 이른 이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사람아, 너와 나 사이에 무슨 약속이 있다고 나를 거절하는가?”

“Iti kira, mālukyaputta, nevāhaṁ taṁ vadāmi: ‘ehi tvaṁ, mālukyaputta, mayi brahmacariyaṁ cara, ahaṁ te byākarissām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ti; napi kira maṁ tvaṁ vadesi: ‘ahaṁ, bhante, bhagavati brahmacariyaṁ carissāmi, bhagavā me byākarissa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ti. Evaṁ sante, moghapurisa, ko santo kaṁ paccācikkha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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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앞의 두 대답을 모아, 어느 쪽도 답변을 대가로 배움을 약속하지 않았음을 확인합니다. 부처님은 자신이 하지 않은 말과 제자가 하지 않은 말을 각각 되짚은 뒤 날카롭게 되묻습니다. 이 꾸짖음은 말룽꺄뿟따가 지금 내세운 조건을 겨냥합니다. 배움을 계속할지 스스로 묻는 모든 사람에게 붙이는 평가가 아닙니다. 뒤의 독화살 비유는 같은 문제를 다른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답을 알아야만 시작하겠다는 조건이 실제로 무엇을 가로막는지 살피게 합니다.

묵상

예전에는 없던 조건이 어느 순간 꼭 필요한 약속처럼 느껴진 적이 있나요? 그 조건이 생기던 때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었나요? 당시의 바람을 차분히 떠올려 보면 처음의 목적과 어떤 관계가 보일까요?

3 독화살을 맞고도 캐묻는 사람 6구절

답을 기다리다 죽는 사람과 치료 전에 화살의 모든 내력을 알려는 사람을 겹쳐 보여 줍니다.

“말룽꺄뿟따여,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부처님이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실 때까지는, 부처님께 배우며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지 않겠다.’ 말룽꺄뿟따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그 물음에 여전히 답하지 않을 것이고, 그 사람은 죽고 말 것이다.”

Yo kho, mālukyaputta,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bhagavati brahmacariyaṁ carissāmi yāva me bhagavā na byākarissa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ti, abyākatameva taṁ, mālukyaputta, tathāgatena assa, atha so puggalo kālaṁ kareyya.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독화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부처님은 말룽꺄뿟따가 내건 조건이 낳을 결과부터 밝힙니다. 누군가 답을 들을 때까지 배우지 않겠다고 해도, 그 요구가 부처님의 답변을 끌어내지는 못합니다. 물음은 답을 얻지 못한 채 남고 그 사람의 삶은 끝납니다. 이는 호기심을 품으면 벌을 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답을 먼저 받아야만 길을 닦겠다는 조건을 걸면 그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바로 다음의 화살 비유가 그 관계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펼쳐 보입니다.

묵상

모든 설명이 갖추어질 때까지 기다리다 시작하지 못한 작은 일이 있나요? 아직 모르는 것을 남겨 두고도 해 볼 수 있었던 일이 있었나요? 지금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내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볼까요?

“말룽꺄뿟따여, 어떤 사람이 독을 듬뿍 바른 화살에 맞았다고 하자. 친구와 동료, 친척과 가족이 화살을 뽑아 줄 의사를 데려왔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쏜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집안 출신인지, 제사를 맡는 집안 출신(브라흐마나)인지, 농사나 장사를 하는 집안 출신인지, 남의 일을 해 주는 집안 출신인지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

Seyyathāpi, mālukyaputta, puriso sallena viddho assa savisena gāḷhapalepanena. Tassa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bhisakkaṁ sallakattaṁ upaṭṭhapeyyuṁ. So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imaṁ sallaṁ āharissāmi yāva na taṁ purisaṁ jānāmi yenamhi viddho, khattiyo vā brāhmaṇo vā vesso vā suddo vā’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부처님은 독화살에 맞은 사람과 그를 도우려는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의사를 데려온 쪽은 친구와 동료, 친척과 가족이고, 치료에 조건을 붙이는 쪽은 다친 사람입니다. 그가 알아내려는 네 집단은 당시 태어난 집안에 따라 나뉘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당장 하는 일을 네 종류로 나눈 목록과는 다릅니다. 이 비유는 상처의 원인을 살피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상대의 출신을 알아야만 화살을 뽑겠다는 조건이 치료를 미루게 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묵상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궁금했던 적이 있나요? 그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과 지금 나를 돌보는 데 필요한 것은 어떻게 이어지나요? 둘을 함께 살피거나 순서를 달리할 여지도 있을까요?

“그 사람은 또 말한다. ‘나를 쏜 사람의 이름과 집안을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 또 말한다. ‘나를 쏜 사람의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쯤인지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 또 말한다. ‘나를 쏜 사람의 피부가 검은지, 갈색인지, 누런빛인지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 또 말한다. ‘나를 쏜 사람이 어느 마을이나 장터 마을, 큰 고장에 사는지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

so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imaṁ sallaṁ āharissāmi yāva na taṁ purisaṁ jānāmi yenamhi viddho, evaṁnāmo evaṅgotto iti vā’ti; so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imaṁ sallaṁ āharissāmi yāva na taṁ purisaṁ jānāmi yenamhi viddho, dīgho vā rasso vā majjhimo vā’ti; so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imaṁ sallaṁ āharissāmi yāva na taṁ purisaṁ jānāmi yenamhi viddho, kāḷo vā sāmo vā maṅguracchavī vā’ti; so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imaṁ sallaṁ āharissāmi yāva na taṁ purisaṁ jānāmi yenamhi viddho, amukasmiṁ gāme vā nigame vā nagare vā’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다친 사람이 알아내려는 것은 출신 집단에서 이름과 집안, 키, 피부빛, 사는 곳으로 늘어납니다. 목록이 바뀔 때마다 알기 전에는 화살을 뽑지 않겠다는 말이 되풀이됩니다. 같은 말을 거듭 듣다 보면 치료에 붙인 조건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물의 겉모습을 평가하려는 장면이 아닙니다. 세부를 아무리 많이 알아내도 그것으로 화살이 뽑히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어지는 무기와 재료를 묻는 장면에서도 똑같이 드러납니다.

묵상

무언가를 확인하다 보면 궁금한 것이 하나씩 더 생기기도 하나요? 그중 하나를 더 알아냈을 때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는지 살펴볼까요? 달라지지 않는다고 느끼더라도 호기심을 나무라기보다 다음 순서를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은 또 말한다. ‘나를 쏜 활이 짜빠 활인지 꼬단다 활인지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 또 말한다. ‘그 활시위를 아까 섬유, 삼 섬유, 힘줄, 마루와 섬유, 키라빤니 섬유 중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 또 말한다. ‘내게 박힌 화살대가 저절로 자란 나무로 만든 것인지, 심어 기른 나무로 만든 것인지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

so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imaṁ sallaṁ āharissāmi yāva na taṁ dhanuṁ jānāmi yenamhi viddho, yadi vā cāpo yadi vā kodaṇḍo’ti; so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imaṁ sallaṁ āharissāmi yāva na taṁ jiyaṁ jānāmi yāyamhi viddho, yadi vā akkassa yadi vā saṇhassa yadi vā nhārussa yadi vā maruvāya yadi vā khīrapaṇṇino’ti; so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imaṁ sallaṁ āharissāmi yāva na taṁ kaṇḍaṁ jānāmi yenamhi viddho, yadi vā gacchaṁ yadi vā ropiman’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화살을 쏜 사람에 관한 물음이 끝난 뒤, 이제 활과 활시위, 화살대를 따집니다. 활은 두 종류로, 시위 재료는 다섯 가지로, 화살대는 저절로 자랐는지 심어 길렀는지로 나뉩니다. 아까와 마루와, 키라빤니는 여기서 섬유를 얻는 식물의 이름입니다. 재료 이름을 모두 외우는 것이 비유의 중심은 아닙니다. 다친 사람이 세부를 하나씩 더 알아야만 화살을 뽑겠다고 말할수록 치료는 계속 미뤄집니다. 질문이 사람에게서 물건으로 옮겨 가도 같은 조건이 남아 있습니다.

묵상

문제를 풀 방법이나 도구를 알아보다 정작 해 보려던 일이 뒤로 밀린 적이 있나요? 그때 더 알아볼 필요가 있었던 것과 이미 충분했던 것을 나누어 볼까요? 작은 일 하나를 떠올리며 지금이라면 어느 지점에서 시작할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은 또 말한다. ‘내게 박힌 화살의 깃이 독수리, 왜가리, 매, 공작, 시틸라하누라는 새 중 어느 새의 것인지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 또 말한다. ‘화살대를 감은 힘줄이 소, 물소, 베라와, 셈하라 중 어느 짐승의 것인지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 또 말한다. ‘내게 박힌 화살촉이 뾰족한 것인지, 면도날처럼 생긴 것인지, 갈고리가 달린 것인지, 쇠로 된 것인지, 송아지 이처럼 생긴 것인지, 까라위라 잎처럼 생긴 것인지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 말룽꺄뿟따여, 그 사람은 끝내 그것들을 알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이다.”

so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imaṁ sallaṁ āharissāmi yāva na taṁ kaṇḍaṁ jānāmi yenamhi viddho, yassa pattehi vājitaṁ yadi vā gijjhassa yadi vā kaṅkassa yadi vā kulalassa yadi vā morassa yadi vā sithilahanuno’ti; so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imaṁ sallaṁ āharissāmi yāva na taṁ kaṇḍaṁ jānāmi yenamhi viddho, yassa nhārunā parikkhittaṁ yadi vā gavassa yadi vā mahiṁsassa yadi vā bheravassa yadi vā semhārassā’ti; so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imaṁ sallaṁ āharissāmi yāva na taṁ sallaṁ jānāmi yenamhi viddho, yadi vā sallaṁ yadi vā khurappaṁ yadi vā vekaṇḍaṁ yadi vā nārācaṁ yadi vā vacchadantaṁ yadi vā karavīrapattan’ti— aññātameva taṁ, mālukyaputta, tena purisena assa, atha so puriso kālaṁ kareyya.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독화살 비유의 마지막에는 새의 깃, 짐승의 힘줄, 화살촉까지 나옵니다. 각각 다섯 가지, 네 가지, 여섯 가지를 따지지만 화살은 아직 몸에 남아 있습니다. 까라위라는 끝의 화살촉 모양을 설명하는 데 쓰인 식물 이름입니다. 부처님은 질문을 모두 해결하기 전에 그 사람이 죽는다고 이야기를 맺습니다. 이어서 답을 받아야만 배우겠다는 말룽꺄뿟따의 조건으로 돌아갑니다.

묵상

여러 가지를 알아보는 동안 가장 먼저 돌봐야 할 일을 잠시 잊은 적이 있나요? 지금 떠오르는 작은 일에서 우선 돌아볼 것은 무엇일까요? 이미 지나간 선택을 나무라기보다, 오늘 할 수 있는 돌봄 하나가 있는지 살펴볼까요?

“말룽꺄뿟따여, 이와 마찬가지로 누군가 말한다고 하자. ‘부처님이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실 때까지는, 부처님께 배우며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지 않겠다.’ 말룽꺄뿟따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그 물음에 여전히 답하지 않을 것이고, 그 사람은 죽고 말 것이다.”

Evameva kho, mālukyaputta, yo evaṁ vadeyya: ‘na tāvāhaṁ bhagavati brahmacariyaṁ carissāmi yāva me bhagavā na byākarissa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ti— abyākatameva taṁ, mālukyaputta, tathāgatena assa, atha so puggalo kālaṁ kareyya.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화살 비유가 끝나자 부처님은 다시 말룽꺄뿟따가 내건 조건을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라는 연결은 화살을 뽑지 않겠다는 말과 답을 듣기 전에는 배우지 않겠다는 말을 나란히 놓습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무엇을 알아야만 다른 일을 시작하겠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죽음은 답변을 요구한 데 대한 벌이 아닙니다. 화살을 뽑지 못한 채 죽는다는 비유의 결론이, 답을 들어야만 배우겠다는 말룽꺄뿟따의 조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 뒤에는 어떤 생각을 택해도 괴로움을 다루는 일이 남는다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묵상

어떤 답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느낄 때 그 답은 내가 하려는 일과 어떻게 이어지나요? 지금 필요한 것을 알아내려는 물음인지, 안심할 때까지 기다리려는 마음인지 살펴볼까요?

4 견해가 달라도 남아 있는 괴로움 5구절

열 가지 견해의 어느 쪽을 택해도 태어남·늙음·죽음과 괴로움은 지금 남는다고 밝힙니다.

“말룽꺄뿟따여,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진다고 생각해야만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룽꺄뿟따여,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야만 그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룽꺄뿟따여,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진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든, 태어남은 있고 늙음은 있고 죽음은 있다. 슬픔과 울부짖음, 몸의 아픔과 마음의 괴로움, 애타는 고통도 있다. 나는 바로 이 삶에서 그 모두를 끝내는 일을 가르친다.”

‘Sassato loko’ti,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brahmacariyavāso abhavissāti, evaṁ no. ‘Asassato loko’ti,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brahmacariyavāso abhavissāti, evampi no. ‘Sassato loko’ti vā,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asassato loko’ti vā diṭṭhiyā sati attheva jāti, atthi jarā, atthi maraṇaṁ, s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yesāhaṁ diṭṭheva dhamme nighātaṁ paññapem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독화살 비유 뒤에서 부처님은 말룽꺄뿟따가 처음 내놓았던 생각들을 차례로 살핍니다.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진다는 쪽도 그렇지 않다는 쪽도 길을 닦기 위해 반드시 택해야 하는 답은 아닙니다. 어느 생각을 받아들여도 태어나 늙고 죽는 일과 여러 괴로움이 남습니다. 부처님은 더 옳은 세계관을 고르는 일보다, 바로 이 삶에서 그 괴로움들을 끝내는 일을 가르친다고 밝힙니다.

묵상

어떤 설명이 옳은지 생각하다가 지금 불편한 마음을 돌보는 일을 잊은 적이 있나요? 그 설명을 버릴 필요 없이 함께 할 수 있는 돌봄도 있을까요? 작은 경험 하나에서 생각을 정하는 일과 나를 돌보는 일을 나누어 살펴볼까요?

“말룽꺄뿟따여, 세상에 끝이 있다고 생각해야만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룽꺄뿟따여, 세상에 끝이 없다고 생각해야만 그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룽꺄뿟따여, 세상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든 없다고 생각하든, 태어남은 있고 늙음은 있고 죽음은 있다. 슬픔과 울부짖음, 몸의 아픔과 마음의 괴로움, 애타는 고통도 있다. 나는 바로 이 삶에서 그 모두를 끝내는 일을 가르친다.”

‘Antavā loko’ti,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brahmacariyavāso abhavissāti, evaṁ no. ‘Anantavā loko’ti,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brahmacariyavāso abhavissāti, evampi no. ‘Antavā loko’ti vā,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anantavā loko’ti vā diṭṭhiyā sati attheva jāti, atthi jarā, atthi maraṇaṁ, s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yesāhaṁ diṭṭheva dhamme nighātaṁ paññapem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앞의 설명이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세상에 끝이 있는지를 다룹니다. 질문의 대상은 달라져도 같은 기준이 적용됩니다. 끝이 있다고 믿어야만 길을 닦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다고 믿어야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어느 쪽에서든 태어남과 늙음, 죽음, 여러 괴로움은 남습니다. 부처님은 그 가운데 어느 세계상을 정해 주기보다 지금 삶의 괴로움을 끝내는 일을 가리킵니다.

묵상

아직 알 수 없는 큰 문제를 생각하는 동안 오늘의 작은 불편을 놓친 적이 있나요? 지금 눈앞에서 확인하거나 돌볼 수 있는 일 하나가 있을까요? 큰 물음은 남겨 둔 채 그 작은 일에도 마음을 나누어 줄 수 있을지 살펴볼까요?

“말룽꺄뿟따여, 생명의 바탕(지와)과 몸이 같다고 생각해야만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룽꺄뿟따여, 생명의 바탕과 몸이 다르다고 생각해야만 그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룽꺄뿟따여, 생명의 바탕과 몸이 같다고 생각하든 다르다고 생각하든, 태어남은 있고 늙음은 있고 죽음은 있다. 슬픔과 울부짖음, 몸의 아픔과 마음의 괴로움, 애타는 고통도 있다. 나는 바로 이 삶에서 그 모두를 끝내는 일을 가르친다.”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brahmacariyavāso abhavissāti, evaṁ no.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brahmacariyavāso abhavissāti, evampi no.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 vā,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 vā diṭṭhiyā sati attheva jāti …pe… nighātaṁ paññapem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몸과 생명의 바탕을 같은 것으로 볼지 다른 것으로 볼지도 길을 닦는 데 먼저 정해야 할 답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둘이 실제로 같다는 답도 다르다는 답도 아닙니다. 어느 생각을 갖더라도 괴로움을 살피고 끝내는 일은 남습니다. 앞에서 세상의 지속과 경계를 두고 한 설명이 여기서 같은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지와의 자리를 몸 안이라고 정하거나 그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이 아닙니다.

묵상

나를 어떻게 설명할지 아직 정하지 못해도 지금 몸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있나요? 편안하거나 불편한 감촉 하나를 느껴 볼 수 있을까요? 그 감촉에 대해 큰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잠시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까요?

“말룽꺄뿟따여,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가 죽은 뒤에도 있다고 생각해야만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룽꺄뿟따여, 죽은 뒤에는 없다고 생각해야만 그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룽꺄뿟따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죽은 뒤에도 있다고 생각하든 없다고 생각하든, 태어남은 있고 늙음은 있고 죽음은 있다. 슬픔과 울부짖음, 몸의 아픔과 마음의 괴로움, 애타는 고통도 있다. 나는 바로 이 삶에서 그 모두를 끝내는 일을 가르친다.”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brahmacariyavāso abhavissāti, evaṁ no.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brahmacariyavāso abhavissāti, evampi no.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diṭṭhiyā sati attheva jāti …pe… yesāhaṁ diṭṭheva dhamme nighātaṁ paññapem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깨달은 이가 죽은 뒤에도 있다는 생각과 없다는 생각을 같은 기준으로 살핍니다. 부처님은 어느 쪽을 믿어야만 배움이 가능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여기서 죽은 뒤의 상태를 새로운 답으로 확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물음에 어떤 답을 정해 놓아도 현재의 삶에 괴로움이 있다는 점을 짚습니다. 앞에서 말룽꺄뿟따는 답을 먼저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이 설명은 괴로움을 다루는 길이 그 답을 기다려야만 시작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줍니다.

묵상

확실한 답을 알 수 없는 일이 있을 때도 오늘 누군가에게 건넬 말이나 받을 도움은 남아 있나요? 마음에 닿는 작은 일 하나를 떠올려 볼까요?

“말룽꺄뿟따여,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생각해야만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룽꺄뿟따여,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만 그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룽꺄뿟따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죽은 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생각하든,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태어남은 있고 늙음은 있고 죽음은 있다. 슬픔과 울부짖음, 몸의 아픔과 마음의 괴로움, 애타는 고통도 있다. 나는 바로 이 삶에서 그 모두를 끝내는 일을 가르친다.”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brahmacariyavāso abhavissāti, evaṁ no.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brahmacariyavāso abhavissāti, evampi no.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ālukyaputta, diṭṭhiyā sati,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diṭṭhiyā sati attheva jāti …pe… yesāhaṁ diṭṭheva dhamme nighātaṁ paññapem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마지막에는 있다와 없다를 함께 말하는 생각, 두 말 모두 적용할 수 없다고 보는 생각을 다룹니다. 앞에서 나온 열 가지 생각을 끝까지 같은 기준으로 살피는 대목입니다. 더 복잡한 답을 내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길을 닦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설명은 네 번째 생각을 정답으로 택하는 말도 아닙니다. 어느 생각을 택해도 삶의 괴로움을 끝내야 할 일은 남습니다. 이어지는 마무리에서는 부처님이 답한 것과 답하지 않은 것을 구별합니다.

묵상

설명이 더 복잡해지면 그만큼 잘 이해했다고 느끼기도 하나요? 최근에 들은 말 하나에서 내가 실제로 알아들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설명을 평가하기보다 그 말이 지금의 선택을 어떻게 돕는지 하나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5 말하지 않은 것과 말한 것 5구절

도움이 되지 않아 답하지 않은 견해와 고요히 꺼짐으로 이끌기에 분명히 말한 네 진리를 구별합니다.

“그러므로 말룽꺄뿟따여, 내가 답하지 않은 것은 답하지 않은 것으로, 답한 것은 답한 것으로 기억해라. 말룽꺄뿟따여, 내가 답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말룽꺄뿟따여, 나는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진다고 답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이어지지 않는다고도 답하지 않았다. 세상에 끝이 있다고 답하지 않았다. 끝이 없다고도 답하지 않았다. 생명의 바탕(지와)과 몸이 같다고 답하지 않았다. 서로 다르다고도 답하지 않았다.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에도 있다고 답하지 않았다. 없다고도 답하지 않았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답하지 않았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고 답하지 않았다.”

Tasmātiha, mālukyaputta, abyākatañca me abyākatato dhāretha; byākatañca me byākatato dhāretha. Kiñca, mālukyaputta, mayā abyākataṁ? ‘Sassato loko’ti mālukyaputta, mayā abyākataṁ; ‘asassato loko’ti— mayā abyākataṁ; ‘antavā loko’ti— mayā abyākataṁ; ‘anantavā loko’ti— mayā abyākataṁ;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 mayā abyākataṁ;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 mayā abyākataṁ;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ayā abyākataṁ;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ayā abyākataṁ;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ayā abyākataṁ;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ayā abyākataṁ.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부처님은 자신이 답한 것과 답하지 않은 것을 구별해서 기억하라고 당부합니다. 이어서 답하지 않은 생각을 하나씩 다시 말합니다. 세상에 관한 네 가지, 생명의 바탕과 몸에 관한 두 가지, 깨달은 이의 죽음 뒤에 관한 네 가지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답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 반대가 옳다고 답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반복은 침묵을 어느 한쪽의 주장으로 바꾸어 받아들이지 않게 합니다. 뒤에서는 왜 이 물음들에 답하지 않았는지 밝히고, 실제로 무엇을 설명했는지 제시합니다.

묵상

누군가 답하지 않은 말을 내가 어느 한쪽의 뜻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나요? 가벼운 대화 하나에서 실제로 들은 답과 내가 덧붙인 뜻을 나누어 볼까요? 아직 알 수 없는 부분을 억지로 채우지 않고 남겨 둘 여지도 있을까요?

“말룽꺄뿟따여, 왜 나는 그것들에 답하지 않았는가? 말룽꺄뿟따여, 그것들은 이로움이 없고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의 바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끌리던 것에서 마음이 돌아서게 하지도, 탐내는 마음이 가라앉게 하지도, 괴로움이 멎게 하지도 않는다. 마음이 고요해지도록, 몸소 분명히 알도록, 온전히 깨어나도록,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이르도록 이끌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에 답하지 않았다.”

Kasmā cetaṁ, mālukyaputta, mayā abyākataṁ? Na hetaṁ, mālukyaputta, atthasaṁhitaṁ na ādibrahmacariyakaṁ na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ṁvattati. Tasmā taṁ mayā abyākataṁ.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열 가지 물음에 답하지 않은 까닭을 부처님이 직접 밝힙니다. 기준은 그 답이 괴로움을 끝내는 삶에 도움이 되느냐입니다. 끌리던 것에서 마음이 돌아서는 일부터 고요와 앎, 깨어남에 이르기까지 가르침이 향하는 바가 차례로 나옵니다. 어떤 학문적 질문도 할 필요가 없다는 일반적인 주장으로 넓힐 대목은 아닙니다. 앞에서 다룬 물음과 길을 닦는 일의 관계를 설명하며, 뒤에서는 같은 기준으로 실제 가르친 내용을 밝힙니다.

묵상

지금 붙잡고 있는 물음 하나를 떠올리면 그 답이 내게 무엇을 도와주기를 바라나요? 안심이나 이해처럼 여러 바람이 함께 있을 수도 있어요. 그중 하나를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왜 그 물음이 중요한지 조금 더 보일까요?

“말룽꺄뿟따여, 내가 답한 것은 무엇인가? 말룽꺄뿟따여, 나는 ‘이것이 괴로움(둑카)이다’라고 밝혔다. ‘이것이 괴로움이 생겨나는 까닭이다’라고 밝혔다. ‘이것이 괴로움의 끝이다’라고 밝혔다. ‘이것이 괴로움을 끝내는 길이다’라고 밝혔다.”

Kiñca, mālukyaputta, mayā byākataṁ? ‘Idaṁ dukkhan’ti, mālukyaputta, mayā byākataṁ; ‘ayaṁ dukkhasamudayo’ti— mayā byākataṁ; ‘ayaṁ dukkhanirodho’ti— mayā byākataṁ;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mayā byākataṁ.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답하지 않은 열 가지 생각 뒤에, 부처님이 실제로 밝힌 네 가지가 나옵니다. 괴로움, 그것이 생겨나는 까닭, 그 끝, 끝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어떻게 생겨나고 끝날 수 있는지까지 함께 보여 줍니다. 각각을 밝혔다고 거듭 말하는 점도 앞의 답하지 않았다는 반복과 짝을 이룹니다. 부처님의 침묵만 따로 떼어 이해하지 않도록, 무엇을 가르치는지가 이 짧은 대목에서 분명해집니다. 다음에는 이 네 가지를 밝힌 까닭이 이어집니다.

묵상

작은 불편 하나를 떠올리면 그것이 있을 때와 조금 덜할 때의 차이가 느껴지나요? 최근의 한 장면에서 불편을 더하거나 덜어 준 것이 있었는지 천천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말룽꺄뿟따여, 왜 나는 이것들을 밝혔는가? 말룽꺄뿟따여, 이것들은 이롭고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끌리던 것에서 마음이 돌아서게 하고, 탐내는 마음이 가라앉게 하며, 괴로움이 멎게 한다. 마음이 고요해지도록, 몸소 분명히 알도록, 온전히 깨어나도록,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이르도록 이끈다. 그래서 나는 이것들을 밝혔다. 그러므로 말룽꺄뿟따여, 내가 답하지 않은 것은 답하지 않은 것으로, 답한 것은 답한 것으로 기억해라.”

Kasmā cetaṁ, mālukyaputta, mayā byākataṁ? Etañhi, mālukyaputta, atthasaṁhitaṁ etaṁ ādibrahmacariyakaṁ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ṁvattati. Tasmā taṁ mayā byākataṁ. Tasmātiha, mālukyaputta, abyākatañca me abyākatato dhāretha; byākatañca me byākatato dhārethā”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괴로움과 그 까닭, 끝과 길을 밝힌 이유를 설명하며 문답을 마무리합니다. 앞서 열 가지 물음에 답하지 않은 이유와 같은 기준이 이번에는 긍정하는 말로 나타납니다. 마음의 끌림과 탐내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괴로움이 멎고, 고요와 앎으로 나아가도록 돕는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마지막 당부는 두 가지입니다. 부처님이 답하지 않은 것을 대신 채워 넣지 말고, 실제로 밝힌 가르침은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묵상

내가 알고 있는 설명 가운데 실제로 말이나 선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 것이 있나요? 최근의 작은 일 하나에서 그 도움을 떠올려 볼까요?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룽꺄뿟따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셨다.

Idamavoca bhagavā. Attamano āyasmā mālukyaputt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ī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경은 부처님의 말씀과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인 말룽꺄뿟따의 반응으로 끝납니다. 처음에는 답을 듣지 못한 불만 때문에 배움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지만, 마지막에는 가르침을 반기는 모습이 기록됩니다. 독화살 비유와 이어진 구별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 주는 끝맺음입니다. 경을 읽는 이에게도 열 가지 질문의 답을 새로 만들어 주기보다, 가르침이 향하는 바를 다시 보게 합니다.

묵상

내가 바라던 답과는 다른 말을 듣고도 도움이 되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그때 무엇이 마음에 남았는지 가볍게 떠올려 볼까요? 상대의 말에 모두 동의하지 않더라도 새롭게 생각하게 된 부분 하나는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