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룽꺄뿟따가 답을 받지 못한 열 가지 견해를 떠올리고 수행을 계속할 조건으로 내겁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무셨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이 경은 부처님이 머물던 곳을 밝히며 시작합니다. 제따 숲은 장소이고 아나타삔디까는 동산의 이름에 들어 있는 사람 이름입니다. 곧이어 말룽꺄뿟따가 홀로 지내다가 품은 생각이 나오며, 그 생각은 부처님과의 문답으로 이어집니다. 처음의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말은 이야기를 전하는 이의 목소리입니다. 부처님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대목과는 구별됩니다. 짧은 장소 설명은 뒤의 질문과 독화살 비유가 누구 사이에서 오가는지를 알려 주는 시작입니다.
묵상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 말이 나온 자리와 상황을 알면 다르게 들리기도 하나요? 최근에 들은 말 하나를 떠올려 볼까요? 그 배경을 알기 전과 알고 난 뒤에 달라진 느낌이 있었는지 가볍게 살펴봐도 좋겠어요.
“말룽꺄뿟따께서는 홀로 조용히 머물다가 이런 생각을 하셨다.
‘부처님은 여러 생각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고 제쳐 두며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진다거나 그렇지 않다는 생각, 세상에는 끝이 있다거나 없다는 생각, 생명의 바탕(지와)과 몸은 같다거나 다르다는 생각이다. 또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에도 있다거나 없다는 생각,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거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부처님은 내게 이것들을 설명하지 않으신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부처님께 가서 이 일을 여쭈어야겠다.’”
Atha kho āyasmato mālukyaputtassa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ṁ cetaso parivitakko udapādi: “yānimāni diṭṭhigatāni bhagavatā abyākatāni ṭhapitāni paṭikkhittāni: ‘sassato loko’tipi, ‘asassato loko’tipi, ‘antavā loko’tipi, ‘anantavā loko’tipi,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pi,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pi,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pi,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pi,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pi,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pi— tāni me bhagavā na byākaroti. Yāni me bhagavā na byākaroti taṁ me na ruccati, taṁ me nakkhamati. Sohaṁ bhagavantaṁ upasaṅkamitvā etamatthaṁ pucchissām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말룽꺄뿟따가 홀로 지내며 품은 불만입니다.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공간의 끝이 있는지, 생명의 바탕과 몸이 같은지, 깨달은 이가 죽은 뒤 어떻게 되는지를 묻습니다. 마지막 물음에는 있다와 없다뿐 아니라 둘 다인 경우와 둘 다 아닌 경우까지 들어 있어 모두 열 가지 생각이 됩니다. 지와는 여기서 몸과 같은지 다른지를 논하던 생명의 바탕을 가리키며, 경이 그 존재를 확정한 말은 아닙니다. 말룽꺄뿟따는 답이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직접 물으러 가기로 합니다.
묵상
여러 물음 가운데 유독 마음에 남는 것이 있나요? 그 물음에서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답을 듣지 못할 때 어떤 느낌이 생기는지 하나만 천천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부처님이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신다면, 나는 부처님께 배우며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겠다.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 깨달음에 이른 이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시지 않는다면, 배움을 그만두고 지금보다 못한 삶으로 돌아가겠다.”
Sace me bhagavā byākarissa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evāhaṁ bhagavati brahmacariyaṁ carissāmi; no ce me bhagavā byākarissa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evāhaṁ sikkhaṁ paccakkhāya hīnāyāvatti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말룽꺄뿟따의 생각은 이제 배움을 계속할지 그만둘지를 정하는 조건으로 이어집니다. 답을 받으면 부처님께 배우며 살고, 받지 못하면 배움을 그만두겠다는 것입니다. 맑고 바른 삶은 이 문맥에서 집을 떠나 욕망을 절제하며 길을 닦는 삶을 가리킵니다. ‘지금보다 못한 삶’이라는 말은 집으로 돌아가는 삶을 낮추어 부르던 당시의 표현으로, 말룽꺄뿟따의 생각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 집에서 사는 독자의 삶을 평가하는 말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묵상
무언가를 계속할지 말지 생각할 때 내 마음속에 어떤 조건이 붙어 있나요? 그 조건이 처음부터 있었는지 지내는 동안 새로 생겼는지 떠올려 볼까요?
저녁 무렵, 말룽꺄뿟따께서는 홀로 머물던 곳에서 나와 부처님을 찾아가셨다. 인사를 올리고 한쪽에 앉으셨다. 한쪽에 앉은 말룽꺄뿟따께서는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셨다.
“부처님, 저는 홀로 조용히 머물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여러 생각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고 제쳐 두며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진다거나 그렇지 않다는 생각, …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부처님은 내게 이것들을 설명하지 않으신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부처님께 가서 이 일을 여쭈어야겠다.
부처님이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 깨달음에 이른 이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신다면, 나는 부처님께 배우며 맑고 바른 삶(브라흐마짜리야)을 살겠다.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 아닌지, … 깨달음에 이른 이는 죽은 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시지 않는다면, 배움을 그만두고 지금보다 못한 삶으로 돌아가겠다.’”
Atha kho āyasmā mālukyaputto sāyanhasamayaṁ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mālukya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Idha mayhaṁ, bhante,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ṁ cetaso parivitakko udapādi— yānimāni diṭṭhigatāni bhagavatā abyākatāni ṭhapitāni paṭikkhittāni: ‘sassato loko’tipi, ‘asassato loko’tipi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pi— tāni me bhagavā na byākaroti. Yāni me bhagavā na byākaroti taṁ me na ruccati, taṁ me nakkhamati. Sohaṁ bhagavantaṁ upasaṅkamitvā etamatthaṁ pucchissāmi. Sace me bhagavā byākarissa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evāhaṁ bhagavati, brahmacariyaṁ carissāmi. No ce me bhagavā byākarissa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evāhaṁ sikkhaṁ paccakkhāya hīnāyāvatti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말룽꺄뿟따는 저녁에 부처님을 찾아가 홀로 있을 때의 생각을 전합니다. 답이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불만과, 답을 받아야 배움을 계속하겠다는 조건을 함께 밝힙니다. 부처님을 찾아가 묻겠다는 말도 이미 지나간 속생각을 전하는 부분입니다. 그 구별을 알면 눈앞의 상대에게 다시 찾아가겠다고 말하는 듯한 어색함이 풀립니다. 뒤의 대화에서는 그가 원한 답보다 먼저, 처음부터 그런 조건으로 배움을 약속했는지가 다루어집니다.
묵상
마음속에서 여러 번 되풀이한 말을 상대에게 직접 전해 본 적이 있나요? 입 밖에 내고 나서 내가 바란 것이 좀 더 분명해지기도 했나요? 떠오르는 가벼운 대화 하나에서 그때의 부탁과 내 기대를 나누어 살펴볼까요?
“부처님께서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진다고 아신다면, 제게 언제까지나 이어진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까지나 이어지지 않는다고 아신다면, 그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 쪽인지 알지도 보지도 못하신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한 태도입니다.”
Sace bhagavā jānāti: ‘sassato loko’ti, ‘sassato loko’ti me bhagavā byākarotu; sace bhagavā jānāti: ‘asassato loko’ti, ‘asassato loko’ti me bhagavā byākarotu. No ce bhagavā jānāti: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ajānato kho pana apassato etadeva ujukaṁ hoti yadidaṁ: ‘na jānāmi, na pa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말룽꺄뿟따는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를 두 갈래로 나누어 묻습니다. 어느 쪽인지 안다면 그대로 말하고, 알지 못한다면 모른다고 밝혀 달라는 요구입니다. 그는 답하지 않는 까닭을 앎이 있는지 없는지로 판단하려 합니다. 그러나 뒤에서 부처님은 어떤 답이 괴로움을 끝내는 길에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대목은 말룽꺄뿟따의 요구이며, 부처님이 알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질문에 답하는 기준이 둘 사이에서 어떻게 다른지 보여 줍니다.
묵상
상대가 바로 답하지 않을 때 나는 그 까닭을 어떻게 짐작하나요?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말할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떠올려 볼까요? 최근의 가벼운 대화에서 내 짐작과 실제로 들은 말을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세상이 유한한지 무한한지 아신다면 답해 주십시오.
모르고 보지 못하신다면 ‘나는 모른다,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한 태도입니다.”
Sace bhagavā jānāti: ‘antavā loko’ti, ‘anantavā loko’ti me bhagavā byākarotu; sace bhagavā jānāti: ‘anantavā loko’ti, ‘anantavā loko’ti me bhagavā byākarotu. No ce bhagavā jānāti: ‘antavā loko’ti vā, ‘anantavā loko’ti vā, ajānato kho pana apassato etadeva ujukaṁ hoti yadidaṁ: ‘na jānāmi, na pa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앞에서는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지를 물었고, 여기서는 세상에 끝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습니다. 말룽꺄뿟따는 이 경우에도 아는 것을 말하거나 모른다고 밝혀 달라고 요구합니다. 두 물음은 비슷해 보여도 하나는 시간의 지속을, 다른 하나는 세상의 경계를 다룹니다. 이 요구에 대해 뒤의 문답은 답을 얻는 것이 길을 닦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지 살핍니다. 이곳은 질문자의 요구를 듣는 자리이며, 부처님이 세상의 경계에 대해 내린 결론으로 읽지 않습니다.
묵상
서로 반대되는 두 답 가운데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최근의 작은 일에서 그랬던 순간을 떠올려 볼까요?
“부처님께서 생명의 바탕(지와)과 몸이 같다고 아신다면, 제게 같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서로 다르다고 아신다면, 다르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 쪽인지 알지도 보지도 못하신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한 태도입니다.”
Sace bhagavā jānāti: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 me bhagavā byākarotu; sace bhagavā jānāti: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 me bhagavā byākarotu. No ce bhagavā jānāti: ‘taṁ jīvaṁ taṁ sarīran’ti vā,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n’ti vā, ajānato kho pana apassato etadeva ujukaṁ hoti yadidaṁ: ‘na jānāmi, na pa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이번에는 살아 있게 하는 바탕과 몸이 같은지 다른지를 묻습니다. 지와는 이 논의에서 그 바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몸 안에 무엇이 따로 들어 있다고 미리 정한 표현은 아닙니다. 말룽꺄뿟따는 같음과 다름 중 아는 쪽을 밝혀 달라고 하며,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는 조건도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부처님은 뒤에서 이 두 생각 가운데 하나를 정해야만 길을 닦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질문의 대상과 배움을 시작하는 조건을 구별하며 읽을 대목입니다.
묵상
몸과 나의 관계를 생각할 때 지금 몸에서 바로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요? 깊은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손의 온기나 앉아 있는 감촉처럼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나요?
“부처님께서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가 죽은 뒤에도 있다고 아신다면, 제게 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죽은 뒤에는 없다고 아신다면, 없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 쪽인지 알지도 보지도 못하신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한 태도입니다.”
Sace bhagavā jānāti: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e bhagavā byākarotu; sace bhagavā jānāti: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e bhagavā byākarotu. No ce bhagavā jānāti: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ajānato kho pana apassato etadeva ujukaṁ hoti yadidaṁ: ‘na jānāmi na pa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말룽꺄뿟따는 이제 깨달음에 이른 이가 죽은 뒤에도 있는지를 묻습니다. 따타가따는 여기서 그 대상을 가리키는 호칭입니다. 있다와 없다라는 두 답 가운데 어느 쪽을 아는지 밝히라는 요구가 이어집니다. 이 물음은 깨달음에 이른 이 한 사람에게만 묻는 좁은 질문입니다. 뒤의 설명에서는 어느 생각을 택하든 지금의 태어남과 늙음, 죽음, 괴로움이 저절로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아직 부처님이 답을 내리는 대목은 아닙니다.
묵상
죽음 뒤의 일에 관한 말을 들을 때 나는 그 말에서 무엇을 알고 싶어 하나요? 지금 답을 정하기보다 그 물음이 내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만 살펴볼까요? 아직 답을 알지 못해도, 오늘 돌보고 싶은 사람이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부처님께서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죽은 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아신다면, 제게 그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고 아신다면, 그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지 알지도 보지도 못하신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한 태도입니다.”
Sace bhagavā jānāti: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e bhagavā byākarotu; sace bhagavā jānāti: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me bhagavā byākarotu. No ce bhagavā jānāti: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vā, ajānato kho pana apassato etadeva ujukaṁ hoti yadidaṁ: ‘na jānāmi, na pa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63 쭐라말루꺄 숫따 (말루꺄와 나눈 짧은 이야기 - 독화살의 비유)
배경
앞에서는 죽은 뒤 있다와 없다를 따로 물었습니다. 이제 둘 다인 경우와 둘 다 아닌 경우가 더해집니다. 말룽꺄뿟따는 말로 세울 수 있는 네 갈래를 모두 내놓고, 어느 쪽을 아는지 밝혀 달라고 합니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말은 여기서 네 번째로 제시한 생각이며, 부처님이 내린 답이 아닙니다. 앎을 밝히거나 모름을 인정하라는 같은 요구가 마지막까지 이어집니다. 그 뒤에 부처님은 답을 대가로 배우기로 한 약속이 있었는지를 되묻습니다.
묵상
어떤 일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설명해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그때 더 많은 경우를 세는 일과 실제로 본 것을 확인하는 일은 어떻게 달랐나요? 가벼운 경험 하나에서 그 차이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