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차여,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물질로 헤아려지는 것에서 벗어나
깊고 헤아릴 수 없고 측량하기 어려우니,
마치 큰 바다와 같다.
‘태어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는다.
Rūpasaṅkhayavimutto kho, vaccha, tathāgato gambhīro appameyyo duppariyogāḷho-seyyathāpi mahāsamuddo. Upapajjatīti na upeti, na upapajjatīti na upeti, upapajjati ca na ca upapajjatīti na upeti, neva upapajjati na na upapajjatīti na upeti.
맛지마 니까야 MN 72 악기왓차 숫따 (왓차와 불)
배경
왓차곳따라는 유행 수행자가 붓다에게 “그렇게 마음이 풀려난 수행자는 어디에 태어납니까?”라고 묻습니다. 붓다는 네 가지 가능성을 모두 물리치십니다. 태어난다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며, 둘 다인 것도 아니고, 둘 다 아닌 것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고요히 꺼짐(닙바나)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틀 자체를 벗어납니다. 마치 색맹인 사람에게 빨간색을 설명할 수 없듯, 조건 지어진 마음으로 조건 지어지지 않은 것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묵상
“이해해야 믿겠다”는 태도가 있나요? 이 가르침은 일부러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겨 둔 것일 수 있어요.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더 가까운 길일 수 있어요. 모든 것을 머리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아 볼 수 있나요?
왓짜곳따여, 불이 그대 앞에서 타오르고 있을 때,
그대는 ‘이 불이 타오르고 있다’고 알 수 있겠는가?
그 불이 꺼지면,
그대는 ‘이 불이 꺼졌다’고 알 수 있겠는가?
꺼진 불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가,
동쪽인가? 서쪽인가? 남쪽인가? 북쪽인가?
Sace te purato aggi jaleyya, jāneyyāsi tvaṁ: 'ayaṁ me purato aggi jalatī'ti?… Sace te, vaccha, purato so aggi nibbāyeyya, jāneyyāsi tvaṁ: 'ayaṁ me purato aggi nibbuto'ti?… 'yo te ayaṁ purato aggi nibbuto so aggi ito katamaṁ disaṁ gato— puratthimaṁ vā dakkhiṇaṁ vā pacchimaṁ vā uttaraṁ vā'ti.
맛지마 니까야 MN 72 악기왓차 숫따 (왓차와 불)
배경
붓다의 가장 유명한 비유 중 하나입니다. 꺼진 불이 어디로 갔는가? 이 질문 자체가 부적절합니다. 불은 “가지” 않았습니다. 조건(연료, 산소)이 있을 때 타오르고, 조건이 사라지면 꺼질 뿐입니다. “어디로 갔는가”라는 질문은 불에 “존재”를 부여하는 것이어서 맞지 않습니다. 고요히 꺼짐(닙바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연료가 있을 때 존재의 불이 타오르고, 연료가 소진되면 꺼집니다. “어디로 갔는가”는 묻을 수 없습니다. 깊고, 헤아릴 수 없고, 큰 바다와 같을 뿐입니다.
묵상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내려놓을 수 있나요? 꺼진 불은 어디로 가지 않습니다. 다만 꺼졌을 뿐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 하지 말고, 지금 타오르고 있는 불,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을 끄는 데 집중해 보세요. 나머지는 저절로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