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라 숫따(집)

Agārasutta

상윳따 니까야 SN 36.14

서로 다른 손님이 여관에 머물듯, 세 가지 느낌이 각각 세속에 물들거나 벗어난 채 몸에 생겨남을 설한다.

인용된 가르침 2구절

이 경을 2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사방과 네 신분의 손님 1구절

동서남북과 서로 다른 네 신분에서 온 손님이 한 여관에 머무는 비유입니다.

“수행자들이여, 이를테면 손님들이 머무는 여관이 있다. 그곳에는 동쪽에서 온 이도 머물고, 서쪽·북쪽·남쪽에서 온 이들도 머문다. 왕족도 와서 머물고,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도 와서 머물며, 평민도 와서 머물고, 천민도 와서 머문다.”

“Seyyathāpi, bhikkhave, āgantukāgāraṁ. Tattha puratthimāyapi disāya āgantvā vāsaṁ kappenti, pacchimāyapi disāya āgantvā vāsaṁ kappenti, uttarāyapi disāya āgantvā vāsaṁ kappenti, dakkhiṇāyapi disāya āgantvā vāsaṁ kappenti. Khattiyāpi āgantvā vāsaṁ kappenti, brāhmaṇāpi āgantvā vāsaṁ kappenti, vessāpi āgantvā vāsaṁ kappenti, suddāpi āgantvā vāsaṁ kappenti.

상윳따 니까야 SN 36.14 아가라 숫따 (집)

배경

이 짧은 경은 설명 없이 곧바로 여관의 장면을 세웁니다. 동·서·북·남이라는 네 방향과 왕족·브라흐마나·평민·천민이라는 네 신분을 빠짐없이 들고, 모두가 와서 머문다는 같은 동사를 반복합니다. 원문에는 여관 주인, 좋은 손님과 나쁜 손님, 손님을 내보내는 장면이 없습니다. 이 비유는 서로 다른 곳과 신분에서 온 사람들이 한 여관에 머문다는 것까지만 보여 줍니다. 다음 대목은 이 여러 손님을 몸에 생겨나는 여러 느낌에 빗댑니다. 수행적으로는 서로 다른 느낌을 한 덩어리의 기분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각각 알아볼 준비가 됩니다.

묵상

동서남북과 네 신분의 손님이 한 여관에 머무는 장면에서 “서로 다름”은 어떻게 드러나나요? 이 넓은 손님 목록이 이어지는 경문의 여러 느낌을 준비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비유가 어떻게 달리 읽히나요?

2 몸에 생겨나는 여러 느낌 1구절

즐거움·괴로움·중성의 세 느낌을 세속에 물든 것과 벗어난 것으로 다시 구별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수행자들이여, 이 몸에는 여러 느낌이 생겨난다.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생겨난다. 세속에 물든 즐거운 느낌과 세속에 물든 괴로운 느낌, 세속에 물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생겨난다. 세속을 벗어난 즐거운 느낌과 세속을 벗어난 괴로운 느낌, 세속을 벗어난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생겨난다.”

Evameva kho, bhikkhave, imasmiṁ kāyasmiṁ vividhā vedanā uppajjanti. Sukhāpi vedanā uppajjati, dukkhāpi vedanā uppajjati, adukkhamasukhāpi vedanā uppajjati. Sāmisāpi sukhā vedanā uppajjati, sāmisāpi dukkhā vedanā uppajjati, sāmisāpi adukkhamasukhā vedanā uppajjati. Nirāmisāpi sukhā vedanā uppajjati, nirāmisāpi dukkhā vedanā uppajjati, nirāmisāpi adukkhamasukhā vedanā uppajjatī”ti.

상윳따 니까야 SN 36.14 아가라 숫따 (집)

배경

앞서 본 여관 비유를 “그와 마찬가지로” 받아, 이번에는 비유가 가리키는 대상을 분명히 밝힙니다. 서로 다른 손님이 한 여관에 머물듯 이 몸에는 즐거운·괴로운·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세 느낌이 생겨납니다. 이어 이 셋을 다시 세속에 물든(사미사) 것과 세속을 벗어난(니라미사) 것으로 나눕니다. 따라서 이는 세 기본 느낌마다 두 방향이 있음을 보이는 짜임입니다. 원문은 어느 느낌을 억누르거나 여관 주인처럼 내보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수행의 초점은 생겨난 느낌의 성질과 방향을 섞지 않고 알아보는 데 있습니다.

묵상

같은 즐거운 느낌도 세속에 물든 것과 세속을 벗어난 것으로 나뉜다는 목록은 어떻게 들리나요? 괴로운 느낌과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도 같은 구분이 붙는다는 점에서 새롭게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