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빠와나 숫따(시사빠 숲)

Sīsapāvanasutta

상윳따 니까야 SN 56.31

인용된 가르침 4구절

이 경을 2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말하지 않은 것이 더 많다 2구절

부처님이 아신 것 전부가 아니라, 풀려남으로 이끄는 것만을 설하신 이유

한때 부처님께서 꼬삼비의 심사빠 숲에 머무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으로 심사빠 잎 몇 장을 쥐시고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쪽이 더 많은가. 내가 손에 쥔 이 몇 장의 심사빠 잎인가, 저 위 심사빠 숲의 잎인가?”

Ekaṁ samayaṁ bhagavā kosambiyaṁ viharati sīsapāvane. Atha kho bhagavā parittāni sīsapāpaṇṇāni pāṇinā gahetvā bhikkhū āmantesi: “Taṁ kiṁ maññatha, bhikkhave, katamaṁ nu kho bahutaraṁ— yāni vā mayā parittāni sīsapāpaṇṇāni pāṇinā gahitāni yadidaṁ upari sīsapāvane”ti?

상윳따 니까야 SN 56.31 시사빠와나 숫따 (시사빠 숲)

배경

심사빠 숲경 전체를 여는 장면입니다. 부처님은 꼬삼비의 심사빠 숲에서 손에 쥔 나뭇잎 몇 장과 머리 위 숲 전체의 나뭇잎을 나란히 들어, 수행자들에게 직접 눈으로 견주어 보게 하십니다. 이 질문은 뒤에 이어지는 “내가 아는 것과 설한 것의 크기 차이”를 보여 주기 위한 비유이며, 여기서는 아직 답이 나오지 않은 채 물음만 던집니다.

묵상

누군가 알고 있는 것 전부와, 그 사람이 실제로 말로 꺼내는 것 사이에는 늘 큰 차이가 있지 않나요? 지금 당신이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아직 꺼내지 않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로 남겨 두고 있나요?

“부처님, 손에 쥔 잎은 적고, 저 위 숲의 잎이 훨씬 많습니다.” “수행자들이여, 그와 같이 내가 뛰어난 지혜로 알고도 말하지 않은 것이 그토록 많다. 어찌하여 말하지 않았는가? 이익도 되지 못하고 거룩한 삶의 근본도 되지 못하며, 싫어하여 떠남·사라짐·멎음·고요함· 뛰어난 지혜·바른 깨달음·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도 이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았다.”

“Appamattakāni, bhante, bhagavatā parittāni sīsapāpaṇṇāni pāṇinā gahitāni; atha kho etāneva bahutarāni yadidaṁ upari sīsapāvane”ti. “Evameva kho, bhikkhave, etadeva bahutaraṁ yaṁ vo mayā abhiññāya anakkhātaṁ. Kasmā cetaṁ, bhikkhave, mayā anakkhātaṁ? Na hetaṁ, bhikkhave, atthasaṁhitaṁ nādibrahmacariyakaṁ na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ṁvattati; tasmā taṁ mayā anakkhātaṁ.

상윳따 니까야 SN 56.31 시사빠와나 숫따 (시사빠 숲)

배경

앞서 나온 비유에 수행자들이 손안의 잎이 훨씬 적다고 답하자, 부처님은 그 비례를 그대로 자신이 아는 것과 말한 것의 관계에 적용하십니다. 말하지 않은 이유로 든 것은 아홉 가지입니다. 이익이 됨과 거룩한 삶의 근본이 됨 두 가지, 그리고 싫어하여 떠남·사라짐·멎음·고요함·뛰어난 지혜·바른 깨달음·고요히 꺼짐으로 이끄는 일곱 가지입니다. 이 아홉 가지 가운데 하나도 이루지 못하는 앎은, 아무리 방대해도 이 경에서는 말할 가치를 얻지 못합니다.

묵상

지금 알고 있지만 굳이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들 가운데, “말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스스로 판단해 접어 둔 것이 있나요? 그 판단이 맞았는지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어떤가요?

2 말한 것과 그것을 힘써 닦아야 하는 이유 2구절

부처님이 굳이 골라 설하신 네 가지 진리와, 그것을 닦아야 하는 까닭

“수행자들이여, 그러면 나는 무엇을 말했는가? ‘이것이 괴로움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멎음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멎음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말했다. 어찌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이익이 되고 거룩한 삶의 근본이 되며, 싫어하여 떠남·사라짐·멎음·고요함· 뛰어난 지혜·바른 깨달음·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했다.”

Kiñca, bhikkhave, mayā akkhātaṁ? ‘Idaṁ dukkhan’ti, bhikkhave, mayā akkhātaṁ, ‘ayaṁ dukkhasamudayo’ti mayā akkhātaṁ, ‘ayaṁ dukkhanirodho’ti mayā akkhātaṁ,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mayā akkhātaṁ. Kasmā cetaṁ, bhikkhave, mayā akkhātaṁ? Etañhi, bhikkhave, atthasaṁhitaṁ etaṁ ādibrahmacariyakaṁ etaṁ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ṁvattati; tasmā taṁ mayā akkhātaṁ.

상윳따 니까야 SN 56.31 시사빠와나 숫따 (시사빠 숲)

배경

앞에서 ‘말하지 않은 것’을 다루었다면, 여기서는 ‘말한 것’을 밝힙니다. 부처님이 골라 말씀하신 것은 괴로움·괴로움의 일어남·괴로움의 멎음·괴로움의 멎음에 이르는 길, 이 네 가지뿐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하지 않은 이유로 늘어놓았던 아홉 가지(이익이 됨, 거룩한 삶의 근본이 됨, 일곱 가지로 이끎)가 여기서는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같은 잣대로 재어 보면 이번에는 이 네 가지가 합격했습니다.

묵상

수많은 정보와 질문 가운데 “지금 내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라는 하나의 잣대로 추려 본다면, 지금 붙들고 있는 생각 중 몇 가지나 남을까요? 남는 것과 남지 않는 것을 가르는 기준을 스스로 정해 본다면 무엇일까요?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는 데 힘써 닦아야 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멎음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데까지 힘써 닦아야 한다.”

Tasmātiha, bhikkhave, ‘idaṁ dukkhan’ti yogo karaṇīyo …pe…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ogo karaṇīyo”ti.

상윳따 니까야 SN 56.31 시사빠와나 숫따 (시사빠 숲)

배경

경 전체를 마무리하는 결론입니다. 앞서 밝힌 네 가지 진리를 안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각각에 대해 “힘써 닦아야 한다”는 실천의 요구로 끝맺습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부분은 줄였습니다. 이 경의 마지막 문장 “이로써 첫 번째 경이 끝난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이 경이 이 모음의 첫 번째 경임을 적어 둔 편집자의 표시입니다.

묵상

아는 것을 실제로 매일 조금씩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흔히 큰 간격이 있지요. 오늘 하루, 이미 알고 있는 것 가운데 딱 하나만 실제로 해 본다면 무엇을 고르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