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누리는 남자 재가자도 오백보다 많다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면서 가르침을 따르고 의심을 건넌 남자 재가 제자도 오백보다 많습니다.

“고따마 존자·남성 수행자·비구니·흰옷을 입고 청정한 삶을 사는 남자 재가자는 제쳐 두겠습니다. 흰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누리면서 가르침을 행하고 훈계를 따르며, 의심을 건너 망설임이 사라지고 확신에 이르러 스승의 가르침에서 남에게 기대지 않는 남자 재가 제자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왓차여, 그런 제자는 백 명만이 아니고 이백·삼백·사백·오백 명만도 아니며, 훨씬 더 많다.”

“Tiṭṭhatu bhavaṁ gotamo, tiṭṭhantu bhikkhū, tiṭṭhantu bhikkhuniyo, tiṭṭhantu upāsakā gihī odātavasanā brahmacārino. Atthi pana bhoto gotamassa ekupāsakopi sāvako gihī odātavasano kāmabhogī sāsanakaro ovādappaṭikaro yo tiṇṇavicikiccho vigatakathaṅkatho vesārajjappatto aparappaccayo satthusāsane viharatī”ti? “Na kho, vaccha, ekaṁyeva sataṁ na dve satāni na tīṇi satāni na cattāri satāni na pañca satāni, atha kho bhiyyova ye upāsakā mama sāvakā gihī odātavasanā kāmabhogino sāsanakarā ovādappaṭikarā tiṇṇavicikicchā vigatakathaṅkathā vesārajjappattā aparappaccayā satthusāsane vihara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73 왓차 긴 경 (Mahāvacchasutta)

배경

넷째 질문은 고따마 존자·남성 수행자·비구니·청정한 삶의 남자 재가자를 제쳐 두고,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남자 재가자로 이동합니다. 이들은 가르침을 행하고 훈계를 따르며, 의심을 건너고 망설임이 사라졌고, 확신에 이르러 스승의 가르침에서 남에게 기대지 않습니다. 청정한 삶의 재가자에게 붙은 불환의 네 결과와 섞지 않았습니다. 답은 다시 백부터 오백까지를 부정하고 훨씬 더 많다고 하여 생활 방식이 다른 재가 제자의 성취도 따로 확인합니다.

묵상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삶 안에서도 가르침을 따르고 의심을 건너는 길을 따로 밝힌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생활 형태를 비교하기보다 “남에게 기대지 않음”이 여기서 무엇을 뜻하는지 머물러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