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족계를 받은 지 보름 된 왓차곳따 존자가 세존께 가서 절하고 한쪽에 앉아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배우는 이의 앎과 밝은 앎으로 도달할 수 있는 데까지 저는 이르렀습니다. 더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다면 왓차여, 고요와 통찰 두 가지를 더 닦아라. 왓차여, 이 둘을 더 닦으면 여러 요소를 꿰뚫는 데로 이끌 것이다.”
Acirūpasampanno kho panāyasmā vacchagotto addhamāsūpasampann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vacchagotto bhagavantaṁ etadavoca: “yāvatakaṁ, bhante, sekhena ñāṇena sekhāya vijjāya pattabbaṁ, anuppattaṁ taṁ mayā; uttari ca me bhagavā dhammaṁ desetū”ti. “Tena hi tvaṁ, vaccha, dve dhamme uttari bhāvehi—samathañca vipassanañca. Ime kho te, vaccha, dve dhammā uttari bhāvitā—samatho ca vipassanā ca—anekadhātupaṭivedhāya saṁvattissanti.
맛지마 니까야 MN 73 왓차 긴 경 (Mahāvacchasutta)배경
출가 뒤 시간은 addhamāsa, 보름이라고 정확히 제시됩니다. 왓차곳따는 sekha, 아직 배우는 이의 앎과 밝은 앎으로 도달할 수 있는 범위에 이르렀다고 보고하면서도 더 가르쳐 달라고 청합니다. 세존은 samatha와 vipassanā, 고요와 통찰 두 가지를 함께 더 닦으라고 답합니다.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하지 않으며, 두 수행이 anekadhātu, 여러 요소를 꿰뚫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빠른 진전을 완결로 과장하지 않고, 다음 여섯 직접 앎의 바탕이 되는 두 닦음을 분명히 합니다.
묵상
어느 정도 배운 뒤에도 “더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태도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고요와 통찰 가운데 지금 뜻이 더 선명한 하나와 아직 낯선 하나가 있나요? 둘을 평가하지 않고 잠시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