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차여, 원한다면 여러 신통을 직접 겪을 수 있다. 하나에서 여럿, 여럿에서 하나가 되고, 나타나고 사라지며, 벽·성벽·산을 허공처럼 지나고, 땅을 물처럼 드나들며, 물 위를 땅처럼 걷고, 새처럼 하늘을 가부좌로 가고, 해와 달을 손으로 만지며, 범천 세계까지 몸을 부릴 수 있다.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직접 실현할 수 있다.”
So tvaṁ, vaccha, yāvadeva ākaṅkhissasi: ‘anekavihitaṁ iddhividhaṁ paccanubhaveyyaṁ—ekopi hutvā bahudhā assaṁ, bahudhāpi hutvā eko assaṁ; āvibhāvaṁ, tirobhāvaṁ; tirokuṭṭaṁ tiropākāraṁ tiropabbataṁ asajjamāno gaccheyyaṁ, seyyathāpi ākāse;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ṁ kareyyaṁ, seyyathāpi udake; udakepi abhijjamāne gaccheyyaṁ, seyyathāpi pathaviyaṁ; ākāsepi pallaṅkena kameyyaṁ,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imepi candimasūriye evaṁmahiddhike evaṁmahānubhāve pāṇinā parimaseyyaṁ, parimajjeyyaṁ;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ṁ vatt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issasi, sati satiāyatane.
맛지마 니까야 MN 73 왓차 긴 경 (Mahāvacchasutta)배경
고요와 통찰을 더 닦은 결과로 여섯 직접 앎이 차례로 열립니다. 첫째는 여러 신통이며 목록은 하나↔여럿, 나타남·사라짐, 벽·성벽·산 통과, 땅을 드나듦, 물 위를 걸음, 하늘을 가부좌로 감, 해와 달을 만짐, 범천 세계까지 몸을 부림의 여덟 묶음입니다. 각 능력은 yāvadeva ākaṅkhissasi, 원할 때라는 조건과 sati satiāyatane,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라는 제한 안에 놓입니다. 가능성을 말한 것을 현재 모두 행사한다는 선언으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묵상
낯선 능력의 목록보다 “원할 때”와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라는 두 제한에 먼저 눈을 둘 수 있을까요? 신통을 경험했는지 묻는 질문은 아니에요. 조건이 붙은 가능성이라는 문법만 살펴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