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마음의 첫 네 쌍을 그대로 알다

다른 존재의 마음을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유무와 수축·산란의 네 쌍으로 구별합니다.

“왓차여, 원한다면 마음으로 다른 존재와 사람의 마음을 아울러 알 수 있다. 탐욕 있는 마음은 탐욕 있다고, 탐욕 없는 마음은 없다고 안다. 성냄 있는 마음은 성냄 있다고, 성냄 없는 마음은 없다고 안다. 어리석음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 있다고, 어리석음 없는 마음은 없다고 안다. 수축된 마음은 수축되었다고, 산란한 마음은 산란하다고 안다.”

So tvaṁ, vaccha, yāvadeva ākaṅkhissasi: ‘parasattānaṁ parapuggalānaṁ cetasā ceto paricca pajāneyyaṁ— sarāgaṁ vā cittaṁ sarāgaṁ cittanti pajāneyyaṁ, vītarāgaṁ vā cittaṁ vītarāgaṁ cittanti pajāneyyaṁ; sadosaṁ vā cittaṁ sadosaṁ cittanti pajāneyyaṁ, vītadosaṁ vā cittaṁ vītadosaṁ cittanti pajāneyyaṁ; samohaṁ vā cittaṁ samohaṁ cittanti pajāneyyaṁ, vītamohaṁ vā cittaṁ vītamohaṁ cittanti pajāneyyaṁ; saṅkhittaṁ vā cittaṁ saṅkhittaṁ cittanti pajāneyyaṁ, vikkhittaṁ vā cittaṁ vikkhittaṁ cittanti pajāneyyaṁ;

맛지마 니까야 MN 73 왓차 긴 경 (Mahāvacchasutta)

배경

셋째 직접 앎은 자기 추측을 상대에게 덧씌우는 일이 아니라 cetasā ceto paricca, 마음으로 다른 존재의 마음을 아울러 아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첫 네 쌍은 탐욕 있음/없음, 성냄 있음/없음, 어리석음 있음/없음, 수축됨/산란함입니다. 각 상태를 바로 그 상태라고 아는 설명 동사 pajānāti를 여덟 번의 관계로 보존했습니다. 수축과 산란은 단순한 선악 반대가 아니므로 탐욕 없음 같은 표현으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목록은 다음 네 쌍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여덟 상태를 좋고 나쁜 사람의 표지로 쓰지 않고, 마음 상태의 이름으로만 읽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에서 탐욕·성냄·어리석음·수축·산란 중 하나가 보이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